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타일 박스 안에서

7월 공통주제 <일상> ㅣ 김연정

by 한공기

저녁약속 모임을 파하고 집에 오는 길. 집에 가려면 꼭 지나야만 하는 동네의 공원 초입에 들어서자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오후 내내 들러붙은 눅눅함과 습기 사이를 비집고 밤바람이 불었다. 땀이 식는 바람에 잠시 소름이 돋았다.이어폰에서는 'Honne'라는 영국 듀오의 ‘Gone Are The Days'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And if you've never felt… This way before…'


매일 걷는 길, 그리고 우뚝 솟은 가로수들의 숨결 냄새. 나는 이 동네로 이사 온 9살부터 이곳을 지나다녔다. 더 이상 놀랄 것도 없는 이 공간을 지나가다 갑자기 ‘좋다-’라는 생각이 든 것은, 습기에 젖어버린 나무 냄새에 하루 종일 뻑뻑했던 눈이 말랑해짐을 느낀 것은, 지난겨울밤 폭설에 얼어버린 공원의 포근함을 문득 떠올렸던 것은, 비온 뒤 짙어진 진흙투성이 땅처럼 마음이 헤집어진 것은, 음악 때문이었을까.


엘리베이터 안쪽 모서리에 섰다. 그리고 거울을 봤다.

언젠가 같은 아파트 동에 살았던 친한 친구의 동생이 엘리베이터를 타면 내가 항상 문의 오른쪽 옆의 모서리에 조용히 서있어서 깜짝 놀란다고 말했었다. 그 뒤로 의식해서 다른 모서리에도 서봤었는데, 오늘도 역시 나는 오른쪽 모서리에 서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자리가 편하다. 그리고 맞은편의 거울의 내 모습을 보는 일. ‘머리 확 잘라버릴까’


엘리베이터가 15층까지 올라가는 시간은 길지 않지만, 그 속에서 멍하니 거울을 쳐다보는 일은 왠지 정지되어 버린 시간처럼 느껴진다. 직육면체의 공간 안에 사각프레임으로 양 벽을 채우고 있는 거울은 서로를 비추고 있고 그 안에는 사각형의 공간이, 그리고 내가 무한히 서있다. 그래서일까. 가끔 꿈을 꾸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끊임없이 상승한다. 직육면체의 로켓을 타고 미친 듯이 위로 치솟아 오르는 그 꿈은 사실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현관 초입에는 여행에서 찍은 사진이 걸려있었다. 캠코더로 찍은 사진을 수채화 종이에 옮기기 위해 나는 사각 틀의 대야에서 대략 여섯 시간동안 물로 헹구었다. Cyon, Magenta, Yellow, Black의 컬러를 차곡차곡 올려 정성스럽게 인화한 사진을 나는 고심 끝에 짙은 원목의 갈색 프레임으로 액자를 맞췄다.


<제목: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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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3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그동안 모은 몇 푼 안되는 돈으로 유럽여행을 했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과 루브르 박물관 근처에 있는 튈르리 공원 호수 앞의 의자에서 나는 퍼질러졌었다. ‘나는 500만원을 들여 여기까지 와서 공원에 퍼질러있구나.’ 그 사실에서 묘한 희열감과 우울함을 동시에 느껴 꽤나 감상적인 상태로 널브러져있었던 것 같다. 위로는 하늘에 구름이 거대한 이불의 솜 뭉텅이처럼 둥둥 떠 있었고, 발밑의 커다란 원형 호수는 구름뿐만 아니라 햇살까지 흠뻑 머금어 황금빛으로 산란하게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일생일대의 가장 사치스럽고 평범한 휴식이었다. 나는 그 순간을 다른 여행지에서도 그랬듯 무심하게 카메라로 몇 컷 담아냈다.


검프린트 기법은 상당히 까다롭고 시간이 많이 들었다. 결국 초보자인 탓에 노란색을 지나치게 올려버려서 원본 사진의 청량한 느낌 대신 노을이 지는듯한 느낌의 사진으로 마무리를 해야 했다. 언뜻 보면 명화의 색상을 닮은, 수채화종이 위에 정성스럽고 어설프게 그려진 그 사진을 볼 때마다 가슴 한켠이 애잔해진다. 사진 속 그 장소에서 느꼈던 감성은, 애를 쓰며 작업하던 동안 되새김질 했던 감상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더욱 단단해졌다. 그 사진을 보면서 느끼는 그리움 같은 것들의 출처가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나는 이어폰을 뽑고 가방을 현관 옆에 위치한 작은 방의 한구석에 두고, 새 속옷과 잠옷을 들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먼저 땀으로 젖은 옷을 전부 벗은 후 변기에 앉았다. 그리고 집중했다. 집중하려고 애쓰지 않으면서 태연하고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나는 집중을 하고 있었다. 초조함은 변기 밑으로 푹 꺼졌고 안도감이 밀폐된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요 몇 일간의 일들이 떠올랐다. 그러고는 ‘지금 잘 하고 있는 거겠지’라고 생각했다. 문득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떠올라 치를 떨 듯 고개를 저었다.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치부가 스멀스멀 떠오르려하자 나는 또 치를 떨며 고개를 떨었다.


누군가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보면 희극이라고 했었는데, 지금 내 모습이 딱 그런 것 같다. 바로 이 모습이야 말로 딱 그 꼴이지 않은가. 홀딱 벗고 앉아 변기에서 똥을 싸면서 ‘나의 삶이란…’라며 생각하는 사람이라니. 바로 이게 삶인 거구나…. 원초적인 순간에 떠오른 삶에 대한 물음. 그러고 보면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의 포즈도 변기에 앉아있는 사람과 비슷하지 않은가. 나는 다시 고개를 한번 파르르 떨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거울은 뿌예져 있었다. 거울을 손바닥으로 비볐다. 맨얼굴의 모습이 잠깐 보였다가 금세 다시 없어졌다. 그러면 나는 다시 또 손으로 비비고 잠깐 드러난 얼굴을 쳐다봤다. 어제 모습이나 오늘 모습이나 달라진 것은 없어 보였다.그런데 몇 년 전의 사진을 보면, 매일 봐왔던 같은 얼굴이었는데도 어째서 다른 걸까. 언제 이렇게 얼굴이 변해버렸을까.


나는 매일 달라지는 그 차이를 왜 보지 못할까. 오늘 변해버릴 얼굴의 미묘한 차이를 나는 절대 내일은 알아차릴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얼굴이 오늘의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어제와 같은 얼굴이라고 착각하는 무능력한 시각인지능력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게 착각하고 있을 어제와 오늘이 아쉽게 느껴질 뿐이다.


뜨거운 물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몸 구석구석 찝찝하게 엉켜 붙어있던 피로가 씻겨 지고 있음을 느낀다. 어제와 비슷한 따뜻함과 쾌적함을 느낀다. 비슷한 음악을 듣고 매일 눕던 자리에 눕는다. 오늘 하루도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하루였다고 생각해본다. 이런저런 생각도 몇 년 전에 하던 생각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동시에 미래를 떠올린다. 어제와 오늘과 다를 먼 훗날을 상상한다. 먼 미래가 사실은 ‘오늘’의 다른 이름뿐일 거란 것을 알면서도 의지한 채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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