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이름모를 그대에게 쓰는 편지

공통주제 <편지쓰기> ㅣ 곽정빈

by 한공기
KakaoTalk_20160508_223016445.jpg 싱클레어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또 좋아하는 책이 헤르만헤쎄의 데미안입니다. 그래서인지 평소 인간 본연의 양면성을 사랑하고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말을 곧 잘하곤 합니다.


작가프로필 ㅣ 곽정빈

저는 3년간 하던 일을 그만두고 지난 1년간 세계여행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두 눈을 황홀하게 채우는 수많은 풍경들보다도 여태껏 가져보지 못했던 무지막지한 혼자만의 시간을 대면해야 했던 것이 가장 큰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시간들을 글을 쓰면서 채워 왔습니다. 글을 쓸 때 비로소나 나 스스로가 나 다워지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희미해져만 갔던 나의 자아가 글을 쓰면서 뚜렷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시작된 제 인생의 2막에서 지속적이고 전문적으로 글을 써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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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당신의 이름도 나이도 출신도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편지를 씁니다.


결코 받을 수 없는 편지라는 것이 편지의 정체성을 의심케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평소라면 내가 누구에게도 할 수 없을,
그리고 당신이 누구에게서도 들을 수 없을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봅니다.


지금 당신은 제가 있는 이 곳 카페 안 저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습니다.
희미한 세로방향의 스트라이프가 진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옆 의자에 당신의 검은색 외투를 걸쳐 놓았습니다.
앞 머리를 양갈래로 따 뒤에서 단정하게 삔으로 고정한 뽕머리를 하고 있습니다.
잡티 하나없이 하얗고 깨끗한 피부. 작은 얼굴에 오목조목하게 자리잡은 이목구비가 계속해서 눈길을 끕니다.
혹여라도 눈치챌까 뻐근한 목을 좌우로 돌려가며 스트레칭을 하고, 당신의 방향으로 밀어둔 애꿎은 커피만 계속해서 찾습니다.


가지런한 열 손가락 끝으로 순백의 네일, 가냘픈 왼쪽 손목의 은빛 손목시계, 오른쪽 손목에 각각 검고 하얀
팔찌가 두 개, 오른손 두 번째 손가락의 실반지, 작고 앙증맞은 두 귀에는 큐빅 귀걸이가 미세하게 떨리며 매달려 있습니다.

전체적인 의상과 악세사리의 톤이 아주 일관적입니다.
집을 나서기 전 전신거울 앞에서 오랜 시간을 서성거렸을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폰 케이스가 없지만 흠집하나 없는 아이폰을 보니 평소 조심스럽고 차분한 성격임에 틀림없습니다.
무역영어, 고려대학교 노트, 빨강 파랑 초록의 볼펜들, 자주 사용했는지 머리가 거멓게 변해버린 지우개가 꼭 맞는 양철 필통에 들어차 있습니다. 비지니스 우먼을 연상케 하는 의상. 하지만 풍기는 분위기와 소품들의 정황상 스물둘과 스물넷 사이 즈음의 대학생일 것입니다.


메시지를 확인하는 두 눈 가득 반가움이 어렸다가 이내 곧 사라집니다.
장시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타이핑을 하는 양 엄지손가락의 미동에서 기대와 망설임과 약간의 두려움이 전해집니다.
당신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 남자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
당신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폰 너머의 남자는 과연 누구일까요?
폰을 다시금 내려놓고 애써 밑줄을 그으며 책에 집중하려는 당신의 눈에는 이미 그가 가득 들어있는 듯 합니다.


카페 안으로 귀에 익숙한 팝송이 흘러나옵니다.
"Everybody's talking how I can't can't be your love. But I want wnat wanna be your love for real"
주말 오후 3시 신천의 북적북적한 한 카페 안의 백색소음 속에서,
유독 선명하게 들리는 레이첼 야마가타의 노래 위에서 별안간 그 곡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당신.


나는 당신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어림짐작을 할 뿐입니다.
굳게 닫혀 열리지 않는 그 작은 입에서.. 내가 결코 알 수 없을 당신과 그의 이야기...
내가 당신의 그가 되진 못하겠지만 내 기꺼이 그대 행복한 내일을 그려 드리리다.
그대 내 펜 위에서 그와 함께 춤추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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