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에 관한 짧은 이야기 ㅣ 화이
어느 날 미드를 보다가 문득, 우리나라도 땅고를 매개로 한 드라마가 있으면 많은 이들에게 땅고라는 춤을 전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에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작가 프로필 ㅣ 화이
아르헨티나 땅고 댄서이자 땅고 아카데미 '엘 불린' 대표
도서 '탱고레슨' 저자
내 삶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를 살았다면 올 해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 대해 비로소 제대로 들어다보고, 그 껍질을 깨려고 노력한 시기였기 때문에 그렇다. 그동안도 노력을 하지 않은것은 아니었지만, 본질을 회피하려는 무의식이 있었던 탓에 진짜 내 속을 보는 고통은 나도 모르게 피하고 있었다. 올 한해의 이상한 우주의 기운이 모아진 상황 덕분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나는 나 자신과 마주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보지 않고 잊어버린 척 하려고 했던 내 과거들, 스스로 땅 속에 잘 묻어뒀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내 스스로 머리를 처박고 있었던 것 뿐이라는 깨달음, 이런 상태로는 삶이 다람쥐 챗바퀴 돌듯 계속 반복할 뿐이고, 반복이 될 수록 내가 마주해야 하는 삶의 무게도 점점 무거워 진다는 사실을 비로소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아야만 했다. 그게 너무 고통스러웠고, 모든것을 체념하고 놓아 버리고도 싶었고,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랑과 신뢰를 다 부정하고 싶었다. 내 자신을 사랑하라고 하지만, 나는 내가 너무 싫었다. 너무 싫어서 이 세상에서 없애 버리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교회를 찾았고, 라디오로 가스펠을 들었다. 어릴때 우연히 인연을 맺은 교회와 신앙은 현재 날라리 신자로 매주 예배를 참석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남아 나를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것 같다. 열심히 무릎꿇고 기도를 하지는 않아도, 길을 걸으면서, 화장실에 앉아서, 문득 창밖으로 하늘을 보면서 그냥 중얼거리는 기도를 하곤 한다. 가슴 깊이 실낱같은 믿음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도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있을거라는, 내가 지금까지 힘들게 살아 온 이유가 있을거라는 믿음 말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노래의 가사가 귀에 들어왔다. 박수영이 부르는 "가장 사랑하기 때문에" 라는 곡이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장 사랑하는 학생에게
제일 어려운 문제를 주시는 이유는
그 학생이 정답을 가장 잘 알거라 생각하기 때문이야.
그래, 너의 인생 어려운 문제 많은 건 이 때문이야.
때론 내겐 인생에 감당하기 어려운 시험 닥쳐올 때
제일 어려운 문제를 주시는 이유를 알지 못해
낙담하며 죄절에 때졌을 때에,
그때 나의 인생 어려운 문제 많은 이유 알았다네.
하나님은 자기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셨는데
그것도 가장 어려운 문제 가지고 십자가 향해 나가게 하셨던 거야.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장 사랑하는 학생에게
제일 어려운 문제를 주시는 이유는
그 학생이 정답을 가장 잘 알거라 생각하기 때문이야.
그래, 너의 인생 어려운 문제 많은 건 이 때문이야.
식물이 너무 편안하고 안정된 상태에 있으면 꽃을 피우지 않는다고 한다. 적당히 물도 덜 주고 괴롭게 해야 꽃을 피운다. 열매가 처음 열렸을 때에 약간의 상처를 내야 열매가 더 달고 맛있게 익는다고 한다.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온 에너지와 영양을 그리로 보내기 때문이다. 귤을 손으로 주무르고 못살게 굴면 달아진다고 한다. 사람의 손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물질인 에틸렌을 분비하게 되는데, 그 에틸렌 성분을 통해 귤의 당도가 20%까지 상승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사람도 고난이 닥쳤을 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의지가 그 사람을 더 성장시키고 성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귤을 까기 전에 손으로 주무르며 잠시 생각에 잠겨 본다. 이렇게 주무를 때 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아프다고 소리치며 울까, 아니면 담담히 시련을 받아들이며 당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참아낼까? 하물며 귤조차도 이런 시련과 스트레스를 통해 달아지는데, 사람인 우리도 좀 더 깊은 맛이 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내가 더 깊은 향기와 맛을 내기 위해 익어가는 과정이구나 생각하면, 좀 더 견딜만 해 지지 않을까?
오늘따라 귤이 참 달고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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