인생진화론 ㅣ Vincent
글을 쓴다. 하나의 글귀는 주제가 되어 설명과 예시를 부른다. 예시는 인물과 배경을 등장시켜 사연을 만들고 사연은 플롯의 옷을 입어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는 사람들의 관심을 부르고 재미와 감동으로 현혹한다. 거짓말에 진실을 담아, 진실을 그럴듯한 거짓말로 위장시켜 현실의 감옥에 갇힌 이들을 상상 속의 우주로 탈출시킨다.
작가 프로필 ㅣ Vincent
아이들은 황홀한 피리 소리만 따라갈 뿐 남자의 정체 따윈 관심 없었다.내가 누구인지는 글이 결정할 것이다. 안타깝고 슬픈 로맨스든, 우주의 장대한 모험담이든, 인생에 대한 미천한 깨달음이든 인정욕구에 중독된 자아를 외면하고 순정의 진실만 담아 당신에게 글을 쓴다.
내 이름은 Vincent.
한 줄을 써도 부끄럽지 않은 글로
당신과 마주할 수 있기를...
외롭다고 말하면 죄가 된다. 초라해지고 부족하고 뭔가 결핍한, 어쩌면 저능하고 비하의 대상이 된다.
달콤하게 사랑을 나누는 연인을 보면 우리는 질투하고 뒤에서 험담한다. 그 이유는 그 남자, 또는 그 여자가 어쩌면 나를 만날 수도 있었을 거라는 무의식에 가까운 착각 때문이다. 그 보잘 것 없고 허황된 가능성이라도 바로 그놈, 또는 그년이 초장에 박탈해 간데 대해 우리는 억울해 하고 아까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별로인 것들의 연애에 대해 우리는 시기하지도 질투하지도 않는다. 다행히 그 남자, 또는 그 여자와 내가 엮일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까워졌기 때문에 안도하기 때문이다.
자위를 하고서 맨 바닥에 사정하면 그 이후 밀려오는 허탈감에 욕이 나온다. 원치 않는 상대와 섹스한 뒤 잘못해서 사정이라도 하고 나면 그 후회는 잠도 못 이룰 정도이다. 그런데 정말 사랑하는 사람의 안에 사정하면 왜 그렇게 뿌듯하고 편안할까.
외로움이란 인간으로서 주어진 디엔에이의 사명, 바로 번식의 책임을 완수하지 못할까 하는데서 오는 두려움이다. 이유도 없고 이성적인 논리도 필요없이 우리는 혼자 있으면 초라하고 두렵고 슬프다.
혼자라는 것은 인간관계의 다단한 고통으로부터의 초연한 탈출, 그렇게 고고하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물학적으로는 번식을 위한 짝으로서 가치가 없을 수 있다는, 그래서 세상의 반을 이루는 다른 성으로부터의 철저한 소외에 대한 공포이고 사회적으로는 이 사회가 지속되고 발전되는 데 나는 전혀 쓸모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자살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외로움이다. 절망적인 상황과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나를 제외한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이 철저히 무관심한 상태, 그래서 이 상황을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는 철저한 계산과 그 결론이 사람을 베란다 난간에서 뛰어 내리게 만든다.
외롭다는 건 가난하다는 것이며 성격이 안좋다는 것이며 지난 세월동안 제대로 된 인간관계 하나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며 가족들 안에서도 내밀한 일차적 사회관계를 맺지 못한 데 대한 인과응보라는 것이 사회의 인식이다. 여자가 바람나서 떠나도 그녀를 외롭게 만든 책임은 내게 있다. 부모가 이혼하고 자식을 할머니에게 버리듯 맡겨놔도 그만큼 사랑스럽고 귀엽지 않은 자녀의 책임이다. 못생겨서, 뚱뚱해서, 몸에 장애가 있고 지능이 박약하고 암에 걸리고 우울증을 앓아도 모두 혼자가 된, 외로운 이들의 잘못이다.
세상은 서로 좋아서 사랑하는 자들의 것이며 화목한 가족이 승자이고 사랑받고 존중받을 만한 가치와 자격이 있는 자들을 위한 공간이다. 그들은 잘생기고 똑똑하고 성격도 좋고 능력도 좋다. 서글서글한 인상이거나 야무지고 참한 미색을 겸비했다. 균형잡힌 몸매와 탄탄한 피부, 침착하고 다정한 목소리, 무엇보다 남자는 큰 키, 여자는 아름다운 미소를 가지고 있겠지.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를 열등감으로 몰아넣으며 우월한 디엔에이를 자랑하는 그들 덕택에 우리는 외로움이라는 짓지도 않은 죄에 대한 가장 가혹한 벌을 태초부터 받게 되었다.
혼자인 모든 사람들은 당장 눈앞에서 걸리적 거리지 말고 어디 안보이는 곳으로 사라지라고 모든 사회가 소리를 모아 윽박지른다. 외로운 이들은 그 어딘가 음습한 구석에 쳐박혀 편의점 도시락과 탄산음료에 몸을 버리고 게임과 티비에 영혼을 팔아 자신의 생명을 소모시킨다. 블로그와 트위터로 자신들의 행복한 새출발을 축복해 달라고? 너의 사랑스런 아기를 보고 예쁘다고 리플달아달라고? 여전히 돈잘벌고 복근이 탄탄한 네 남편을 부러워하며 마흔 가까이 되도록 주름하나 없이 때로는 연인 같고 때로는 소녀같은 네 아내에 감탄해달라고?
미쳤냐?
우린 네가 직장에서 쫓겨나길 바래.
네 아내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몰래 노래방 도우미로 출근할 거야. 그러다 어느날 보도방 봉고차에 오르던 네 아내를 네 딸이 목격하겠지.
그 충격으로 네 딸은 집을 뛰쳐나갈 거야. 자신의 엄마를 그렇게 만든 너의 무능력에 치를 떨며 말이지.
갈데없는 네 딸이 만난 건 대충 알바로 먹고 사는 폭주족일테고 외로운 게 싫은 그 애는 그것도 남자라고 몸을 섞고 임신하겠지.
낙태하고 망가진 몸으로 네 딸이 내 방 옆집으로 이사온 그 날 당신의 딸이 얼마나 예쁜지 그런 딸을 낳은 그 엄마는 분명 미인이었을 거라고 칭찬해 줄게. 그러니까 그 전까진 너의 우월한 행복을 과시하기 위한 도구로 날 이용하지 마. 니들이 원하는 대로 제대로 햇빛도 안드는 이 구석에 조용히 찌그러져 있는 날 더 나락으로 떨어뜨리지 말라고.
전철의 옆자리에 누군가 와서 앉아줄 때 그 온기가 고마워 눈물이 난 때가 있다.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어떤 할머니 뒤에 업힌 100일이 갓 지났을 아기가 내게 손을 내밀며 웃어줄 때 고마웠다.
혼자 있으면 편한 줄 알겠지? 어림없는 소리.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 스트레스, 피로 인간사의 모든 고통에서 자유라는 게 그렇게 낭만적이고 대단한 게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가족의 품에서 사회적 존재로서 태어난 인간이 혼자가 되어 행복할 리가 없잖아.
혼자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가르쳐 주지.
감옥중의 상감옥이 독방이고 죽음중에 가장 끔찍한 죽음이 고독사이다. 암환자들이 가장 괴로운 순간은 암덩이가 혈관과 신경을 짓누르는 고통이 아닌 밤에 아무도 없는 병실에 우두커니 있는 바로 그 순간. 외로운 이들은 그 고통을 매일 안고 사는 사람들이다. 퇴근하고 전화할 데가 없는 사람들. 돈달라는 말 아니면 연락올 데가 없고 출근할 때와 똑같이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이불과 널려진 옷들, 텅빈 싱크대, 세면대의 짧은 머리카락까지 이 공간 안에 나 아닌 그 어떤 살아있는 존재도 없다는 것은 단 한 순간도 잊지 못하는 존재들. 내가 살아있는 건지 죽어서 유령이 된 자신을 자각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것은 아닌지 헛갈리는 그 상태.
내 잘못이라는 것을 안다. 내가 생각이 깊지 못하고 타인의 마음을 배려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만할 수도 있었을 테고 말실수도 적지 않았겠지. 그러나 사람을 괴롭힌 적도 속인 적도 없이 그저 묵묵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살았던 것의 죄과가, 그저 생각지 못한 실수와 그 실수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무능의 댓가가 이런 치가 떨리고 이가 갈릴 정도의 외로움이라니... 살인자도 함부로 독방에 가두지 않는 법인데, 나의 죄가 그정도로 천인공노할 죄였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이기도 힘들다.
인간에게는 약으로 해결되는 영역이 있고 만남으로 해결되는 영역이 있다. 정신질환이 혼자 치료되지 않는 이유, 마약중독자들조차 누군가 곁에서 마약을 빨아제낀다. 정신에는 자가치유능력이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리스도가 광야에서 40일간 금식기도를 했다는 것은 어쩌면 단순한 40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400일일수도 4000일일수도 영원일 수도 있다. 혼자 기도하다니,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혼자 있던 그가 듣고 싶었던 것은 목소리...
내면의 목소리와 외면의 음성 사이에는 신의 음성과 사탄의 유혹이 혼재되어 있다. 외로움은 중립적이다.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 사랑받지도 않고 미워하지 않고 미움받지도 않는다. 그래서 철저히 소외되고 고립되고 무가치하고 어느 짝에도 쓸모가 없다.
밤이 깊을수록 외로운 영혼은 천국과 지옥을 떠돈다. 사랑받고 싶어서 누군가에게 베풀 선을 고민하기도 하다 그래봐야 결국에는 다시 이 무인도같은 골방으로 쫓겨나게 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죽기 전에 원없이 욕구라도 해소해보고 싶어서 누군가를 죽일 계획을 하고 그동안 나를 버렸던 사람들을 찾아가 남자는 사지를 절단하고 여자는 비명을 들으며 강간한다.
술을 먹지 않아도, 구구단을 외울 수 있을 정도로 맑고 뚜렷한 정신으로 선과 악의 양 극단을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른 생각의 속도로 수만번을 오가다 보면 외로움이 어떻게 사람을 미치게 할 수 있는지 퍼득 깨닫는다.
외로움은 불치의 병이다.
외롭다는 것을 알고 외로워서 미칠 수도,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무지 해결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야 살 수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을 걸고서 되돌아올 외면, 또는 의미없는 말, 경멸의 눈초리, 무의식중에 기운으로 전달되는 무시, 비하, 이런 걸 생각하면 도저히 말을 걸 수 없다.
자신감? 그건 어떻게 얻을 수 있는데?
돈이 있으면 해결될 수 있을까? 없어지면 다 떠날 것을 뻔히 아는데 그래도 돈으로 만든 관계란 게 영혼의 가뭄을 해갈해 줄 수 있을까?
외모? 젊음? 인격? 성격? 업적? 거울을 한 번 보고 지난 밤 끄적인 글귀를 다시 한 번 읽어볼 용기가 있다면 그때 이야기하자. 그럴 자신이 없는 나는 자신감이라는 신기루를 믿을 수 없다.
도대체 얼마나 노력을 하고 얼마나 위대한 업적을 남겨야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는 것일까? 얼마나 감정의 변화를 숨길 수 있고 얼마나 말과 글을 잘해야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을까? 암환자가 시한부 인생을 판정받듯 외로움의 병을 얻은 사람 역시 이대로 죽을 때까지 외롭게 살아야 한다는 판정을 받는다.
한때 사랑이 구원해 줄 줄 알았다.
가족, 정, 우정, 친구... 뭐 그런 유사한 개념들도 줄줄이 있었다. 개뿔... 마흔 셋의 나이에 남편과 아내 몰래 등산모임에서 만나 어디 모텔에서 시시덕대는 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면 시쳇말로 사랑 네가 고생이 많다. 그런데 등산모임으로 대유되지 않을 다른 모임이라는 것, 다른 만남이라는 것은 또 있는가?
외로운 게 잘못은 아니다. 나름의 규칙과 가치관, 생각들이 모여서 행동을 만들고 이리저리 최선을 다해 살아왔을 뿐이다. 암에 걸렸다고 암환자를 욕할 수 없듯이 외로워졌다고 외로운 이들을 욕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사회는 외로운 이를 욕하는데 거리낌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외로운 이들은 그들 편이 없기 때문이다. 변호해 줄 사람도 안타까워 하거나 보호해 줄 사람도 없다. 그들은 그저 잊으면 그만인 존재다. 외로운 이들을 욕하면 외로운 이들은 그저 당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외로운 사람들은 숨는 것이다. 무덤처럼 조용한, 세상에 그런 곳이 존재하는지도 모를 곳으로 그들은 숨어들어간다.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인간이 살면서 실패할 수도 있고 헤어질 수도 있다. 어쩌다 혼자일 때도 있다. 그런데 왜 외로운 것은 이렇게 운명의 굴레가 되어서 벗어나기 힘든 걸까? 난 술, 담배도 안했고 욕도 안했고 폭력을 행하거나 남을 속인 적도 없다. 바람을 피운 적도 부정하게 돈을 번적도, 그 외에 사람들에게 손가락 받을 짓도 안했다. 흠이 없는 인생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누구나 수긍할만한 사연이 있다.
난 내가 왜 외로운지 잘 안다. 그것은 업보일 것이다. 존재 자체가 쓸데 없었던, 존재자체가 민폐였던 삶의 필연적인 결과.
나를 만난 이들은 모두 상처를 입었다. 모두 이용당했다고 생각이 들었고 모두 버림받았다고 느꼈을 것이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새로운 것에 대한 끝없는 유혹, 새로운 삶,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장소, 새로운 일... 새로운 것이 주는 끝없는 희망. 아직 찾지 못한 나의 가능성이 그곳에서 폭발할 것만 같은 망상... 그래서 사람들과 추억들, 그 장소들이 모두 내 등 뒤로 버려졌다. 그래, 그래서 외로운 거야. 그렇게 살았으니, 곁에 있는 것을 소중히 하지 않았으니 이제 모든 에너지가 고갈된 지금 외로움이라는 재만 남은 거지.
하지만 지금 외로운 것처럼 중학교때, 고등학교때, 대학교때, 군대에서도 난 항상 외로웠다. 그때도 그런 업보를 지고 있었던가.
아주 오래전 어느 여자 선배가 기억난다.
학력도 좋고 얼굴도 예쁜 그 선배는 내 앞에서 외롭다고 목놓아 외쳤지. 그녀는 내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 나는 아니라 이거지. 아무리 외로워도 나는 아니라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의 그 흘기는 눈빛처럼 상황은 변한 게 없다. 누구든 내가 다가갈까봐 꺼림칙해한다. 행여나 내가 고백이라도 하면 악몽이자 치욕일 것이다. 그 남자가 나를 좋아한대. 아, 재수없어. 나이 쳐먹고 배만 나온 게 어디서 개지랄이야. 더러워...
다들 그래서 내 앞에서 자신들은 외롭지 않다는 것을 웃는 얼굴로 통화하고 열심히 문자질하고 떼로 모여다니며 시끄럽게 떠드는 걸로 과시하는 거야. 난 외롭지 않아. 난 친구도 많고 사랑하는 가족도 있고 연인은 없지만 언젠가 생길테고 개도 있고 고양이도 있어. 그러니까 너같은 것은 가까이 오지 마. 말도 걸지 마. 없어져. 냄새나. 내 시야에서 사라져.
예쁜 애들이 부럽다. 아빠와 정답게 통화하는 딸이며 친구들에게서 먼저 연락오는 좋은 친구며 남자친구가 직장으로 꽃을 보내는 행복한 연인... 사랑받고 여유롭고 풍요로운 모든 것...
더이상 혼잣말 하기도 지겹다. 꼭 미친 놈 같다. 그렇지만 입을 닫고 있으면 더 미칠지 모른다. 그래도 혼잣말이라도 하면 아직 정신은 살아있는 것 같은데 아무 말조차 안하면 살았는지 죽었는지 구분이 안될 것이다.
포르노 중독.
외로워서 걸리는 병. 모든 중독성 정신질환중 가장 고치기 쉬운 병. 치료법은 간단하며 유일하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다른 약도, 다른 치료법도 없다. 사랑하면 된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해서 끝없이 노랗게 꿈틀대는 화면에 밤새도록 몰입한다. 누군가 한번 안아주기만 해도, 누군가 손을 잡고 곁에 앉아 있기만 해도 병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게 안되서 손가락질을 받고 혹시나 들키기라도 하면 평생 남을 트라우마가 생긴다.
마약하는 사람들이 들켰다고 부끄러워 하던가. 도박하는 사람들이 수치심에 죽고 싶어 하든가? 게임하는 아이들, 주식하는 남자들, 쇼핑하는 여자들 중에 중독된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있어도 수치심에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단지 외로워서 걸리는 그 중독을 들켜서 쓰레기가 되고 사람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게 되고 자살에 이르기도 한다.
외로움이 죄는 아닌데 병은 될 수 있고 도저히 풀 수 없는 주박이기도 하다. 탑에 갇힌 라푼젤도, 성에 갇힌 야수도, 다 외로움을 궁극의 징벌로 받았다.
제발 내 손을 잡아 줘. 나 나쁜 사람 아니야. 난 그저 외로울 뿐이지 배울 것도 다 배웠고 먹고 살만한 능력도 있고 어디 이상있는 사람 아니야. 그냥 내 곁에 있어 줘. 그게 그렇게 어렵니? 너의 곁은 경매에 붙은 거야? 나한테서 냄새나? 다른 사람은 다 네 곁에 있을 수 있는데 왜 나만 안돼? 왜 네가 세상에서 가장 부담스럽고 짜증스럽게 여기는 사람이 너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바로 나야? 나도 대화에 끼워줘. 내 말에 제발 웃어줘. 날 한번만 안아줘. 제발, 제발이야. 죽을 것 같아. 외로워.
외로움은 변덕과 헛된 욕심, 기대의 죄과이다. 그때 그 사람에게 싫증나서 소홀히 했던 죄과로, 새로운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헛된 기대 때문에 외로움의 칼을 썼다. 인생에 진정 사랑할 만한 사람을 그리 자주 만나는 게 아니다. 그런데 그 소중한 인연을 어리석은 망상으로 망친 댓가로 나는 소외와 외로움의 저주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