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똥강아지

ONE DAY ONE PAGE ㅣ 안창은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9-26 오후 5.20.22.png 그래픽 디자이너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살아가는 것 같아요. 저 역시도 자아를 찾아 방황중입니다. 그러데 그 방황이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마치 퍼즐이 맞춰지듯 나의 조각이 하나 둘 모여지는 것같거든요


작가 프로필 ㅣ 안창은

그래픽디자인과 웹UI개발 경계에 서있는 감성인




우리 집엔 똥강아지가 한 마리 산다.

이 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 가족과 같은 피가 흐른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피부색이 우리와는 다르고, 먹는 식성 역시 남다른, 그래서 또래 아이들과 키, 아니 덩치 차이가 제법 많이 나는, 누가 봐도 기운 넘치고 건강함이 매력인 아주 귀여운 녀석이다.


제 평생 살아온 날을 합쳐봐야 겨우 20개월 될까 말까 한 시간을 살아온 주제에, 감히 우리 가족의 전부가 되어버린, 이 놈이 존재하지 않았던 작년 4월 이전의 집안 분위기가 기억도 안날 정도로 모두의 머릿속을 리셋 시켜버린 대단한 녀석이기도 하다. 그뿐이랴, 그 당시 내가 상상도 못 했던 지금의 내 생활패턴에 지대한 영향을 준 놈이다.


그렇다. 강아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이 이야기는 내 조카에 관한 이야기이다.

위에서 말한 것 처럼 우리 조카는 그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서 가리는 것 없이 밥을 굉장히 잘 먹는 편이다. 그래서 유난히 다른 아이들보다 발육도 좋다.

무엇보다 너무너무 순한 편이다. 누워서 팔다리만 휘적 거리던 시절에도 너무 순해터져서 배가 고프지 않은 이상 우는 법이 없었다. 잠에서 깨면 아기가 엄마를 찾아 울기 마련인데 우리 똥깡이는 손장난과 발장난을 치며 노는 모습에 기가 찰 정도 였으니 말이다.


나는 아직 미혼에 주변에 아이를 낳은 친구도 없건만, 이렇게 순둥이 조카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몇 개월 정도 지켜보니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자연스레 언니 어깨 너머로 기저귀 가는 법, 똥 치우는 법, 먹이는 법, 재우는 법 등등을 하나씩 마스터 해나갔고 언니 역시 부득이하게 외출을 하게 되는 날엔 엄마보다는 나에게 아이를 맡겼다.

사실 자연스레 마스터 했다지만 제일 신경 쓰이는 일은 똥 치우는 거였다. 냄새도 적응이 안됐고 세면대에서 아이를 씻길 때 혹여나 아이가 떨어지진 않을까 미끄러져 넘어지진 않을까 조마조마 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우스갯소리로 이모가 해주는 거 다 소용없다. 크면 기억도 못할 거라고 하셨지만 조카가 너무나 예뻐서 나도 모르게 내 몸이 반응 했던 것 같다.


이제 누워만 있던 똥깡이가 걷는 법 없이 뛰어다닌다. 아직 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자기 의사표현을 강력히 어필할 줄도 알고 제법 말귀도 알아듣는다. 혹여나 지 엄마가 떼어 놓고 외출이라도 할까 봐 요즘엔 엄마 바짓가랑이만 잡고 늘어진다.

시시 때때로 상황에 맞게 부릴 수 있는 다양한 애교도 지 나름대로 터득한 것 같다. 혼 내려 하면 자꾸 혼내는 사람을 보며 배시시 눈웃음을 친다. 그래도 20개월 살아봤다고 지 나름의 삶의 노하우 같은 것 중 하나겠지.


오늘 그 애교를 보고 있자니 내 입가가 호선을 그리며 웃고 있고, 눈 역시 흐드러지게 휘어있지만 물기가 차오른다.

그 얼마 안되는 노하우 중에 이모를 동네 개똥만도 못하게 보는 법도 있는 걸까? 흑, 엄마가 했던 말이 다시 생각 나는 날이다.

그 사랑스러운 놈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내 얼굴을 보며 짜증을 내는 날이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모의 일방통행 사랑을 느끼는 날이 하루 빨리 다가오기를 바라면서 그저 건강하게 밝게만 자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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