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나의 서른으로부터

공통주제 <편지쓰기> ㅣ 김연정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5-11 오후 1.52.32.png 디자이너


즐거운 감정은 빨래가 마르듯 금방 날아가 버리고, 우울한 감성, 생각들은 언제나 침전하여 남아있음을 느낍니다. 우울함, 불안함, 슬픔, 좌절감에 예민하고 행복에 예민하지 못한 제 자신이 조금 부정적인 사람이라고 느껴지지만, 아직까지는 수면 위 햇살보다는 우울한 바다 쪽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어두운 것들이 가라앉아 있는 심해心海 속을 당분간 탐구하면서 글을 써 볼 예정입니다. 언젠가는, 나를 힘없게 만드는 것들에 대한 예민함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에게로 자리를 옮겨가길 기대합니다.



그레이 오렌지 ㅣ 출판 디자이너

시각디자인 전공. 필살기는 출판 관련 디자인. 사진찍기와 그림그리는 것을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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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편지 쓰는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지금 활동하고 있는 ‘파운틴’이라는 글쓰기 공동체의 이번 달 주제가 ‘편지’라서 써야 한다는 압박을 받으 이 자리에 있어. 엄마 아빠, 동생이랑 살고 있는 아파트의 나의 작은방에서 올해 들어 샀던 작업용 컴퓨터로 타자를 치고 있어. 편지를 쓰기에 앞서 문득 백과사전에서는 편지의 정의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자신의 안부나 소식 따위를 상대방에게 전하는 거라고 하더라구. 그래서 그냥 편하게 내 이야기를 쓰며 안부나 전하려고 해. 언젠가 이것을 보는 네가 이 편지를 읽었을 때,오래된 책을 넘겼을 때 풍기는 냄새를 맡길 바라며….

나는 올해로 서른 살이 되었고, 3월 말에 회사를 관두고 쉬고 있어. 돈이 필요할 때 일을 하고 있고, 요즘은 그냥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지내. 사실 이전에 퇴사를 하고 쉬었을 때처럼 불안해하고 초조해하고 쓸데없는 생각들로 우울하게 보낼까 봐 걱정을 하기도 했어. 그런데 얼마 전에 미용실에 가니까 나보고 새 머리가 나고 있다고 하더라구. 그 말인즉슨, 나도 모르는 사이에 머리 뒤쪽에 탈모가 왔었는데 다행히도 머리가 새로 나고 있다는 뜻이더라구. 회사를 관두길 정말,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앞으로 혼자서 일을 해봐야겠다고생각을 했는데, 미래는 알 수 없는 거니까 단정하지는 않으려고 해. 사실 전 회사가 유별난 거였고, 따지고 보면 회사를 다닌 경력이 길지 않으니까 더 기회를 열고 있어야겠다는 생각도 해. 내년 여름까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버텨보려고 해.



지금도 나는, 내가 스스로 일을 해보겠다고 나선 것이 지난 과거에 대한 섣부른 판단으로 인한 도피인 것인지, 원래부터 나는 그래야만 했던 사람인 것이었는지 확신이 서질 않아. 어떤 것을 하기로 결정하기 전에 앞서 나는 항상 무엇으로부터 피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막상 피해서 디딘 땅의 모양은 알 수가 없고, 옆에 아무렇게나 떨어져있는 돌멩이로 땅에 선을 그어서 그것을 길로 여기고 위태롭게 걸어가는 것 같아.



그렇게 그어온 선의 출발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6살적의 내 모습이 보여.



햇살이 좋은 봄이나 초여름이었던 것 같아.

그 당시 나는 피아노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날은 학원 문이 열기도 전에 일찍 도착했었어. 시간을 때우려고 학원 앞의 길턱에 앉아 스케치북을 폈어. 스케치북의 맨 첫 페이지는 색칠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표지의 그림이 선으로만 그려진 채 인쇄가 되어있었어. 그 페이지를 넘기면 바로 뒷면에는 앞면의 그림이 살짝 비쳤어. 나는 비친 선을 따라 그리는 것을 좋아했었어.

그때도 그렇게 따라 그리고 있었는데, 마침 지나가던 아줌마가 내 그림을 보고 수선을 떨며 칭찬을 하기 시작한 거야. 그저 비치는 대로 따라 그린 것인 줄도 모르고 아줌마는 나보고 천재라며 그야말로 폭풍칭찬을 했었어.

나는 그 아줌마의 칭찬에 너무나 기분이 좋았어.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 언젠가 커서 화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을 한 게.

무슨 그림을 그릴지, 내가 그것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지. 그림을 그리는 작가란, 단순히 필력의 문제가 아님을 전혀 짐작도 못한 채. 또 누군가의 칭찬을 계속 듣고 싶다는 설렘으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인정해주는 대학교. 성적이 제일 좋았을 때 갈 수 있는 전공을 목표로 두는 것은 쉬웠어. 내 그림을 보고 칭찬해주는 사람들, 나의 진학에 기대하는 선생님과 부모님에 둘러싸여 나는 의기양양했어. 방황할 사춘기로부터 그들이 나를 보호했어. 그래서 나는 그저 얌전하게 앉아, 도화지에 선을, 4B연필 세 개를 테이프로 칭칭 감아 삼지창을 만들어 2절지 위에 무심하게 깔았었나봐. 그렇게 종이 위에서 서서히 밀도가 올라간 줄리앙은 누렇게 변색된 채 여전히 남아있어. 몇 번이고 눌러댔던 붓 터치에서 석고상의 형태와 공간감 외에 어떤 의도도 나는 볼 수가 없어.



10대가 지나갔고 스무살이 되어 재수를 한 끝에 2지망이었던 학교에 간신히 들어갔어. 대학교에서 내주는 과제들은 언제나 넘쳐났고, 그것을 제출하는데 최선을 다하다 보면, 졸업 후에는 이 분야에서 괜찮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맹목적으로 미대를 왔었던 것에 대한 죄책감을 항상 느끼고 있었고, 결국 고민 끝에, 학교를 휴학하고 미술감독이 되겠다고 영화판에 뛰어들었어.



나는 그때 어떤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았어. 누구나 어떤 사적인 사연으로 말랑해 졌을 때 우연히 들은 멜로디가 가슴을 후벼 파온 기억이 있듯이.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질 않는 어떤 영화가 축 쳐져있던 나를 흔들었어.

정지된 화면이 아닌 누군가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을 수 있는 화면을, 이야기를, 슬며시 가슴에 새기는 사람. 미술감독. 단순히 그 이유로 시작을 했어. 영화는 중요하지 않았어. 사람의 기억에 남는 잔상. 내가 멋대로 내려버린 정의에 낭만적인 기운을 받았고, 술기운에 막말을 해버리듯, 무작정 영화미술팀에 들어가게 됐어.



복학 후 이 일을 계속 할 건지에 대해 고민해보고 졸업 후에 결정하겠다는 내 말에 언젠가 미술감독님이 ‘너는 현실적인 타입이구나. 나도 그랬어.’ 라고 말했을 때,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반항기가 들었다가 그 말이 맞나 싶어서 입을 다물었던 적이 있어. 현실적이라고 하기엔 내가 너무 생각 없이 뛰어든 것이 아니었나. 이 길이 아닌 것 같으면, 복학 후 학업을 마치고 다른 길로 가면 된다는 생각은 현실적이라기보다, 또 선을 그을만한 돌멩이를 줍고 있는 일은 아니었을까. 그런 시도가 현실적인 것이라면, 내 앞길은 바람에 날리는 모래로 없어질 선만큼이나 위태로운 것일까.



내가 영화 미술팀에서의 일을 끝까지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중간에 뛰쳐나갔을 때 뒤따라 올 허무함을 견디지 못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었어. 어떤 일을 하든지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려는 자세. 나는 지금 그것이 너무도 싫다. 너무나 맹목적으로 열심힌 사람이 되기가 싫어. ‘여자 친구에게 올인하는 스타일이야’라는 소개팅 주선자의 멘트만큼이나 무의미하게 느껴져. 모든 연인에게 성실하고 싶지 않아. 모든 노래가 좋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 모든 경험들이 전부 내게 피와 살이 되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



쉽게 예측할 수 있다시피, 단순하고 호기로웠던 도전은 1년 만에 끝나버렸어. 나는 이제 그때의 기억을, 내 인생에 다시없을 20대의 방황,도전 정도로 기억하고 있어. 그 경험으로 가치관들이 바뀌었고, 앞으로 무언가에 업을 두고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더욱 현실적으로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사실이야. 잊지 못할 즐겁고 힘들었던 추억으로 남은 것 또한 사실이야. 어쩌면 이렇다할만한 이야기꺼리가 없을 내 20대를 채워주는 것은 그때의 무모한 도전이었을지도 몰라.



지금은 굉장히 더운 여름이고 나는 서른이 된지 약 두 달이 되었어.

솔직히 아직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는 잘 모르겠어. 스무 살 때는 앞으로의 20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어. 대학교에 진학하는데 급급했어. 지금은 돈을 버는 것에 대한 생각과, 어떤 분야에 내 자리도 한켠 만들고 싶은 생각으로 조금 조급해져있어.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확실하게 내가 바라는 건, 독립을 한 다음 강아지나 고양이를 기르고 싶다는 거야.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



이제는 한 장을 더 넘겨볼까 해.

더 이상 표지의 그림이 비치지 않는 종이에 다음을 그려볼까 해.

앞으로 1년 동안은, 먼저 그림을 그리기 전에 충분히 에스키스를 여러 장 그려볼까 해.

나중에 그 그림을 다시 봤을 때, 나의 선, 지우개 자국, 붓 터치 하나하나에도 의미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 작업이 어설프더라도 괜찮아. 아직 나는 젊고, 남은 종이는 충분히 있으니까. 그리고 에스키스는 그 자체로도 예술이 되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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