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객체로써의 술

KEYWORD ONE PAGE <얼음> ㅣ 곽정빈

by 한공기
KakaoTalk_20160508_223016445.jpg 연구원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또 좋아하는 책이 헤르만헤쎄의 데미안입니다. 그래서인지 평소 인간 본연의 양면성을 사랑하고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말을 곧 잘하곤 합니다.


작가프로필 ㅣ 곽정빈

저는 3년간 하던 일을 그만두고 지난 1년간 세계여행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두 눈을 황홀하게 채우는 수많은 풍경들보다도 여태껏 가져보지 못했던 무지막지한 혼자만의 시간을 대면해야 했던 것이 가장 큰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시간들을 글을 쓰면서 채워 왔습니다. 글을 쓸 때 비로소나 나 스스로가 나 다워지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희미해져만 갔던 나의 자아가 글을 쓰면서 뚜렷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시작된 제 인생의 2막에서 지속적이고 전문적으로 글을 써나가고자 합니다.




어릴 적 가끔씩 아버지는 퇴근길에 회사 동료분들을 집으로 데려오셨다. 어머니는 마른안주와 술을 내오셨고 아버지는 그렇게 서재에서 회사 동료들을 맞이하셨다. 어린 누나와 나는 손님들께 꾸벅 인사만 드린 채로 서재 옆 안방으로 쫓기듯 들어갔고, 그렇게 요를 깔고 이불을 가슴께까지 덮고 누워 있으면 벽 너머를 통해 취기가 오른 어른들의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간혹 한껏 취한 아버지가 옆방에서 누나와 내 이름을 크게 부르시곤 했지만 그때마다 어머니는 서재로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 시절 술은 철저하게 어른들의 세계에 속한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며 집을 떠나 자취를 하게 되었고, 주민등록상 적법한 성인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게 되었다. 하지만 미성년자와 성인의 경계는 단 하룻밤일 뿐이었고, 그것은 술을 받아들이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준비 없이 접하게 된 술은 내가 결코 주체적으로 소비하는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동아리, 과 모임, 고등학교 동문회 등의 자리에 불려가 선배들과 자리해야 했고, 그들이 건네는 술잔을 거절 없이 받아 마셔야 했다. 자연스레 술자리는 불편했고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것이었다. 하지만 부모님과 같이 사는 친구들과 달리 자취를 했던 나는 항상 자리를 끝까지 지킬 수밖에 없었다. 모두 자리를 하나둘 떠나더라도 선배들과의 유대를 위해 한 명 정도는 끝까지 자리를 지켜야 하는 법이었고 그 한 명은 항상 나였다. 그러다 보니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지만 덤으로 내가 주량이 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집에 돌아갈 명분이 없으니 자리를 끝까지 지킬 수밖에 없었고, 주량이 세다 보니 취하지 않았으며, 멀쩡한 모습으로 오래 있다 보니 선배들 눈에 많이 띄게 되었다. 선배들은 내 이름을 기억해 주었다.

술 때문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자연히 나는 과 모임에서 간부 역할을 하게 되었고, 동아리에서는 동아리 회장이 되었고, 동문회에서는 동문회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자리한 위치에서 하룻밤 차이로 성인이 되어버린 후배들에게 뻔할 수밖에 없을 조언을 반복적으로 해대며 빈 술잔을 계속해서 채워주었다. 그리고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고나서도 만나는 사람과 장소가 달라졌을 뿐 그 패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 시절을 한 해 두 해 쌓아가며 나는 점차로 술을 배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술은 내게 있어서 결코 주체적인 소비대상이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술은 늘 사람들이 있는 곳에 있었지만 항상 객체로만 존재했던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내게 말하는 '술 한잔 하자'는 언제나 다른 의미였다. 술을 아니 술만을 먹자라는 '술 한잔 하자'가 아니라 실상은 너랑 긴밀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라던가, 선후배간의 끈끈한 네트워크를 쌓기 위함이라던가, 공식적이지 않은 자리에서 해야만 하는 종류의 대화를 해야하는 상황이라던가, 관계라던가라는 모든 것의 대치어로써 '술 한잔 하자'였기 때문이었다.


결국엔 술을 술로써 대면하지 못한 채로 내 이름을 기억해주던 선배들과 주변 사람들은 점차로 연락이 끊겼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남은 것은 그렇게 길들어 버린 술이었고, 그래 아마도 술이 그 허전한 빈자리를 차지해 남았나보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만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딱히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집에서 혼술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딱히 주종을 따지지도 맛과 향을 즐기는 것도 아니다. 매번 혼술을 할 때면 여지없이 소주 아니면 편의점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캔맥주일 뿐이다. 정말이지 기사 식당에서 혼자 반주를 하며 식사를 하시는 뭇 어른들과 전혀 진배없다. 그래서일까 가끔 친구들은 그 무슨 청승맞은 짓이냐고 걱정된다고 말들을 하곤 한다.

하지만 술을 술 자체로써 즐기지 못하는 삶을 반성하거나 매도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고된 노동의 가운데에서 새참으로 고들빼기김치를 곁들여 탁주 한 사발을 들이켰던, 입을 것 못 입고 먹을 것 제대로 못 먹으면서도 아들딸들은 기어코 시집 장가를 다 보내셨던, 하지만 스스로는 그저 소주 한 잔만으로 달래셨던 우리 어버이들의 삶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가 아닐까? 나로써도 민증을 당당하게 내밀며 출입했던 학교 앞 호프집, 짐짓 어른인 척 지나버린 세월을 한탄하며 기울였던 친구와의 소주잔, 연인과 분위기 있는 바에서 즐겼던 향긋한 칵테일이 없이 내 섣불렀던 20대를 쉬이 추억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술의 잘못을 굳이 따지자고 하면, 단지 늘 우리네 삶과 함께 있었다는 것 뿐일것이다. 단 한번도 주체가 된적이 없었지만 객체로나마 언제나 항상 같이 있었고, 그렇게 젊고 파란만장했던 한 시절을 같이 공유했으며, 이제와서는 그 추억을 안주삼아 한 잔 목으로 털어넘길 수 있는 객체일 뿐이라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술은 술 자체로써 의미가 있다.


스크린샷 2017-01-17 오후 5.34.35.png

곽정빈님의 다른 글이 읽고싶다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녀의 어느 늦은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