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먹는 여자 ㅣ 임나무
매일 500 페이지를 읽습니다. 제가 글을 쓴다면 '카프카'처럼 쓰고 싶어요. 카프카를 읽으면 약간 푸르스름한 흑백영화를 보는 기분이 듭니다.
작가 프로필 ㅣ 임나무
취미가 독서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엄청난 독서광.
자신이 읽은 책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국민학교 2학년 때 엄마를 졸라서 백 권 짜리 문고판 명작동화를 산 적이 있다.
신문에 끼어온 전단지를 보고 아침 내내 울며 떼를 써서 겨우 겨우 손에 넣었었다.배달 오신 아저씨가, 마루를 팔짝팔짝 뛰며 신이 난 나에게 말했다, "네가 전국 1번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끝까지 안 사주고 싶었던 게 이해가 될 만큼 종이 질도, 삽화도 후졌다.
요새 나오는 작은 만화책만큼이나 작았고,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글도 후졌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겐 인생 첫 책이었고, 오랫동안 유일한 책이었다.
표지들이 낡아 다 떨어질 때까지, 엄마가 '뽕은 열 번도 더 뽑았다'고 할 만큼 읽고 또 읽었다.
3년이 지나고 5학년이 되었다.
한동안 엄마의 뜨개질 부업이 바빠지더니 어느 날 으리으리한 양장본 문학전집이 집에 들어왔다.
엄마는 책이 도착하자마자 누더기가 된 내 문고판을 내다 버렸다.
"으이구, 속이 다 시원하네! 이제 저거 읽어."
나는 그 새하얀 전집을 1년이 넘도록 한 번도 건드리지 않고 그저 노려보기만 했다.
엄마는 "5학년부터는 수준을 높여서 읽어야 한다"며 닦달했지만, 난 여전히 생이별한 문고판을 그리워했다.
백설공주도, 괴도 루팡도 없고, 빽빽이 꽂힌 88권의 낯선 점령군들은 빈틈 하나 없는 성벽 같았다.
어느 겨울날 엄마보다 젊고 예쁜 외숙모가 책장을 들여다보더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책을 하나 골라서 집에 가져갔다. 외숙모가 책을 꺼낸 빈자리를 한없이 바라보다가 나도 외숙모처럼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책을 하나 골라 보았다.
옛 친구 문고판보다 크고, 두껍고, 글씨도 많고, 그림도 적다.
울컥했지만 참기로 하고 꾸역꾸역 읽었다.
그리고 그 날 나는 문고판을 잊었다, 깨끗이.
다음 날부터 아침밥을 먹자마자 귤 한 바구니와 매우 신중히 고른 책 다섯 권을 챙긴다.
아랫목 담요 밑에 배를 깔고 엎드린다.
책을 왼쪽에 쌓아놓고 귤을 까먹으며 한 권씩 읽는다.
다 읽은 책은 오른쪽에 쌓아놓는다.
귤 바구니를 다시 채운다.
다섯 권이 모두 오른쪽으로 옮겨가면 날이 저물고, 이제 저녁을 먹을 시간이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올라가는 그 해 겨울 방학은 내내 그렇게 보냈다.
매일 책을 보고, 귤을 먹고, 얼굴은 노래지고, 귤 똥을 쌌다.
책 그만 보고 밖에 나가든 공부를 하라고 엄마는 자꾸만 구박했지만,
나는 빨간 담요로 번데기집을 짓고 그 안에서 새로운 나를 만들었다.
낯선 땅, 낯선 사람, 낯선 사건, 낯선 감정과 씨름하며 치열하게 존재했다.
그렇게 나의 책 읽기는 첫 번째 변태를 끝냈다.
그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그때는 어려서 잘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설명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겨우내 번데기집 안에서 품고 있었던 이질적인 것들은 곧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나를 이루었다.
전에는 있는 줄도 몰랐던 것들이 이름과 의미를 갖고 눈에 띄기 시작했다.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 두렵고 낯설 때, 어떤 대응을 해야 할지 막막할 때,
나는 내 안에 축적된 여든여덟 권의 세계를 사전처럼 탐색하고, 그 속에서 생각과 행동을 조합해냈다.
수많은 현실의 사건과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참조되는 원형, 그것이 바로 변태의 산물이었다.
그 후로도 몇 번인가 변태의 시기가 있었다.
이제는 열세 살 때처럼 자연스럽게 찾아와서 따뜻하고 배 부르게 누릴 수 있지는 않다.
갑자기 들이닥친 낯선 현실이 나의 대응을 독촉할 때,
어느 날 문득 내 안의 원형이 문고판 동화처럼 낡아버렸다고 느낄 때,
현실의 집요한 추적을 피해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다급한 도피이자 고행이 되어버렸다.
올 겨울, 나는 다시 고치를 짓고 그 안에 침잠하고 있다.
나를 둘러싼 세계가 다시 판타지가 되어버린 지금, 내 삶에서 가장 잔혹하고 캄캄한 겨울이다.
더는 이해할 수도, 노력할 수도 없는 세상에 이물질로 살아가기를 거부해버리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읽는 것뿐이다.
매일 다시 내 속에서 새로운 내가 차오르기를 바라며 높은 성벽 같았던 책들을 골라 공성전을 벌인다.
따뜻한 아랫목 대신 차가운 도서관 구석에 틀어박힌 채 나도 모르게 자꾸 이를 악물고 있다.
빽빽한 서가 옆 창문을 마주 보고 앉아 귤 바구니 대신 녹차 한 컵으로 하루를 버틴다.
머리카락으로 커튼을 친 채 아무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듣지 않는다.
스산한 겨울 숲이 내다보이는 창문 틈으로 쉴 새 없이 냉기가 파고든다.
정신이 차갑다.
마음속에 방향 잃은 분노가 미친 듯 춤을 출 때면 큰 한숨으로 냉기를 들이마시고 분노를 얼린다.
오직 나 하나만 파먹고 사는 식솔들의 눈빛도, 차가워진 녹차 한 모금으로 외면할 수 있다.
처음에 서글펐던 그 눈빛은 곧 원망으로, 혐오로 변하고 언젠가는 내 몸에 사과를 던져 박아 넣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에는 무시한다.
나도 좀 살아야겠기에.
너희들을 판타지 속에 지키기 위해 이 좁디좁은 마흔의 껍질을 벗어야 한단 말이다.
어쨌든 다시 세상에 덤벼야 할 사람은 나 혼자란 말이다.
변태의 산물은 나비,가 아니라 존재일 것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보통의 발란스' 파운틴 매거진은 <개인의 일상이 콘텐츠다> 라는 모토를 가지고, 보통 사람의 보통이야기를 최고의 가치로 평가하는 글쓰기 공동체입니다. 글쓰기에 관심있는 누구나 가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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