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DAY ONE PAGE ㅣ 최미애
명상을 하면서 '관찰'이 취미가 되었어요.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촉감을 느끼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파악하는 관찰 작업을 수행하고, 그렇게 관찰하고 있는 자신을 순간 순간 깨달을 수 있도록 뭔가를 좀 써봐야 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작가 프로필 ㅣ 최미애
IT 9년차 직장인.
불교와 명상에 관심이 많아 경전을 읽으며 '집중'과 '관찰' 수행을 하고있다.
자신의 특기를 이용해 세상에 관한 '관찰일기'를 쓰려한다.
대부분의 만남이랄지, 인연에는 몇 가지 우연이 겹친다. 그리고 보통 우연이 몇 겹 겹치면 그 것을 우연이라고 부를지, 혹은 운명이라고 부를지 망설여 진다. 내가 좀 더 낭만적인 성격이라면 운명이라고 하겠지만, Thinksound의 <on1>을 만나게 된 것은 스트레스에 따른 자기 보상 욕구 충족에 기댄 하나의 도도한 흐름, 즉 '지름신'에 의한 것이라 하겠다.
11월 중순에 사무실에 앉아 있던 나는 도저히 오늘 오후는 글렀구나 싶을만큼 지쳐있음을 깨달았다. 오후 반차를 내고 한의원에 가서 만성 피로와 울화 증세로 22만원에 보름치 한약을 지었다. 거리로 나와서는 회사 주변을 한 바퀴 산책하며 가을이 왔다가 가는 중임을 절절히 느꼈다. 그리고 집에 가서 2시간을 잤다. 깨어났을 때는 헤드폰을 사야겠다는 불가사의한 의욕이 솟아 났다.
집에서 가장 가깝고도 그럴 듯한 청음샵은 홍대, 산울림 소극장 근처에 있었다. 젠하이저 제품들의 소리가 대체로 마음에 들었는데, HD600 이라는 모델이 최종 후보로 올랐다. 다만 그 돌솥같은 무늬의 외양과, 오픈형 헤드폰이라 소리가 밖으로 다 샌다는 점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잘 생겼고 소리도 좋고 가격도 합리적이기란 쉽지 않다. 나는 남자 친구와 함께 청음샵의 다른 모델들을 한참 동안 집적 거리다, 박근혜 하야를 외치며 행진하는 대학생 무리도 잠시 바라 보다가, 휴대폰으로 HD600의 인터넷 최저가를 알아 보았다. 사더라도 여기서 사진 않겠다 싶어, 다시 집으로 향했다.
애초에 청음샵에 간 것 자체가 뭐라도 사고야 말겠다는 지름신의 정언 명령에 의한 것이건만, 남자 친구의 디테일한 방해 공작은 나를 짜증나고 초조하게 만들었다. 나의 헤드폰 구매의 주요 핑계 거리는 도보로 10분 거리의 회사 출근시 칼바람 때문에 귀가 시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자친구는 소리가 밖으로 새는 모델을 사는 것이 그런 '외출용'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나는 '좋은 소리' 라는 두 번째 논거를 들었다. HD600에 더불어 휴대용 DAC도 함께 구매할 경우 더욱 좋은 음질을 기대할 수 있으며 노트북에서 연결해서도 쓸 수 있고, 스마트폰이나 내 아이팟과도 호환이 된다는 강점을 내세웠다. 하지만 듣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법. 남자 친구는 DAC가 가져다 주는 효과에 대해 큰 의구심을 품고 있었고, 중고 나라에 팔아도 거의 제 값이 나온다는 나의 항변조차 기각해 버렸다. 대신에 그는 해외 사이트 리뷰를 재빠르게 검색하여 대체할 만한 상품을 찾아 내기 시작했다. 뾰루퉁한 심정으로 그 리스트를 보다 간신히 둘 다 한 마음으로 이거 괜찮은데, 했던 것이 Thinksound의 <on1> 이라는 제품이었다. 나무로 된 재질과 HD600과 유사한 소리 성향, 그리고 허용 가능한 가격 범위 내, 아웃도어용으로 손색 없는 차음성. 나는 남자 친구를 보내고 30분 후 결제 버튼을 눌렀다.
<On1> 은 그 다음 다음날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돌아와 보니 문 앞 박스 안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박스를 조심히 뜯고, 제품의 외양을 잠시 감상하고, 헤드폰을 쓴 모습이 이상하진 않은지 잠시 점검을 했다. 그리고 아이팟을 연결해서 샘플곡이라고 할 만한 노래들을 몇 개 들어 보았다. 박주원의 <Night in Camp Nou>, 아침의 <첫사랑 자전거>, 언니네 이발관의 <태양없이> 등.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렇게 내내 음악을 듣고 있고 싶었다. <On1> 은 그리하여 공식 출퇴근용 귀마개로 등극하였으며, 글을 쓰고 있는 내 귀 위에도 얹혀져 있다. 우연이나 운명이 아닌, 단호한 의지의 결과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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