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적 관찰일기 ㅣ 최미애
명상을 하면서 '관찰'이 취미가 되었어요.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촉감을 느끼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파악하는 관찰 작업을 수행하고, 그렇게 관찰하고 있는 자신을 순간 순간 깨달을 수 있도록 뭔가를 좀 써봐야 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작가 프로필 ㅣ 최미애
IT 9년차 직장인.
불교와 명상에 관심이 많아 경전을 읽으며 '집중'과 '관찰' 수행을 하고있다.
자신의 특기를 이용해 세상에 관한 '관찰일기'를 쓰려한다.
고은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고은이와 친구가 된 것이 초등학교 때의 일이니, 20년 이상을 알아온 사이다. 내 기억 속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고은이는 마르고, 얌전하고, 우유부단한 사람이었다. 대학에 들어오면서 거리가 멀어지다 보니 만날 일이 적어지고, 어쩌다 연락을 한다고 하면 고은이에게 뭔가 문제가 생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내 성격이 지금보다도 까칠하던 시절이다 보니 그런 연락을 받고 만나서 고민하는 내용을 듣다 보면 답답해서 화를 내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고은이는 그렇게 화를 내주는 게 나름 속이 시원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그 애에게는 항상 내가 제일 친한 친구이고, 언제나 신뢰 대상 1순위였다. 하지만 고은이가 지금 남편을 만나고 결혼을 하면서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연락하는 일도 드물어졌다. 이번 추석 때 만나기 전, 마지막으로 그 애를 만났던 것은 작년 어느 비 오는 날이었다. 그때 그 애는 임신 5주차였다. 이미 한 번 유산을 한 터였다. 그것도 남들처럼 수월하게 넘어가지 못했다. 혈소판이 정상인보다 절반도 안되는 바람에 쇼크가 왔었다. 한 달 가까이 입원해서 투병했고, 그 와중에는 차마 나에게도 연락도 하지 못했다. 몇 달 동안 연락을 안 하는 것도 흔한 일인지라 나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작년에 만났을 때 고은이는 지난번 같은 일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 일도 그만두고 최대한 조심하고 있었다. 그 때 나는 태교에 도움이 바라길 바라며 컬러링북과 색연필을 선물로 주었다. 이번 추석 연휴에 만났을 때는 이미 아기를 낳고 백일을 앞두고 있었다. 6월에 출산하고 연락을 하지 못했던 것은 내가 오랫동안 사용하던 휴대폰 번호를 없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의 정신이 추석 때 친구들에게 안부 문자를 보낼 정신이 들 때까지 일에만 미쳐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추석 다음 날, 나는 두어 주 이른 아기 백일 선물을 사 들고 고은이의 친정이 있는 동네로 갔다. 애가 아직 많이 어려서 이번 추석 때 시댁에 가지 않고 친정에 가 있다고 했다. 그곳은 우리가 같이 다닌 중학교 근처였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자주 가던 동네였다. 중학교 다닐 때 지어진 아파트촌이었는데, 그다지 경관은 바뀐 게 없었다. 약속 시간이 되자 익숙한 골목 사이로 고은이의 모습이 보였다. 얼굴은 기억대로 마른 모습 그대로인데, 몸은 아이를 낳고 난 후 부기가 빠지지 않아 예전의 실루엣과는 많이 달랐다. 머리는 뒤로 묶고, 편해 보이는 감색 원피스를 입고, 운동화를 신은 고은이는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고은이는 예전의 말투로 나를 '군', 이라고 불렀다. 그것이 그 애가 나를 부르는 애칭이었다.
전에 봤을 때보다 내 머리가 많이 길었다던가, 많이 뚱뚱해지지 않았느냐는 둥 이야기를 하며 카페에 들어섰다. 단 걸 먹고 싶지만, 살을 빼야 한다며 고은이는 차 종류를 시켰다. 주문한 음료가 나오길 기다리는 사이에 나는 아기 선물로 사온 내복을 건넸다. 고은이는 어머 화사하네, 하면서 재빠르게 사이즈부터 살폈다. 아기는 금방 크다 보니 백일 선물이라고는 해도 6개월 정도에 맞추어 준비하는 게 일반적이라고는 하는데, 아직 많이 큰 모양이었다. 고은이의 아기는 36주 만에 2.3kg로 태어났다고 들었다. 주문한 차가 나오고, 잠깐 아기의 사진을 구경했다. 고은이보다는 남편을 많이 닮아 보였다. 원체 작게 태어나서인지, 내 조카만큼 포동포동해 보이지는 않았다. 사진을 다 보고 나자 고은이의 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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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소판 문제가 있긴 하지만, 다행히 아기한테 별문제는 없어서 평소에 집에서 가까운 동네 산부인과에서 검진을 받았어. 35주인가? 34주 정도였던가? 분비물이 평소보다 조금 늘어난 것 같아서 혹시 양수가 새는 건 아닐까 싶더라고. 산부인과에 가서 그 이야기를 하고 정밀하게 진단을 받았는데, 글쎄 못 느끼기는 하지만 진통이 있다는 거야. 잘못하면 크게 문제가 될 수도 있으니까 대학 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 사실 아픈 것도 아니고 특별히 불편한 것도 아니어서 고민하긴 했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평소에 혈소판 때문에 검진받고 있던 큰 병원에 갔어. 거기 XX 성모 병원 있잖아. 거기 입원하고 산부인과 검진을 받았어. 다행히 산부인과 쪽으로는 크게 문제가 있지는 않다고 하더라고. 오히려 혈소판이 우려가 되는 상태였지. 내 몸에서 자연적으로 혈소판을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무슨 링거 주사를 맞는데, 그게 30분마다 한 번씩 교체해야 돼. 그걸 달고 있으면서 몸을 좀 심하게 움직이면 막 에러 같은 게 떠서 간호사가 뛰어 오고, 몸에 물이 계속 들어오니까 화장실은 자꾸 가고 싶고, 밤에 자는데도 계속 와서 링거 교체하니까 잠을 잘 수가 없어. 너무 괴롭더라고. 그래도 3일 정도만 버티면 나갈 수 있으니까 조금만 참자고 생각했어. 그런데 갑자기 양수가 터진 거야. 그러더니 혈소판 수치가 뚝 떨어졌어. 수치가 너무 낮아지니까 제왕절개는 할 수가 없다고 하더라. 자연 분만할 때 피 500mL를 쏟는다면, 제왕절개를 하면 1L를 쏟아서 위험하다고 하는거야. 주말에 주치의는 없으니까 한 번씩 레지던트가 와서 거기에 손을 쑥 넣어서 얼마나 자궁문이 열렸는지 확인하고, 고위험군 산모 군으로 바뀌고, 산소 호흡기를 썼어. 혈소판 그거 약을 맞았다고 해서 갑자기 혈소판이 막 생기는 게 아니라서 혈소판 수혈을 받을 수 있게 준비도 해두고. 무통 주사도 뭐가 안 맞아서 쓸 수 없다고 하는데 다행히 무슨 다른 진통제는 쓸 수 있다고 해서 그거 맞으니까 조금 낫더라고. 계속 호흡 신경 쓰면서 버티고 있는데 간호사가 사인해야 하는 서류를 가지고 오는거야. 그런데 그 내용이 너무 심각했어. 나는 고위험군 산모니까 뭔가가 잘못되면 자궁을 적출해야 할 수도 있다던가, 산모와 아기 모두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던가 그런 내용이 너무 적나라 한 거야. 속상해서 많이 울었지. 원래 예정했던 시간보다 이르게 자궁문이 크게 열려서 출산에 바로 들어갔는데, 다행히 아기는 한 번 힘주고 나니까 금방 나왔어. 아기가 작게 태어나긴 했지만, 인큐베이터 들어갈 만큼은 아니라고 하고, 나도 이제 더 이상 링거 안 꽂고 있어도 되고. 애는 이제 내 몸 안에 없으니까 출산한 그 날은 너무 기분이 상쾌하고 좋더라. 근데 정말 그 날 만이었어.
왜 다른 사람들은 육아가 출산보다 힘들다는 걸 안 알려주는 걸까? 아기야 물론 예쁘고 귀엽지. 하지만 우리 애는 잠도 별로 안 자고 밥도 별로 안 먹고, 게다가 안아서 재우지 않으면 잠도 못 자는 거야. 젖을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재우느라 안고 있고, 간신히 자는 것 같아서 바닥에 내려놓으면 바로 눈 뜨고. 내가 밥 먹으려고 잠깐 상 차리고 한두 입 먹는 사이에 아기가 다시 깨. 그러면 다시 반복이 시작되는 거지. 많이 먹지를 못하니까 남들 한번에 먹을 걸 두 번, 세 번에 나눠 먹어. 50일 정도 지나고 나니까 그래도 연속으로 3시간 정도 자기 시작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젖 먹이고, 유축기 쓰고, 아기 안아서 재우고 하다 보니 손목도 나갔어. 체질이 바뀌었는지 땀이 많이 나서 샤워를 자주 했는데, 에어컨을 틀어 놓고 있다 보니 산후풍이 와서 한의원에서 약 지어 먹고 있었거든. 손목이 아프다고 하면서 한의원에 갔더니 이건 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야. 그런데 아기 키우면서 어떻게 쉬어. 그래도 지난주에는 도저히 더는 모유 수유를 못 하겠다고 선언 했어. 한의원에서도 모유 수유한다고 애가 갑자기 천재 되는 것도 아니고, 엄마가 편하고 행복해야 아기한테도 좋은 거라면서 모유 수유 안 해도 괜찮다고 말해 주더라. 그래도 어쩐지 미안한 거야, 아기한테. 원래 분유는 그냥 평범한 거 먹이고 있었는데, 이제 모유도 못 먹는데 산양 분유 먹일까 싶기도 해.
남편한테는 크게 불만은 없어. 회사가 멀고 몇 번 갈아 타기도 해서 출퇴근하는데 1시간 40분씩 걸리거든. 아침에 아무리 늦어도 5시 반에는 일어나야 하고, 저녁에는 일찍 나와도 7시에나 출발할 수 있어서 집에 오면
9시는 되더라. 남편이 잠깐 아기 봐주는 동안 남편 먹을 거 차려주고 나는 한 2시간 정도는 푹 잘 수 있어. 그 사이에 남편이 아기 목욕을 시켜주지. 한 번은 남편이 내가 너무 고생하니까 자기가 아기 데리고 자겠다고 둘이 거실에서 잤어. 그런데 한 새벽에 애가 울기 시작하는데, 바로 옆에 있는 남편이 일어나지를 못해. 안방에 있던 내가 다시 아기 데리고 옆에 눕혀서 재웠어. 회사에서 사람을 어떻게든 쥐어짜서 일 시키는 것 같아. 회사가 너무 멀기도 하고 해서 이사 가고 싶은 마음은 있지. 그런데 애가 어리니까 아무래도 친정 가까운 걸 포기하기 어렵잖아. 남편이 조금 돈 덜 받더라도 사람답게 살 수 있을 만한 회사로 옮겼으면 싶기도 하고. 오히려 불만은 시댁에 있지. 처음에 아기 성별이 딸인 걸 알았을 때, 남편 집에는 딸이 없으니까 엄청 좋아하실 줄 알았거든. 그랬는데 시아버지 반응이 좀 떨떠름한 거야. 그러더니 둘째는 아들 낳으면 되니까 괜찮다고 하시더라. 그게 엄청 속상했거든. 그리고 목포면 멀잖아? 나 임신하고 얼마 안 돼서 무슨 일 때문에 한 번 우리 사는 아파트 바로 옆 동에 왔다 가셨어. 내가 그때 잠깐 일이 있어서 나가 있기는 했는데, 나 불편할까 봐 얼굴 안 보고 그냥 가셨다고 나중에야 연락을 받은 거야. 나는 사실 그 연락 받고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우리 엄마가 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다가 밥도 한 끼 안 먹이고 그냥 가냐며 속상해하시는 거야. 그 얘기 들으니까 나도 좀 서운하더라고. 시댁에서는 내가 그 고생을 하고 애를 낳은 걸 몰라. 우리 엄마조차도 내가 죽을 고비 넘기며 애를 낳았는데도 애가 건강하게 태어났으니 다 잘된 거 아니냐고 하는 거야. 그러면서 벌써 둘째 얘기하고. 나는 도저히 내가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까지 또 애를 낳고 싶지는 않아. 이번에도 내가 이렇게 죽을 수도 있고, 이렇게 고생할 줄 알았어도 아이를 낳을 생각을 했을까 싶어.
아니, 그래도. 아이는 한 명은 낳는 게 좋은 것 같아. 가끔은 내가 나를 위해서 아이를 낳았는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아이를 낳았는지 모르겠다 싶기는 해. 그래도 우리 딸이 없다고 생각하면 내가 나중에 더 나이 들었을 때 얼마나 쓸쓸할까 하는 생각은 들어. 요즘에는 마흔 넘어서 첫애 낳는 사람도 많다고 하니까, 너도 건강 잘 챙겨서 하나 정도는 낳는 게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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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6시 정도에 헤어졌다. 고은이는 버스정류장 근처까지 나를 배웅해 주었다. 배웅하는 동안 고은이는 아기가 자기랑 둘만 있으면 잘 웃지 않는다고 했다. 하긴, 매일 불러주는 노래에 날마다 보는 얼굴, 매일 똑같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주는데 어떻게 지겹지 않겠느냐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 말에 수긍하며 엄마가 웃지 않아서, 웃을 일이 없어서 그렇다고 고은이가 대답했다. 친정엄마나 다른 사람을 만나면 헤실헤실 잘도 웃는 아기와, 더 이상 자신의 몸이나 마음을 우선시하는 것을 금지하는 세상의 말들에 서운함을 느끼는 그 애는 무척 고독해 보였다. 친정엄마가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외출 나왔다며 찍어 보낸 사진에 반사적으로 감탄사를 내뱉고, 또 내게 흐뭇한 듯 보여 주는 몸짓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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