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DAY ONE PAGE ㅣ 이정민
전 건망증이 심해서 병적으로 기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오전 10시반에서 11시까지 무엇을 했는지, 점심은 무엇을 먹었는지, 물은 몇 잔을 마셨는지...흘러간 시간 속에서 사라질지 모르는 감정들까지도 세세하게 기록하고 싶어요
작가 프로필 ㅣ 이정민
직장인. 성격이 무척이나 쾌활한데 힘든 내면을 보호하기 위한 과장일지도 모름.
두유를 자주 먹는다. 여자는 골밀도 때문에 우유나 두유를 챙겨먹어야 된다는데, 우유는 싫어하니까 두유를 먹는다. 두유도 썩 마음에 드는 맛은 아니지만 사람이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는 없으니까, 하는 마음으로 두유를 먹는다. 사실 두유가 별로라서 단호박, 고구마, 밤과 함께 먹는다.
올해 봄 한창 운동할 때는 운동하는 저녁에 고구마를 챙겨가 두유와 함께 저녁 대용으로 먹었다. 더워지면서 운동에 소홀해졌다. 그 때부턴 두유에 바나나를 넣어 갈아서 아침 대신 먹었다. 그전까진 바나나 한손 사는걸 머뭇거리곤 했었는데 블로그에서 고수의 비법을 찾았다.
바나나 당도가 피크찍을 때 껍질을 벗겨서 냉동실에 얼리는 것이다. 그럼 바나나가 검은점을 찍다못해 새카매질때까지 놔두고 출근하면서 식탁 위에 남기고 간 바나나를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사실 더 좋은 점은 얼린 바나나를 넣어 갈면서 바나나스무디가 된다는 것이다. 진짜 맛있다. 아침밥을 먹었지만 출근길에 들고 가서 배부름에 허덕거리면서 먹을 정도로 맛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고구마랑 같이 먹을 두유를 물색하는데 문득 GMO 두유가 걱정이 되었다. 열심히 검색을 하다가 그렇다면 식량주권을 위하여 우리나라 콩으로 만든 두유를 먹어야겠다 싶어서 찾아 보았다. 그냥 두유는 개당 600원인데 무농약 우리콩 무가당 두유는 개당 1800원이었다. 주문했다.
비싸다는 생각은 잠깐이고 손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택배를 기다렸다. 퇴근해서 군밤을 구우면서 두유를 뜯어서 입을 댔다. 콩향이 혀 뒤에서 코 안 가득 퍼지는데 밍밍하다. 맛이 없다. 맛있다의 반대가 아니라 맛이 존재한다의 반대이다. 매트릭스를 본 적은 없지만 어깨너머로 들어본 바로 두유를 먹으면서 '웰컴 투 리얼월드' 당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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