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일상의 프레임

7월 공통주제 <일상> ㅣ 신정훈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1-15 오후 4.46.44.png 호주 멜번의 청소부
저는 글을 막 씁니다. 브레인스토밍하듯 손가락 가는대로 놔두는 식입니다.


작가 프로필 ㅣ 신정훈

현상을 쿨하게 응시하고 그것에 담긴 의미를 즉흥적인 글쓰기 과정으로 풀어내려 한다.




일상의 사전적 정의는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다. 매일이 다르지만, 몇 가지 정형화된 활동이 하루를 일상으로 규정한다. 어떤 것이 하루에 일상, 반복, 패턴화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걸까? 그 단상을 써볼까 한다.


냄비에 정량에 못 미치는 물을 받는다. 자극적인 음식에 길들여진 혀는 싱거운 라면에 몸사릴 친다. 가스레인지 앞을 지키는 시간이 아까워, 점화와 동시에 면과 스프를 넣는다. 방으로 돌아가 하던 일을 이어한다. 글을 쓰든, 읽든, bj철구 동영상을 보든, 상관없다. 5분을 냄비 앞에서 보내고 싶지 않다. 시간이 되면 젓가락으로 대충 뭉친 면과 스프를 휘젓는다. 냄비를 식탁으로 옮기는데, 설거지거리를 늘리고 싶지 않아 접시를 쓰지 않는다. 김치는 있으면 꺼내고 없으면 안 먹는다. 문명의 진한 맛을 즐긴다. 면을 다 먹으면 밥을 넣어 국물을 끝장낸다.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지 않아, 라면과 인연을 이어간다. 싸고, 맛있고, 조리하기 쉬운 완전식품이다.


귀가 후엔 손, 발을 씻고 침상에 눕는다. 학습의 효과인지 마음의 눈은 세균을 본다. 손과 발을 타고 귀가를 함께한 바이러스들이 살림살이에 주거지를 트기 전에 씻어버린다. 짧은 외출에도 쉽게 피곤해지는데, 집에 오면 긴장이 풀려 피로가 한 번에 몰려온다. 세균과 작별을 고하자마자 침대로 향한다. 15분에서 1시간 가량 누워서 가십 글을 읽고 게임을 한다. 그런 다음에 무언가 할 수 있다.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해 불필요한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귀찮은 메카니즘이 아닐 수 없다. 제조공정의 문제인지, 사용자의 사용 미숙 탓인지, 효율과는 거리가 먼 몸이다.


멜번역 2층, 글로리아 진스 카페 지정석에 앉아 랩탑을 편다. 주문은 롱블랙 레귤러 사이즈로 한다. 엉덩이를 붙히면 5,6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킨다. 글쓰기가 주된 목적이지만, 디젤매니아 유머 게시판에서 웃긴 자료를 보고, 브런치에서 다른 사람 에세이를 읽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집중이 잘 되는 날은 체류 시간 내내 글을 쓰지만, 안 되면 한 두 시간 쓰는 둥 마는 둥 한다. 아지트 같은 곳으로, 친구 한 둘이 들리곤 한다. 그날의 스케쥴을 간단히 묻고, 짧은 대화를 나누고 다시 랩탑을 본다. 친구가 대화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핀잔을 주면 잠깐 랩탑을 덮는다. 폐점 시간인 7시가 가까워지면 짐을 챙긴다. 생각이 잘 정리된 글을 쓰면 카페를 나서는 걸음이 가볍다.


여자친구와 논쟁한다. 다양한 이슈에 주장을 펼친다. 가끔 토론을 위해, 생각이 같아도 반대 의견을 말한다. 사건의 잘잘못을 따진다. 문제를 인정하는가,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가, 무조건 비판해야 할 문제인가, 사회 구조적인 측면에서 어떤 작용이 있는가, 어떻게 사건을 방지할 수 있었을까, 비슷한 사례는 무엇이 있는가 등 기본 핵심을 두고 다양한 의견을 나눈다. 날카로운 질문과 의견에 입이 다물어지기도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반론을 위해 머리를 굴린다. 토론이 길어지면 3,4 시간이 지난다. 완벽한 결론은 나지 않는다. 찜찜하지만 서로의 의견은 이해한 상태로 토론을 끝낸다.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 소모가 상당하지만, 만족스럽다. 격렬 할수록 충만한 운동처럼.


운전 중에 블루투스로 핸드폰 음악을 재생한다. 업데이트가 더뎌 목록에 있는 노래를 수 십번도 더 듣는다. 덕분에 가사를 외우기 쉽다. 임재범 빙의된 듯 열창한다. 달리는 차의 노랫 소리는 누군가의 귀에 도달하기 전에 사라진다. 아무 눈치 안 보고 노래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가상의 관객 앞에서 콘서트를 한다. 운전석이 스테이지다. 운전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관객들은 많은 공연을 즐길 수 있다. 랩, 댄스, 발라드, j-pop, 드물게 pop을 부른다. 장르의 경계를 무너트리며 팔방미인의 저력을 보여준다. 주차를 하고, 가수 칭호를 반납한다.


일하는 시간은 배움의 시간이기도 하다. 청소 중엔 이어폰을 꽂는다. 인문학 관련 팟캐스트를 주로 듣는다. 일에 지장을 주지 않은 범위 안에서 집중한다. 인체처럼 많은 학문은 유기적이며, 통하는 지점을 갖고 있다. 들을 수록 연결선이 늘어 간다. 선을 이어가며 희열을 느낀다. 배우며 돈을 벌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복받은 환경인가. 청소기로 먼지를 빨아들이고, 이어폰으론 누군가의 사상을 흡수한다. 성장하고 있단 자각이 없으면 우울해지는데, 합리화 수단이기도 하다.


반복하는 하루의 파편을 통해, 나라는 인물의 전체를 엿본다. 계산적이고, 효율을 따지는 한편, 시간을 허투로 쓰는 모순을 보인다. 배움에서도 마찬가지다. 배우고자 하는 의욕이 없어도 될 때 강하고, 정작 필요할 때는 식는다. 또한 경쟁 사회에서 남 눈 의식하는 버릇 탓에, 항상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원한다. 조금만 깊게 들어가면 활동의 대부분이 비교 우위에 서기 위한 것이다. 자본주의에 찌든 속물성과 게으른 몸과 정신력을 탓하면서도, 인생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맥락없는 위 단상처럼, 일상엔 긍정과 부정이 혼재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재미나 보람을 찾으려한다. 덕분에 삶에 긍정적이고 감사할 수 있다. 글쓰기의 끝에 깨달음이나 교훈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하지만 일상이라는 주제처럼 이번 글 만큼은 더하는 것 없이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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