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에 관한 짧은 이야기 ㅣ 신정훈
저는 글을 막 씁니다. 브레인스토밍하듯 손가락 가는대로 놔두는 식입니다.
작가 프로필 ㅣ 신정훈
현상을 쿨하게 응시하고 그것에 담긴 의미를 즉흥적인 글쓰기 과정으로 풀어내려 한다.
귤은 100g당 0.9g의 식이섬유를 포함하고 있다. 특히 흰껍질 부분에 중점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섬유질은 인체에 흡수되어도 완전 분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섬유질은 신체 밖으로 분출 될 때 다른 노폐물과 함께 나온다. 결국 신진대사와 쾌변에 도움을 준다. 또한 열량이 없어 살이 찌지 않는다.
귤은 많은 과일 중에서도 특별히 친근하다. 20세기 말에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 귤은 가장 사랑받는 과일 중 하나이다. 한 대형마트 과일 판매 순위를 보면 수박, 사과와 더불어 귤은 10년간 정상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합리적인 가격과, 적당한 당도와 산미가 느껴지는 맛, 쉽게 까지는 껍질 등의 이유 덕분이다.
껍질 또한 쓰임이 있다. 남은 귤 껍질은 잘게 썰어 말린 뒤 뜨거운 물에 넣으면 진피차가 된다. 껍질엔 테레빈유라는 성분이 있는데, 콜레스테롤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비민의 위협에 노출된 21세기 시민들에게 좋은 약이 된다. 또한 스트레스 호르몬을 조절해 정신 질환 경감에도 도움을 준다. 버릴 데 없이 완벽한 과일이 아닐 수 없다.
귤은 겨울이 제철이다. 입김 나는 추운 날 전기 장판 위에 누워 귤을 까먹는 것은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모습이다. 상상하는 것만으로 여유로워진다. 귤의 뒷 부분 중앙에 손가락으로 구멍을 뚫고, 구멍을 중심으로 껍질을 벗긴다. 껍질은 손톱 사이로 들어가며 주황빛을 퍼트린다.
학창시절, 귤은 학교 급식의 대표적인 디저트 메뉴였다. 친구들과 누구 입이 큰 지 대결하기 위해 귤 하나를 쪼개지 않은 상태로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거릴 때 마다 퍼지는 과즙이 존재감을 과시했다. 일그러지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가끔은 귤껍질을 교복 주머니에 챙기고 교실로 돌아와, 친구들에게 장난을 걸기도 했다. 껍질을 접어 살짝 누르면 즙이 나오는데, 친구를 놀래키는 용도로 사용했다.
호주에서 귤은 만다린, 혹은 탄져린이라고 불린다. 한국 것과 다르게 귤에도 씨앗이 들어 있다. 크기도 상대적으로 큰 편으로 귤 보단 한라봉에 가까운 느낌이다. 일 년에 한 번 정도 귤을 먹게 된다. 직접 사는 경우는 거의 없고, 누군가가 사서 하나씩 줄 때 받는 정도이다. 그래도 가끔 귤을 받아들면 반갑다. 작은 타임머신같은 존재로 과거를 회상하게 만든다. 혹은 귤이 데리고 다니는 특별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아늑함, 편함, 여유로움, 상큼함 등. 드문드문 만나는 사이이기 때문에 특별함이 있다.
이 글은 주제가 없다. 뭘 써야 할지도 모른 채 의식의 흐름에 따라 머릿속 이미지를 글로 옮겼다. 뭐가 됐든 귤에 대해 써야 한다. 의식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귤은 좋은 과일이야. 귤엔 추억이 많아. 귤은 따뜻한 이미지를 가졌어 등. 맥락없는 내용을 나열하는 것, 겹치는 점은 귤이란 소재뿐. 다양한 시선에서 본 귤. ‘사유’라는 철학적이며 멋들어진 말로 글을 포장하면 개연성이 생긴다. 제목을 귤, 사유로 바꿨다. 약삭빠른 자신을 깨닫는다. 허세덩어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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