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마음을 찾아드립니다 ㅣ 한공기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정작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의 본질은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있습니다. 전 그것을 찾아주고 싶어요.
작가 프로필 ㅣ 한공기
글쓰기 공동체 '파운틴' 운영자
보통사람의 사소한 일상이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송중기처럼 청순한 남자이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이름도 비슷하다.
대한민국 직장인들은 공통적으로 (아닌 극소수의 사람도 있겠지만) 폭력에 둔감하다. 이성과 논리를 벗어난 사측의 무리한 요구에 수긍하는 버릇으로 내성이 생긴 것이다. 점점 마음을 잃어가고 나도 어느새 폭력적인 사람으로 변해간다. 그래서 나 역시 나보다 을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 몹쓸 악순환적인 도미노 현상의 주원인은 그놈의 '돈'때문이다. <내가 돈을 주니까 너에게 폭력을 행사해도 된다>는 당연한 생각, <나는 돈을 받으니까 폭력을 감당해야 한다>는 당연한 생각.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발상 아래 우린 그렇게 천박한 인간이 되어 온 것이다. 입구도 없도 출구도 없는 그 꽉 막힌 미로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사랑>이다. 나를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은 내 삶에 기적을 만들고 생각지도 못한 과정으로 그 미로를 탈출하게 만든다. 못 믿겠으면 직접 시험해봐도 좋다. 동굴 밖으로 나온 당신은... 자신이 얼마나 갇힌 세계 속에서 살아왔는지 후회할 것이다. 하지만 남을 탓할 필요가 없다. 그 시스템에 동조하고 쫓아가고 물든 나 자신이 원인이었다. 나의 이기심. 그것이 죄다.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험난한 여정과 회기와 반성으로 우린 알을 깨고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니까... 경험이 없으면 성장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란 단어는 너무나 막연하다. 수년간 교회를 다녔지만 교인들에게서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다. '사랑'이란 완전한 이데아이다. 신의 본질이며 '아름다움'의 진수. 우리는 죽을 때까지 그것을 추구하지만 그것에 얼마나 가까이 도달하고 죽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차라리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호흡'
우린 누구나 호흡하고 있다. 우리의 숨은 과연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숨으로 인간을 만들었다고 했다. 신의 호흡이 우리의 호흡과 맞닿아 있다. 호흡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호흡하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사람을 본 적은 많다.
사람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본다.
첫 번째 인간은 머리 뚜껑이 열려있는 인간이다.
그런 나는 언제나 흐른다. 나의 생각이 타인에게 흐르고 타인의 생각이 내게 흐른다. 그래서 시시각각 변화하며 고정불변이란 존재하지 않는고 본다. 나는 커뮤니케이션에 능하고 혼자 있기보다 타인가 함께 공존하는 것을 즐긴다. 나는 자신을 규정짓지도 타인을 규정짓지도 않는다. 매 순간 무엇을 할까 고민하기보다 주변 환경과 교감하며 어느새 나도 모르게 뭔가를 하고 있다.
두 번째 인간은 머리 뚜껑이 닫혀있지만 안에 여백이 있다.
그런 나는 고집이 센 편이지만 타인의 말에 고민한다. 그것을 수긍할 것인지 무시할 것인지 좀 더 생각해볼 문제이다. 빨리 변하지는 못하지만 변화하려고 애쓴다. 나 자신과 오랫동안 대화하고 가끔 혼잣말도 한다. 때론 치열하게 자신과 싸움을 한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나는 언젠가 자기의 머리 위를 짓누르는 뚜껑을 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 나는 열고 싶어 한다. 확장하고 싶다. 타인을 나의 세계에 받아들이고 싶다. 나도 타인의 세계에 녹아들어 가고 싶다. 하지만 좀처럼 쉽지 않다. 언젠가 그것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오늘도 주변 사람들 눈치를 존다. 조심스럽게 말하고 남의 말을 귀 기울이려고 노력한다.
세 번째 인간은 머리 뚜껑이 닫혀있고 여백 없이 완전한 진공상태이다.
그런 나는 늘 답답하다. 숨이 막히다. 머릿속엔 오직 자신의 내 생각으로 가득 차 있고 항상 내가 옳다고 판단한다. 나는 불만투성이다. 세상은 뭔가 잘못되었고 주변에는 이상한 사람들뿐이다. 타인들이 내 이야기를 이해 못해서 속상하고 나 역시 타인을 이해 못한다. 사람들이 왜 날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섬에 갇힌 기분이다. 아니 나만 혼자 살 수 있는 낙원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가끔 죽고 싶은 기분이 든다. 나는 가끔 분노가 치밀고 나는 가끔 폭발한다.
살면서 세 번째 유형의 사람을 정말 많이 만났다. 아니 나 역시 한때는 세 번째 유형의 사람이었다. 분노조절이 안돼서 가끔 술상을 뒤집어엎기도 했다. 그 시절엔 매일 자살을 생각했다. 내 삶이 꽉 막힌 듯했고 지구가 아닌 어딘가에서 살면 숨통이 트일 것만 같았다. 당신엔 불평불만으로 사로잡혀 세상과 주변 사람들을 원망하며 살았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호흡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호흡이란 들숨과 날숨의 반복. 즉, 외부의 것이 내 안에 들어오고 내 안의 것이 외부로 나가는 것을 말한다. 내가 호흡하지 않는 인간으로 자란 것은 어쩌면 부모님 때문이다. 강남 8 학군에서 초중고를 다니며 난 독서실 안에서 자라났다. 책상이 네 개가 있는 조그만 방. 그 방이 나의 고향이었고 나의 아지트였다. 그런 갇힌 세계에서 세상이 원하는 인재가 되기 위하여 세상이 강요한 코드들을 달달달 숙지했다. 그 코드만 제대로 알면 난 서울대도 가고 대기업도 취업해서 출세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 믿음이 순식간에 무너진 것은 고3 때였다. 수능을 앞둔 고3 때 난 머리가 너무 아파 병원에 갔다. 솔직히 말하면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아마도 뇌의 무호흡증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난 환청도 듣고 환각도 보았다. 당시 의사는 스트레스로 인한 과민반응이라 진단하고 신경안정제를 주었다. 그 약을 먹고 난 시름시름 앓았고 꾸벅꾸벅 졸았다. 그리고 공부를 하지 않았다.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일탈을 즐겼고 수능을 망쳤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늘 공부만 하고 항상 상위 성적을 유지하던 내가 수능을 몇 달 앞두고 대학을 포기한 사람처럼 놀고만 있으니. 어머니는 그때까지 내게 투자한 학원비가 얼마인지 말끔하시며 울면서 애걸복걸하셨다. 하지만 난 정말 공부가 하기 싫었다. 결국 전교 등수 100등 떨어지고, 4등급이나 하락하면서 난 어릴 적부터 원하던 대학을 못 가게 되었다. 어머니는 지금도 당시의 나를 미스테리로 여기시지만 난 내가 그때 왜 그랬는지 잘 안다.
난 살고 싶었다. 숨을 쉬고 싶었다. 내가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소통이 없는 주입식 교육에 지칠 대로 지친 것 같다. 교실에 앉아있는 것 만으로 숨이 막히고 미칠 것만 같았다. 그곳은 입구도 출구도 없는 미로 같았다. 다행히 난 지금 어른이 되어서 내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공부를 한다. 하지만 지나가는 교복 입은 학생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들도 예전의 나처럼 세 번째 유형의 사람이 아닐까 의심해본다. 진공상태의 인간은 언젠가 폭발하기 마련이다. 그 순간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도 있고 자해나 자살로 연결될 수도 있다. 나의 폭발기는 폭음과 폭주(친구가 모는 친구 아빠 차를 타고 밤새 달림)였다. 난 그때를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로 기억한다. 그래 난 드디어 뚜껑이 열린 것이다.
그렇다고 뚜껑이 완전히 열린 것은 아니었다. 진공상태에서 약간의 여백이 생긴 것이라고나 할까? 난 여전히 자폐적이었고 여전히 고집이 셌고 여전히 소통능력이 부족했다. 그런 내가 조금 더 열리게 된 계기는 대학 때 만난 첫사랑과의 연애이다. 선배를 따라 같은 학교 무용과 공연 촬영을 했다. 공연 후 뒤풀이 때 무용과 학생들과 술을 마셨다. 당시 말수가 적었던 나는 연신 담배만 피워댔다. 내 앞에 있던 무용과 학생은 손을 내저으며 "왜 그렇게 담배를 많이 피어요?" 물었고 난 "할 게 없어서..."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럼 담배 좀 끄고 얘기나 해요." 말했고 난 그녀가 시키는 대로 했다. 우린 그렇게 친해졌고 이후 사귀게 되었다. 대학 졸업할 때까지 우린 캠퍼스 커플로 지냈고 그 시기에 나는 정말 많이 열리게 되었다. 하지만 늘 부족한지라 여자 친구와 자주 싸웠고 졸업하자마자 그녀와 헤어지게 되었다. 3년간 사귄 여자 친구와 헤어지니 참 많이 아팠다. 당시 명동성당 앞에 작업실에서 살던 나는 매일 남산 꼭대기까지 뛰어 올라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칠 것만 같았다. 그 시기에 나는 많이 변하게 되었다. 나를 떠나간 그녀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녀가 내게 했던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오빠랑 있으면 숨 막혀. 자기 할말만 하고 내 얘기는 들어주지 않고, 자기가 먹고 싶은 것만 먹고, 자기가 듣고 싶은 노래만 듣고... 왜 내 생각을 해주지 않지? 오빠는 조금도 희생하지 않으려고 해."
"오빠는 왜 단 한 번도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해?"
난 지금도 가끔 무심코 내 머리를 만져본다. 뚜껑이 완전히 열렸을까? 아직도 닫혀있을까?
제대로 호흡하려면 뚜껑을 열어야 하는데...
얼마 전 진짜 뚜껑이 열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하게 된 극적인 사건이 있다. 아는 선배가 시작하는 사업을 돕게 되었다. 선배는 노량진의 대형 임용고시 학원 강의 촬영 외주 일을 맡게 되었다. 원래 있던 외주업체가 밀려나고 선배 회사가 그 일을 꿰차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선배가 학원 강의 촬영일에 경험이 없었다. 한 달에 100강 정도 촬영을 해야 하는데 컴퓨터도 카메라도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고, 강사들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해야 할지... 촬영본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전혀 감이 없었다. 학원 측에서는 매뉴얼을 건넸지만 나름 전문적이고 디테일한 과정에 대한 경험적 인식이 필요했다. 가장 좋은 것은 전 외주업체에게 문의하는 것인데 우리 때문에 밀려난 외주업체가 해코지나 안 하면 다행이지 가르쳐줄 일이 없다. 그렇게 미로에 갇힌 나와 선배는 거의 일주일을 끙끙 앓았다. 조만간 강의 촬영이 시작인데 큰일이다... 어떻게 하지? 그런 고민을 하다가 결국 우린 너무나 절실한 나머지 얼굴에 철판을 깔고 전 외주업체 팀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일이 이렇게 돼서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의 반응은 우리의 선입견을 뒤집었다. 그는 아주 흔쾌히 도와주었고, 회사가 없어지게 되어 새직장을 구하고 있는데 괜찮으면 우리와 함께 일하고 싶어 했다. 선배는 이런 행운이!!! 외치며 바로 그 팀장을 스카우트하였고 순조롭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신기한 경험을 하면서 난 정말 머리에 뚜껑이 날아간 기분이 들었다. 그 팀장을 만나기 전까지 우린 정말 미로에 갇힌 기분이었고 아무런 방법이 없다고 단정했다. 하지만 세상일은 정말 모르는 것이다. 나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다. 미로는 그저 나의 갇힌 머릿속에만 존재할 뿐... 세상은 이미 무한하게 열려있다.
내 삶을 한정 짓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구나!
느끼고 나서야 난 '무한한 가능성'을 믿게 되었다. 어쩌면 난 이제야 호흡을 시작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설마... 안 되겠지... 될 리가 있겠어?'
그런 부정적 판단과 인식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던 걸까? 누가 나의 머리를 그렇게 꽉 잠가놨을까?
이제 평생 맛보지 못한 완전한 자유를 느끼며 매일매일 설레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을 버리고 그저 오늘을 최선을 다해 충만하게 사는 것.
그것이 '망상적 삶'이 아닌 진짜 삶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