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에 관한 짧은 이야기 ㅣ 최미애
명상을 하면서 '관찰'이 취미가 되었어요.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촉감을 느끼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파악하는 관찰 작업을 수행하고, 그렇게 관찰하고 있는 자신을 순간 순간 깨달을 수 있도록 뭔가를 좀 써봐야 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작가 프로필 ㅣ 최미애
IT 9년차 직장인.
불교와 명상에 관심이 많아 경전을 읽으며 '집중'과 '관찰' 수행을 하고있다.
자신의 특기를 이용해 세상에 관한 '관찰일기'를 쓰려한다.
당신이 혼자 산다면, 그리고 집에 베란다 같은 서늘하고 통풍이 잘 되는 공간이 있다면, 올 겨울에는 귤 10kg 짜리 한 상자를 들이기를 권한다. 하루 종일 일이든 사람이든 무언가에 시달린 몸을 끌고 집에 돌아오는 밤. 책이고 모니터고 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음악을 듣는 것조차 나만 동떨어진 느낌이라 쓸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그럴 때는 라디오나 팟캐스트가 제격이다. 팟캐스트를 틀고 이불에 파묻히기 전에 잠깐, 얼른 베란다로 가서 귤 몇 개를 주워 든다. 방 안의 안온한 공기 속에 있다가 베란다에서 집어든 귤의 서늘함은 차가워도 차갑지 않다. 그 서늘함만으로도 어쩐지 상큼한 기분이 든다. 이제 방으로 돌아와 이불 속으로 들어가도 좋다. 팟캐스트의 패널들이 주고 받는 이야기를 들으며 귤 하나를 집어 들고 조물 조물 주물러 준다. 껍질이 얇은 귤이라면 터지지 않게 주의 한다. 그리고 조심히 녹색의 꼭지 부위 부터 귤 껍질을 들어 낸다. 운이 좋으면 귤의 속심이 개운하게 딸려 나올 것이다. 귤 껍질을 벗기는 순간, 귤 껍질을 이루고 있던 미세하고 단단한 알갱이들이 파열음을 내면서 쪼개진다. 그리고 작은 물방울들을 공중에 흩뿌린다. 그 물방울 속에는 우리가 사랑하는 귤의 새콤 달콤한 향기가 응축되어 있어, 당신의 코에도 그 내음이 가 닿는다.
귤 껍질을 까는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아나키스트 적인 성향이라면 분명 무규칙한 형태로, 손이 가는대로 귤 껍질을 조각낼 것이다. 드물지만 위에서 아래로, 그리고 귤 과육이 붙어 있는 방향에 수직 방향으로 사과껍질 벗기듯 하는 사람도 있다. 보편적이고 보수적인 방법으로는 펼쳐 놓았을 때 별과 같은 모양, 과육을 다 먹고 나서 그 모양 그대로 다시 붙일 수 있을 것 같은 모양이 되게 만드는 법도 있다. 나의 경우 이 방법을 선호하는데, 이 모양을 유지하고 있을 때 귤 껍질이 접시 같은 역할을 하여 좀 더 두 손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모양으로 귤의 껍질을 벗겨내고 속 안의 과육을 우선 절반으로 쪼갠다. 귤의 크기에 따라 그 것의 반, 혹은 반의 반으로도 가른다. 이 것이 진정한 한 입 크기이다, 싶은 크기가 되어도 바로 입에 넣어서는 안된다. 과육과 껍질 사이에 놓여 있던 하얀 속껍질도 최대한 떼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귤의 등 껍질 마냥 눌러 붙어 있던 그 속껍질들이, 마침 한 번에 잘 떨어져 나가기라도 하면 기분이 아주 좋아 진다. 오늘의 운세에서 '만사 형통입니다' 같은 글귀를 읽은 것 같다. 벗겨낸 속껍질들도 대체로 겉껍질로 구성된 접시 위에 우선 얹어 둔다. 이제 대부분의 귤 과육은 입 안에 넣기에 적합한 형태가 되었다. 경우에 따라 과육을 둘러싼 하얀 막 형태의 껍질이 오렌지마냥 두꺼울 때도 있는데, 취향에 따라 이 얇은 막도 과감히 양 옆으로 젖혀 그 안의 선명한 오렌지색 알갱이만 취할 수도 있다.
귤은 당신의 입으로 들어가는 일만 남았다. 그 주황과 노랑, 때로는 약간 초록색이 섞여 있기도 한 귤의 색감과, 그 특유의 향기, 그리고 섬세한 사전 작업의 집중 상태에서 이제 막 벗어난 탓에 흐뭇한 감정 상태가 된다. 그에 따라 하루의 피로는 잠시 소강 상태이다. 귀에는 여전히 같이 웃어도 무해한 사연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사상이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다. 이제, 당신은 이 과육을 들어 입에 넣는다. 이 사이의 마찰에 의해 토독하고 터지는 귤의 속알맹이의 경쾌한 질감, 그리고 그 사이로 흘러 나오는 달콤하고 때로는 조금 신 과즙을 입안 가득히 느낀다. 두 번째 귤을 집어드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이다. 손톱 사이에 속껍질이 끼거나 이불 위로 껍데기가 흩어지는 것만 주의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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