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마음들, 그것들의 가능성

<소통>에 관한 이야기 ㅣ 김연정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5-11 오후 1.52.32.png 디자이너


즐거운 감정은 빨래가 마르듯 금방 날아가 버리고, 우울한 감성, 생각들은 언제나 침전하여 남아있음을 느낍니다. 우울함, 불안함, 슬픔, 좌절감에 예민하고 행복에 예민하지 못한 제 자신이 조금 부정적인 사람이라고 느껴지지만, 아직까지는 수면 위 햇살보다는 우울한 바다 쪽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어두운 것들이 가라앉아 있는 심해心海 속을 당분간 탐구하면서 글을 써 볼 예정입니다. 언젠가는, 나를 힘없게 만드는 것들에 대한 예민함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에게로 자리를 옮겨가길 기대합니다.




카페에 두 사람이 앉아있다. 한 사람이 계속해서 말을 하고, 맞은편의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다. 경청하고 있는 사람의 눈은 빛나는 듯 하고 입가의 미소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한 느낌을 준다. 가끔 감탄이 흘러나오기도 한다.화자는 신이 나서 말을 쉬어야 할 타이밍에도 멈추질 않는다. 한 시간 가량의 대화가 끝난 후, 말을 계속해서 했던 사람은 대화를 통해 자신에 대해 더 알게 됐을 상대방에게 이전보다 끈끈해진 감정을 느낀다. 자신의 약점을 노출한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불쾌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좋은 쪽이다. 반면에 다른 한 사람은 대화가 끝난 후 상대방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 그리고 피로감이 먹구름처럼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랬다. 나는 피곤했다.

상대방에 대한 애정, 아니 그보다 더 큰 연민이 상대방을 향한 지배적인 감정임을 다시 한 번 느끼면서 약속장소에서 나와야 했다. 그분은 헤어질 때, 약간 쑥스러운 듯 다음의 만남을 기약했다. 종종 또 이렇게 연락할 테니 부담은 갖지 말라는 말과 함께. 그리고 자신은 이미 사람관계에서 무덤덤할 만큼 충분히 내쳐져왔기 때문에, 혹여 자신의 연락을 무시하더라도 괜찮다는 말을 보탰다. 짠한 마음과 피로지수가 10% 상승하는 것이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아니에요, 다음에 또 연락하세요!” 라는 말로 허겁지겁 마무리를 하고 말았다. 다음을 또 기약해 버렸다. 저렇게 말하는 사람 앞에서 어떻게 속내를 드러낸단 말인가.

‘글쎄요, 그럼 그때 상황 봐서 연락을 차츰 줄여볼까요. 당신은 너무 자기얘기만 하고, 어떤 말도 들으려고 하질 않잖아요.'



그분은 언제나 질문이 없는 사람이었고, 조언을 구하지만 들을 생각은 없는, 사람에 대한 갈증으로 외로운, 자신감이 결여된, 그리고 답답할 정도로 손해보고 사는 착한 사람이었다. 나는 서로가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는 것을 기대했던 것 같다(그러나 진심으로 그 분의 앞날이 풀리고, 용기를 가지시길 기원한다.).

두려운 것은, 만남의 횟수와는 별개로 알고지낸 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소중한 사람’의 범주에 속해지기가 쉽다는 것이다. 나는 아닐지언정, 상대방의 카테고리에 내가 속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내가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조심스럽고 두려운 이유는,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마음을 쏟은 만큼 자신도 받기를 기대하기 때문이고, 서로를 향한 마음의 크기가 같기보다는 다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표현방식이 있고, 그것은 오해를 불러일으켜 상대를 끌어들이기도, 또 밀쳐내기도 한다.

나 역시 상대방의 마음이 나와 같지 않은 상황을 겪어왔고, 그럴 때마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거나 받아왔다. 서로가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관계의 초반에서는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그러다 만남을 지속하다 보면 마침내 그 사실을 깨닫게 되는 ‘어떤 날’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때는 상처를 피하기엔 이미 늦어버린 경우가 많다.



내가 인격적으로나 직업적으로나 스승이라고 여기지 않는 직장 상사가 나의 스승을 자처했던 적이 있었다. 미래에 그 사람이 나의 귀인이 될 가능성을 무시한 채, 현재 감정에 솔직하게, ‘저는 아직 당신이 제 스승이 될 수 있는지 판단하지 못했는데요.’라고 미리 못 박아 뒀어야 했을까. 아마 입사 후 지옥 같은 회사생활을 했을지도 모른다. 귀인이 될 수 있었던 사람도 그 말로인해 떨어져 나갔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루며 사무적인 태도를 취했으나 더 이상 그러지 못하는 시점이 오고 말았고, 결국에는 ‘대표님’ 대신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2년 후 더 이상 이 회사는 아닌 것 같다는 판단 하에 퇴사하겠다고 선포한 순간, 말 그대로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배신자가 되어버렸다. 평생 함께 할 줄 알았던 직원이 퇴사를 하겠다고 하고, 회사 사정도 어려운데 칼같이 퇴직금도 요구하니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을까. 우리는 일반적인 회사 동료 사이가 아닌 가족 같은(나에겐 가X같은. 수많은 일화들은 생략한다), 그리고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는데.



나는 그녀를 ‘선생님’이라고 불렀으나, 회사 상사 이상의 관계로 생각하지 않았다. 회사가 나를 가족처럼 생각했을지언정, 나는 회사를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너희랑 평생~ 일하고 싶다 꺄르르’ 해버리는 대표를 면전에 두고, ‘전 아닌데요.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정도의 가식도 부리지 말아야 한다면, 돈을 버는 것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한 반응이라고 해봤자 끽해야 ‘대답없는 미소’정도였다.

회사는 내가 속해있을 때는 최선을 다하되, 가고자 하는 길과 맞지 않을 경우에는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둥지였다. 결국 회사와(대표와) 나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달랐고, 이를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으며, 결국에는 서로 상처를 주는 말을 내뱉고 진상을 떨면서 ‘헤어져야’ 했다.



‘진심은 통한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진심이 통하려면 뭔가가 더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에게 어여쁜 마음이 존재하고, 그것이 그 사람에게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특별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사랑하게 될 사람들로부터 동등한 마음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충분히 갖고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자격이고 가능성이다.

실제로 그가 특별해지려면 자신이 품고 있는 그 따뜻한 마음을, 상황에 맞게, 또 상대를 진정으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그 마음을 들춰내서 슬그머니 멋들어지게 껴입을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내가 내 마음인데 그것하나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나, 사람은 누구나 미숙하기 마련인데 어떻게 너는 나의 맘을 그렇게도 몰라주나, 이기적인거 아니냐. 처음부터 그런 마음이었으면 솔직하게 말하지, 아닌척 하다가 뒷통수를 때리는 거냐.라고 누군가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럼 제발 당신도 나의 마음을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나를 향한 당신의 마음에 집중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에 지나치게 빠져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알아가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당신이 나에게 했던 애정에서 우러나온 행동들과 표현들이 ‘나’라는 사람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날 선 표현들이 아니었는지.



다시 처음에 언급했던 만남에 대해 회상해본다. 여전히 아직도 그 만남이 어떤 관계로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만남이 스트레스로 느껴지면서도, 계절이 바뀔 때 즘 다가오는 그분의 속도가 괜찮다고 느낀다. 일상에서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가끔 어떤 자극제가 되고 있다. 서로 다른 사고 관에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그로 인해 나의 어떤 생각이 무성하게 뿌리를 뻗어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나에 대한 질문이 거의 없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아직까지는 만나면 반갑다. 그리고 또 피곤하다. 언젠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시점이 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레 앞서 지금 결말을 결정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분에게 있어서 난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이 되었든 존중해야 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서 그분이란 어떤 존재인지, 그것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내게 주어진 깜짝 숙제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서로에게 특별해질 가능성.

그것은 우리가 만나기 한참 전부터 언제나 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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