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ㅣ 곽정빈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또 좋아하는 책이 헤르만헤쎄의 데미안입니다. 그래서인지 평소 인간 본연의 양면성을 사랑하고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말을 곧 잘하곤 합니다.
작가프로필 ㅣ 곽정빈
저는 3년간 하던 일을 그만두고 지난 1년간 세계여행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두 눈을 황홀하게 채우는 수많은 풍경들보다도 여태껏 가져보지 못했던 무지막지한 혼자만의 시간을 대면해야 했던 것이 가장 큰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시간들을 글을 쓰면서 채워 왔습니다. 글을 쓸 때 비로소나 나 스스로가 나 다워지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희미해져만 갔던 나의 자아가 글을 쓰면서 뚜렷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시작된 제 인생의 2막에서 지속적이고 전문적으로 글을 써나가고자 합니다.
자정에 출발하는 열차를 혹여나 놓칠새라 철이형과 나는 밤 10시에 모스크바 역에 도착했고
간단하게 요기를 하며 역에서 시간을 보낸 뒤 설레는 마음으로 횡단열차로 향했다.
우리가 예매한 표는 당연히 러시아어로 적혀 있었고, 표에 적힌 어떤 숫자도 우리가 올라야 할 열차칸을 찾는 데에는 무용했다.
각 열차칸에는 칸을 담당하고 관리를 하는 차장이 있는데, 탑승시간 전 각 열차칸의 담당이 앞으로 나와서 승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우리는 각 차장들에게 표를 보여줘가며 한참을 헤매고 또 수많은 따가운 눈총을 받고 나서야 겨우 기차 끝 쪽에 있는 우리의 열차칸에 당도할 수 있었다.
횡단열차 내 복도. 복도는 상당히 좁았다.
사람들이 서로 복도에서 마주치게 된다면 몸을 옆으로 돌려 비켜 지나가야했고
혹시라도 덩치가 큰 사람이 온다면 객실 입구로 비켜나 상대가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철이형과 내가 선택한 객실은 4인 1실인 2등석 객칸이었다.
횡단열차에는 총 세 개 등급의 객칸이 있는데, 1등석은 2인 1실이고 전용 화장실이 존재하며 객실문의 잠금도 가능하다고 한다.
2등석은 4인 1실이며, 3등석은 객실의 구분이 따로 없고 구역만 나뉘어져 있는 6인 1실의 형태라고 했다.
1등석은 금액 부담이 조금 컸고 3등석은 말도 통하지 않는 러시아 사람들과 개방된 공간을 공유할 생각을 하니 피곤함이 느껴져서 2등석을 선택했다.
2등석은 1층에 침대 2개가 마주보고 있고 그 침대들 위로 역시 같은 형태의 2층 침대가 있는 구조이다.
1층의 침대를 들어 올리자 딱 침대크기 만큼의 수납공간이 나왔다.
처음에는 1층 침대 두 개를 사용할 생각을 해봤는데, 만일 다른 승객 두 명이 동승하게 된다면 괜시리 미안함을 느끼게 될 것 같았고
우리의 1층 침대로 내려와 앉아 쉬기를 요구한다면 서로가 불편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한쪽 면의 1층 침대 하나와 2층 침대 하나를 예약했다.
1층 침대와 2층 침대의 가격이 서로 다른데, 두 침대를 합쳐서 한화 40만원 돈 남짓이다.
그렇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우리나라에서 육로로 유럽에 가는 가장 저렴한 교통수단인 것이다.
다만 출발시각과 운행방향에 따라 7박 8일 혹은 8박 9일이 되는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여행 동안의 끼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지에 대한 대비를 해야만 한다.
물론 4인실이라 할지라도 내심 처음부터는 동승자가 없기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막상 도착했을 때는 우리보다 일찍이 맞은 편에 자리를 잡고 있는 러시아 커플이 있었다.
왼쪽은 마샤, 오른쪽은 아르뚜르. 우리는 약 4일간 이 커플과 동행을 하게 되었다.
아르뚜르와 마샤는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톡의 중간 즈음에 위치한 어떤 도시(지명은 기억나지 않는다. 무슨무슨 스키 겄지...)로
휴가를 가는 중이라고 했다.
영어가 거의 되지 않는 마샤와 아르뚜르는 타지에서 온 외지인을 반기며 주섬주섬 테이블 위로 챙겨온 먹을거리들을 꺼내올렸다.
사진은 소금에 절인 생선이다. 정어리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이건 그냥 아주 소금 덩어리였다.
손톱만큼만 베어 먹었을 뿐인데도 너무 짜서 도저히 더 먹을 수가 없을 정도였지만, 호의로 받은 것을 도로 내려 놓을 수도 없어서 힘겹게 힘겹게 목구멍으로 집어 삼켰다.
마샤와 아르뚜르는 개의치 않고 잘 먹었다.
아르뚜르와 마샤는 어느새 테이블에 한가득 먹거리들을 올려 두었다.
규정상 열차 내에서 음주와 흡연은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뭐.. 워쩌라고..
그 날부로 우리의 설국열차, 아니 술국열차(!!)의 운행이 시작되었다.
아르뚜르는 20대 중반이었고 마샤는 30대 중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처음 우리가 객실로 왔을 때는 대여섯살 정도로 되어 보이는 예쁜 꼬마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마샤의 딸이라고 했다.
그렇게 한 동안 그 꼬마가 보이지 않아서 딸은 당연히 다른 가족들과 함께 옆칸으로 가있는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후에 마샤의 말로는 아빠와 함께 모스크바에 남아있다고 했다.
불완전한 영어로 한 토막씩 띄엄띄엄 전해 듣는 단어들 사이에서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들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이혼한 부부 사이의 딸, 그리고 그 아빠가 부인의 새 연인과의 여행 기간동안 전 가장으로써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 것일까?
철이형과 내가 분절된 정보로 두 사람의 사연을 맞춰가는 동안 아르뚜르와 마샤 역시 러시아어로 열심히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데
그들 역시 동시에 우리의 조각난 이야기들을 이어 맞추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컵라면과 편의점에서 산 싸구려 보드카가 전부였던 철이형과 내게 아르뚜르와 마샤는 그들의 식량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
실상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하는 열차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열차였다.
블라디보스톡이 모스크바보다 약 6시간 더 빠르다는 것을 생각하면,
태양의 운행을 조금씩 앞으로 당겨오는 여행일테고, 우리의 바이오리듬은 점점 짧아지는 밝음과 어둠에 결코 동기화될 리가 없었다.
말인즉슨, 우리가 일어나는 때가 곧 아침이었으며, 그러면 우리는 끼니와 함께 술을 마셨고, 이내 다시 누웠으며, 바로 그 때가 밤이었다.
저기야.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몰골들을 보시라.
열차칸 사이의 공간이다.
창문밖으로 어리는 냉기를 보고 있자니 뼛속까지 시렸다.
실상 이 공간은 흡연실이라 여기면 된다.
밤사이에 가끔씩 군인들과 함께 차장이 순찰을 돌았는데 우리는 딱 현장에서 발각 되었지만,
현지인 마샤와 함께 있었다는 특혜로 슈퍼패스권을 득할 수 있었다.
또 간이역을 놓쳐서 미쳐 마실 생수를 사지 못했을 때,
김이 펄펄 나는 온수를 받아서 이 공간에 잠시만 비치해 두면 살얼음이 낀 냉수를 얻을 수 있었다.
컵라면을 일용할 식량으로 준비한 우리는 가끔씩 간이역에 내려서 다른 요깃거리를 사왔다.
위 사진은 전기구이 통닭과 피자빵과 피클.
가뜩이나 수도 모스크바와 멀어진 러시아 대륙 한 복판의 시골동네 간이역에 위치한 구멍가게....
저 정도의 음식을 사려면 이미 저보다 더 많은 양의 욕설을 받아내야 했다.
먹기 전부터 이미 배부르다.
어느날 아침.
열차 내에서는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주로 아르뚜르의 스마트폰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서 소통했다.
마샤는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했다. 현재 10마리가 넘는 고양이들과 함께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대부분은 버려진 고양이들이라고 했다.
그렇게 자신의 폰에 수두룩하게 쌓여있는 고양이들 사진을 흐믓한 표정으로 오래도록 보여주곤 했다.
마샤는 정말이지 옆집 아줌마처럼 호탕했고 웃음과 장난기가 많아서 우리가 빠르게 친해지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반면 아르뚜르는 마샤의 그런 외향적인 면을 중재하려는 듯이 다소 진중했고 짧은 영어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소통하려 끊임없이 노력했는데,
그래서인지 둘은 오랜 시간을 같이 지내온 부부처럼 보였고 보기 참 좋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차창 밖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설국의 정경들.
솔직히 이전 포스팅에서 고백한대로 나는 혼자 내 지난 여행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했고
물론 이들과 보내는 시간 동안은 전혀 그런 걱정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빼곡하게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마음 한 켠이 계속해서 불편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막상 이들과 왁자지껄 웃으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면서도, 책을 핑계로, 낮잠을 핑계로 혼자 생각할 시간을 두려 애썼다.
대만에서 시작해서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중동을 거쳐 도착한 유럽, 아프리카를 거쳐 남미 그리고 이 곳 러시아까지의 350여일.
이제 곧 귀국을 앞두고서 그간의 기억들과 인연들이 세세하게 머릿속을 지나갔다.
지난 여행이 과연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리고 앞으로 다시 시작할 내 삶에서 또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지..
그 것을 정의내리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던 것 같다.
하지만 기억이 생생할수록 그 것은 단지 순간순간의 장면만 진해질 뿐 어떤 생각의 정리도 되지는 않았다.
스스로 '내 여행은 이러이러 했다' 라고 말하지 못한다면 마치 지난 시간이 모두 헛된 것일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무엇인가 아주 그럴듯 하고 대단한 의미를 주지 못한다면 결국 이 여행은 내 젊음과 시간과 돈을 탕진하여 누린 일생일대의 사치로 전락해버릴 것만 같았다.
마주 보이는 침대에서 철이형과 마샤와 아르뚜르가 과잉동작을 섞어가며 수다를 떠는 것이 보인다.
불과 몇 분 전에는 마치 내일이 없는 듯이 이들과 시간과 공간을 공유했는데
지금은 홀로만 무채색으로 칠해진 듯 침대 한 켠에 기대어 침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2평 남짓한 이 공간이 참 좁다 느껴지면서도 건너편 침대까지의 거리는 더할 나위없이 아득해 보였다.
같이 있기에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지만 같이 있음에도 더욱 외로워질 수도 있다는 것.
과연 철이형이 아니라 나 혼자 열차를 탔으면 이들과 이런 관계를 가질 수 있었을까.
혼자만의 고독한 숙고의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그 것에 따라 내 여행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일까.
지난 여행들을 돌이켜 보면
항상 나는 내가 의도한 대로 하고자 했지만, 피치 못할 사건과 인연들과 상황들로 인해 수없는 변화를 맞이했다.
가끔은 그 것이 스트레스가 되었고, 또 가끔은 그 것이 호재로 작용하기도 했다.
자의든지 타의든지
혼자이든지 같이이든지
유럽이든지 아프리카든지
5월이든지 10월이든지
주변의 상황은 끊임없이 변했지만, 그렇게 꿈틀대며 약동하는 이 세상과 소통하는 '나'는 언제 어느 때이고 있었다는 사실.
추억은 바래고 기억은 흐려질 것이다.
하지만 손 때가 묻고 변색이 된 옛 사진이 주는 운치가 그윽하듯이
이 여행은 사진으로, 내 글들로, 여행간 이어진 인연들로 남겨져 전해질 것이고
그 것들과 마주하는 미래의 '나'가 그 곳에 있을 것임은 분명했다.
나는 가끔 사람들을 만나 지난 내 여행 이야기들을 들려줄 것이다.
그들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의 '마지막 말'을 기다릴지 모르겠다.
그러면 나는 말할 것이다.
그 시간들을 뚫고 지나온 내가 여기 이렇게 있다고.
당신들과 앞으로 관계할 '나'를 다만 지켜봐 달라고.
우리 같이 진득한 '삶'을 살아가자고.
이별의 시간.
철이형은 그 들을 위해 팔찌를 만들어 주었다.
철이형은 인도 여행동안 현지인에게 팔찌를 만드는 법을 배웠고 항상 지나쳐가는 인연들을 맞이할 때 마다 이렇게 팔찌 선물을 했다.
아르뚜르와 나는 서로의 비니를 교환했고, 마샤는 종이컵 하나도 없는 우리에게 텀블러 2개를 선물로 주었다.
아르뚜르와 마샤가 내린 역에서...
아르뚜르와 마샤를 배웅해주면서 찍은 사진들.
처음에 이 영상은 아르뚜르가 편집한 것이 그 원본이었다.
영상의 도입부에서 열차에 오르는 두 연인의 설레는 마음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 비친 극동아시아에서 온 추레한 두 여행객의 이미지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위 영상은 아르뚜르가 최초 제작한 편집본에서 내가 그 이후의 장면들을 좀 더 추가해서 완성한 영상이다. (Through i-movie in i-phone)
아르뚜르.. 마샤.. 정말정말 고마웠고
내 러시아에 대한 추억을 가득 채운 그대들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거야.
딸과 함께 셋이서 언제까지고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길!!
곽정빈님의 다른 글이 읽고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