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공통주제> 일상 ㅣ 임나무
매일 500 페이지를 읽습니다. 제가 글을 쓴다면 '카프카'처럼 쓰고 싶어요. 카프카를 읽으면 약간 푸르스름한 흑백영화를 보는 기분이 듭니다.
작가 프로필 ㅣ 임나무
취미가 독서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엄청난 독서광.
자신이 읽은 책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1.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눈꼽도 떼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아 스탠드를 켜고 성경을 읽는다. 자줏빛 색연필로 연하게 밑줄을 긋고, 주석을 찾아 메모도 해가며 열심히 본다. 난생 처음으로 두어 달 전부터 생긴 습관이다. 지금은 사도행전을 절반쯤 지나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이 막 시작되었다. 한 시간 남짓, 한 장 정도를 여러 번 읽는다.
2. 전기밥솥에 밥을 앉히고 머리를 감은 후 아이들을 깨운다. 저녁에 머리를 감고 자는 아들은 아침마다 야자수 머리다. 점심 도시락 반찬을 만든다. 그 사이 아이들은 각자 간단히 시리얼이나 빵을 챙겨먹고, 씻고 나서 순번대로 설거지와 뒷정리를 한다. 도시락 반찬을 확인하곤 가끔은 탄성을, 가끔은 한숨을 쉰다. 순수 육식주의자인 딸래미가 말을 안 들어 꼴보기 싫은 날은 부추전과 깻잎절임만 싼다. "힝!"하고 오리처럼 입을 쭉 내미는 딸래미 얼굴이 쌤통이다.
3. 서둘러 머리를 말리고 방바닥의 머리카락을 주울 무렵에 집 앞 중학교에서 수업 준비 종이 울린다. 나의 목표는 아홉 시까지 도서관에 도착하는 것인데, 종소리를 들으면 으레 지각이다. "무브, 무브!"를 외치며 아이들을 휘몰아 차에 탄다. 시동을 켜고 라디오를 틀고 RPM이 1 아래로 내려갈 때까지 3, 4분쯤 기다린다. 복선으로 주차된 차가 있으면 아이들이 서로 신호해가며 다른 차와 부딪치지 않게 밀어놓는다. 딸은 조수석에 앉고, 햇빛 알레르기가 있어서 재채기가 심한 아들은 뒷좌석에 앉는다. 아들의 임무는 나의 험한 운전으로부터 도시락을 수호하는 것이다.
4. 출발하고 신호등 두어 개를 지나고나면 [출발 FM과 함께]가 끝난다. 딸이 93.9로 주파수를 옮기면 강석우 아저씨의 [아름다운 당신에게] 시그널이 흘러나온다. 오프닝 멘트 후에 밝은 첫 곡이 끝나고 광고가 흘러나올 때쯤엔 도서관에 도착한다. 아쉽지만, 강석우 아저씨와는 짧게 이쯤에서 헤어진다.
5. 도서관 1층 북카페에 앉아서 아들, 딸에게 차례로 영어를 가르친다. 진도가 더디다. 백 번쯤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비운다. '나는 지금 콩나물에 물 주고 있다.' 물 붓는 만큼 밑으로 다 빠져나오는 것에 날마다 분기탱천이다. 그러나 효율이 높지 않다고 버릴 수 없는 게 자식이다. 하루 분량을 설명한 후 열람실로 올려보내고 나면 이제 다시 내 시간이다. 아이들은 열람실에서 수학과 영어를, 나는 북카페에서 나의 공부를 한다. 점심시간까지는 편하게 책을 볼 수 있다.
6.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시리즈를 엊그제 모두 읽었다. 그 전에는 [목로주점]과 [에밀]을 읽었고, 그 전에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민음사 번역본이 완간되지 않아서 아직 네 권을 읽지 못한 상태다. 아무래도 어딘가에서 펭귄클래식 번역본을 구해다가 읽어야 할 듯하다. 펭귄은 올해 초에 한꺼번에 열 권을 완간해서 낸 모양이다.
7. 열두 시가 되기 전에 아이들의 배꼽시계가 울린다. 휴게실로 가서 함께 도시락을 먹는다. 간혹 다른 제자들과 함께 밥을 먹을 때도 있다. 요리를 못해서 영 자존감이 낮은 나의 볶음밥과 김밥에 언제나 엄지를 척 들어올려주는 예의바른 아들들, 딸들이다. 점심식사는 20분도 채 걸리지 않고, 양치를 한 후엔 각자 곧바로 다시 자기 공부로 돌아간다. 오후엔 국어, 과학, 사회와 책읽기를 요일별로 돌아가며 한다.
8. 한 시간쯤 후엔 어김없이 졸음이 온다.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러 가야 한다. 아이들이 시간 맞춰 내려온다. 길 건너 '아이스크림 할인마트'에 가면 아이스바가 350원, 콘은 600원이다. 네댓 명이 먹어도 삼천원을 넘지 않는다. 아들래미들은 꼭 '죠스바'나 '수박바'를 고르고, 나는 늘 '비비빅'만 먹었었다. 늘 서로의 취향을 난해하다며 비웃는다. 얼마 전에는 딸래미들이 늘상 즐겨 사먹는 '와일드바디'를 한 번 먹어보았다. 그리고 그 후론 '와일드바디'만 먹는다. 취향은 변하는 거니까.
9. 나머지 시간엔 우리집 아이들의 영어시험을 보고, 간혹 과외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계속 책을 읽는다. 갈수록 집중해서 책 읽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이러다가 글은 언제 쓰고, 돈은 뭘로 버나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잠을 줄여야겠다는 야심찬 다짐을 한다.
10. 귀가하는 시간은 대충 여섯시 전후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들이 하루도 안 빼고 똑같이 묻는다.
"엄마, 오늘 저녁에 뭐 먹어요?"
그리고 나는 매일 똑같이 대답한다.
"밥."
군인들의 임무교대 암호처럼, 하루를 마감하는 의례적인 대화다.
11. 그리고 저녁밥을 지어먹고 나면 나는 정말 퇴근이다. 아니, 나는 '엄마 퇴근했다'고 외치고, 아이들은 '엄마 오늘 야근'이라고 외친다. 밤까지 그렇게 투닥거리고 더러는 한판 붙어 징하게 싸우고는 저렇게 곤히 자는 것이다. 딸래미 얼굴을 한 번 만져보고, 아들래미 볼따구를 한번 찝어본다. 이제 하루가 갔다. 어제와 같은, 내일도 같을 평온한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