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나는 중독자이다

<중독>에 관한 이야기 ㅣ 이승철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1-20 오후 5.32.06.png 종무원
독립출판도 3권 출판 했고, 지인들과 그림 전시회도 했습니다. 요즘엔 꾸준히 1주일에 한장씩 드로잉을 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는 아니고 그냥 모두 취미로...


작가 프로필 ㅣ 이승철

넓고 얕은, 호기심 많은 유부남




나는 중독자이다.


중독이란 독을 먹어서 생체 기능 장애가 생길 때를 말하지만 다른 의미로는 어떤 것에 빠져서 다른 것들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일 때도 중독이라고 한다. 그래서 도박이나 술 그리고 마약 같은 것에 빠졌을 때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무엇인가에 집중적으로 빠져서 자기 것으로 일궈낸다면 좋은 중독이 아닐까? 그런 의미로 내가 중독된 게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커피”, “게임”, “여행”, “강의”, “드로잉”, “글쓰기”, “독서” 종이에 써보니 이 정도 단어가 쓰였다.


그런데 독서는 양심상 빼야겠다. 그냥 1년에 50권을 읽는 프로젝트 때문에 의무감으로 하는 거니 빼고, 여행도 중독이 아니라 동경하는 거니까 빼야겠고, 글쓰기도 한 달에 고작 두 편 쓰면서 중독이란 말을 가져다 붙이기 웃기니 이것도 빼고, 드로잉도 일주일에 한 장 정도 그리니까 빼야겠다. 그러고 나니 “커피”, “게임”, “강의” 이렇게 세 단어가 남았다.


“커피”


전에 커피 바리스타 시험을 본 적이 있다. 커피를 엄청나게 좋아해서 시험을 본 것은 아니다. 요리학원에 갔다가 우연히 커피 수업이 있어서 수강 했는데, 그 수업을 들으면 바리스타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고 해서 수료 후 시험을 봤을 뿐이다. 그렇다고 커피를 안 좋아하는 건 아니다. 매일 5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며, 시도 때도 없이 마신다. 일하다가 마시고, 밥 먹고 마시고 늘 커피를 달고 산다. 특히나 입이 심심할 때면 어김없이 커피를 찾는다. 원두커피부터 커피믹스까지 가리지 않는다. 그렇다! 이 정도 되면 중독이다.


하지만 내가 커피를 중독처럼 마시는 이유는 커피가 제일 가깝게 있기 때문이다. 사무실에는 늘 커피가 내려져 있고, 집에서 커피믹스는 뜨거운 물만 부으면 된다. 거리에는 커피 전문점이 넘쳐흐르고, 편의점에는 수많은 종류의 커피를 판매하고 있다. 이렇게 커피에 둘러싸여 있는데 커피를 안 마시는 게 더 어려울 정도이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음료는 따로 있다. 바로 타로 밀크티이다. 만약에 커피전문점과 타로 밀크티 전문점 두 개가 비슷한 비율로 있다면 아마 나는 타로 밀크티만 마셨을 것이다.

나는 커피에 중독된 것이 아니라 커피에 둘러싸여 있는 것뿐이다.


“게임”


비디오게임, PC게임, 핸드폰게임 모두 다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 어린 시절 “재믹스(Zemmix)”로 게임에 입문한 후 다양한 게임을 섭렵하였고, 지금도 자기 전에는 게임 영상을 한두 편씩 꼭 보고 자는 정도이다. 중학교 이후 학업으로 강제로 중단하기는 했지만, 군 제대하고 한창 온라인 게임에 빠져 수업도 빼먹을 정도였다. 하지만 일 년 만에 온라인 게임에서 탈출하여 무사히 졸업도 하고 취업도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주말에만 게임을 하고 있다. 물론 퇴근 후에도 잠깐씩 하지만 예전처럼 밤새워 하지는 않는다. 게임을 하는 이유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 할 때의 그 성취감 때문이다. 예전에 온라인게임을 할 때는 다른 사람과의 교류도 있어서 좋아했지만 지금은 그냥 혼자 소소하게 하는 것이 좋다. 게임은 예전에는 중독 수준으로 다른 일을 못할 정도였지만 지금은 그냥 소소한 취미로 하고 있다. 물론 함께 사는 각시는 소소한 취미 수준에서 머무는 것으로 보지는 않지만 말이다.


“강의”


짧게는 하루, 길게는 3개월 과정으로 이루어진 강의를 많이 듣는다. 대학원을 다니는 것도 아닌데 매달 한두 개 이상의 강의를 듣는다. 예전부터 그렇게 수업을 열심히 들었던 것은 아니다. 약 10년 전 사진 수업 이후 자신감이 높아지는 나를 발견하고부터는 듣고 싶은 강좌나 하고 싶은 취미가 생기면 꼭 관련된 강의를 수강했다. 사진, 글쓰기, 그림 그리기, 커피, 스쿠버다이빙, 탱고, 독립출판, 영상 등 그동안 다양한 수업을 들었다. 나에게 도움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일단 관심이 있는 분야는 눈에 띄는 대로 들었다. 강의에서 만나는 새로운 세상, 새로운 취미들 그리고 취미를 하면서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너무 신나고 좋았다. 그래서 정말로 닥치는 대로 강의를 들었다. 그렇게 다양한 분야의 수업을 듣다 보니 어느 순간 꼭 들을 필요가 없어도 시간이 맞으면 수강 신청을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수업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수업을 듣는 행위 자체가 나에게 중요해진 것이다. 새로운 것을 찾는다면 다른 강의를 들어야 하지만 점점 비슷한 내용의 강의를 듣고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점점 강의를 줄여가고 있어서 분기별로 하나씩만 듣기로 자체적으로 규칙을 정했다. 강의에 대한 중독은 사실 아직 벗어나진 못했다. 하지만, 내게 진짜로 필요한 강의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 수준까지는 벗어난 것 같다.


우리가 중독된 것은 많다. 그것이 생활에 관련된 것일 수도 있고, 물건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중독은 하나의 일에는 전문가가 되게끔 해주겠지만 다른 일을 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과유불급이라는 단어가 있는 만큼 뭐든지 적절한 시기와 적당량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더 위험한 건 게다가 자신이 중독됐는지 인지를 못 하는 경우이다. 중독을 인지하는 순간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생기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빠져나오지 못해 결국은 집착했던 것마저 잃게 될 수도 있다. 지금 취미로 하고 있거나 자주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불필요하게 하는 것은 없는지, 그것 때문에 다른 일에 방해가 되는지 돌아보고 적정량을 가늠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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