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 STYLE ㅣ 한공기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정작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의 본질은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있습니다. 전 그것을 찾아주고 싶어요.
작가 프로필 ㅣ 한공기
글쓰기 공동체 '파운틴' 운영자
보통사람의 사소한 일상이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송중기처럼 청순한 남자이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이름도 비슷하다.
난 어릴 적부터 동물은 왜 눈이 밖을 향해 있나 무척 궁금해했다. 그래서 자신은 볼 수 없고 오직 밖만 보다 보니 내가 어떻게생겼는지 잘 알아차릴 수 없다는 것이 속상했다. 특히 나의 뒤통수나 등이 보이지 않으니 내 뒷모습을 볼 수 있는 타인들이부럽기까지 했다. 그래서 내게 가장 인상적인 성경문구가 <남의 눈에 티끌은 보이면서 자기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한다.>이다. 난 그것이 인간의 숙명이라 생각한다. 눈이 밖으로 향해 있다 보니 타인의 흠은 잘 보이는데 자신의 흠을 발견하기 힘들다. 눈이 인간의 욕망을 상징할 정도로 본다는 것은 매우 직관적이고 솔직하고 탐욕적이다.
난 어릴 적부터 보는 것에 무척 민감했다. 유치원도 가기 전의 어린 나이 때 주말의 명화에 나온 금발 머리 여배우가 너무 좋아 브라운관을 혓바닥으로 핥기도 했다. 중학교 때부터 패션잡지를 모으고 내가 좋아하는 모델 사진을 뜯어서 스크랩 했다. 유년기에 내 두꺼운 미소녀 스크랩 북 속에는 주로 무명의 이요원, 양민아(신민아), 왕지현(전지현), 김민희 사진들이 가득했다. 고3때 엄마가 그 보물을 나 몰래 갖다 버려서 난생 처음으로 가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배우 바네사 빠라디의 잡지 포스터(지하철에서 몰래 훔쳐 뜯어온 것)는 사회과부도 속에 고이 접어 놓아 끝까지 사수했다. (난여전히 금발 머리 서양인을 최고로 이쁘다고 생각했다.)
대학시절에는 길을 걸을 때 정말로 광고판만 보고 다녔다. 당시에는 성형이 발달하지 않은 때라 이쁜 여자는 모두 티브이 속이나 광고에만 존재했었다. 이런 나의 미친 눈 때문에 엄마는 속상해 했지만 때론 엄마는 나를 잘 활용하기도 했다. 엄마와누나는 백화점 갈 때마다 나를 꼭 데려가 자신이 살 옷을 내가 대신 고르게 했다. 마치 영화 <프리티우먼>의 한장면처럼 그녀들이 옷을 입고 나오면 나는 인상을 찌뿌리거나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는데 나의 심사 기준은 매우 까다로워 옷 한 벌 사는데도 두 시간은 족히 걸렸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미대나 패션디자인과에 가는 것이 꿈이었지만 내 맘대로 전공을 선택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가게된 과가 <조경학과>였다. 조경도 미적인 부분이 중요하기에 나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1학년때부터 나뭇잎 모양만 보고도 무슨 나무인지 맞춰야 했고 셀 수없이 많은 식물들의 이름과 특징을 외워야만 했다. 그래서 난공부보다 동아리 활동에 매진 했는데 2학년 때 부장까지 맡게 된 동아리가 <영화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강의실보다 동아리실에 주로 있었고 그곳에서 거의 먹고 자고 다 한 것 같다. 누구보다 많은 영화를 보았고 감독이나 배우를 줄줄 꾀고 있었으니 선배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당시에 내가 가장 좋아했던 영화는 <러브레터>였고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는 러브레터의여주인공 <나카야마 미호>였다. 지금도 그녀가 멍하니 하늘을 응시하는 러브레터 포스터를 보고 있노라면 떨리고 아련한 마음에 가슴이 시리다. 그녀는 나의 첫사랑이자 뮤즈이자 여신이다. 나카야마 미호짱 오겡끼 데스까?
이와이 슌지의 탐미적인 영상과 그 안의 여인에 사로잡혀 주변의 여학생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대학교 2학년 때까지 여자친구가 없었다. 대신 동아리에서 어렵게 구한 <러브레터> 불법 복사본 비디오테이프를 몇 번이고 돌려봐 결국 테이프가 늘어져 비디오데크에 씹히기까지 했고 선배들은 성화를 부리며 내게 새 테이프를 구해 올 때까지 동아리실에 돌아오지 말라 특명을 내렸다. 난 <러브레터> 새 테이프를 구해오는 대신 <러브레터>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고 그런 영화를 만들면 나카야마 미호같은 여배우와 결혼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그해 타대학 영화과에 충동적으로 입시시험을 보았다.
운명의 장난일까? 장난의 운명일까? 난 합격해버렸다.
미대나 패션디자인과는 아니지만 앞으로 내가 영화를 찍으면 영화미술이나 영화의상도 직접 해야지 하는 치기어린 생각을 하며 합격소식을 받자마자 침대에서 껑충껑충 뛰다가 머리로 천장을 들이받아 천장이 움푹 패여버렸다. 영화과 생활은 만족스러웠다. 조경학과처럼 외울게 많지도 않았으며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캠퍼스에 이쁜 여자들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영화과 건물은 연기과, 전통무용과와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어 복도에서도 식당에서도 운동장에서도 그녀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순간은 커피자판기 앞에 있는 소파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연기과인 ‘문정희’ 누나랑담소를 나누었던 때이다. 그녀는 내게 어떤 남자배우를 좋아하냐고 물었는데 남자배우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나는 정말 아무 생각없이 ‘안성기’라고 말했고 그녀는 내게 참 올드하다고 했다. 당시 ‘문정희’ 누나는 연기과 트로이카 3인방 중 한명일 정도로엄청 이쁘고 연기도 잘하고 인기도 많았다. 체육대회 때 연기과와 영화과 농구시합이 있었는데 가드를 잘했던 나도 주전 멤버로 뛰었다. 그때 응원석에 있던 문정희 누나에게 뭔가 보여주고 싶어 입안에 핏내가 나도록 열심히 달렸다. 내가 낯이 익어서인지 그녀는 내가 슛을 넣을 때마다 박수를 쳐주기도 했는데 그때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했다. 결국 졌지만 ( 패배의 원인은 상대편에 3점슛을 무척 잘하는 이선균 형 때문이었다) 그날 난 내가 언제 행복한지를 깨달았다. 그것은 이쁜여자가 날 좋아해주는 순간이다.
그러나 나는 변했다.
과도하게 성형한 여자를 보면 나도 모르게 시선을 피하는 사람이 되었다. 좀처럼 티브이를 틀지 않고 인스타그램을 하면서도무척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는 어느새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내적인 아름다움’에 집착하게 되었고 인위적이고 포장된 미에 대해서 경멸하는 사람이되었다. 내가 변했다기보다 그 사이 대한민국에서는 많은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욕망’이 트렌드가 되어도덕과 철학이 말살되고 오직 쾌락만 쫓는 사회가 되었다. 가장 어이 없는 것이 여자 아이돌 그룹이다. 미성년자 어린 학생들이 낯뜨거운 복장을 하고 자신의 몸을 더듬으며 춤을 추는데 아저씨들은 열광하고 그것에 대해 누구도 문제삼지 않는다. 여자아이돌들이 군대에 위문공연을 갔을 때 소리치며 광분하는 장병들의 모습을 볼때면 그들이 짐승처럼 느껴지며 너무도 부끄럽다. 어느새 그런 이 사회에 혐오감을 느끼고 이제야 내 자신을 반성하게 된 것이다. 그래, 난 그동안 나의 모순이 싫어서 차라리 장님이 되고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나의 이런 고민에 지인들은 남자가 이쁜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 아니냐?며 어이없어 했는데 그들은 문제의 본질을 잘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이쁜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쁜 여자만 좋아하는 것이 문제다. 남성들이나 여성들이나 모든 시선이 젊고 이쁘고 잘생긴 것에게만 쏠려있으니 오래되거나 보통은 어느새 열등해지고 소외되는 천박한 사회.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오징어론…남자친구랑 극장에 갔는데 스크린에 정우성이 나오는데 옆에 있는 남친이 오징어로 보이더라…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웃고 떠드는 이 사회가 정말로 혐오스럽기 그지 없다. 그지같은 나라…
난 많은 반성을 했다.
물론 여자얘기가 나오면 아직도 반사적으로 ‘이뻐?’ 묻지만 그것은 일종의 조크일 뿐 진심은 천상의 피조물들의 외모에 대해어떠한 판단도 내리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인식이 자리 잡혔다. 그런 철학이 저절로 생긴 것은 아니다. 거의 10년간 인간의 마음과 인문학에 관해 치열하게 공부를 했다. 특히나 문학공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지…미학공부는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인지…알아차리게 해주었다. 운명의 장난처럼, 장난의 운명처럼…
최근에 엄청난 영화를 보고 펑펑 울었다. <100엔의 사랑>이란 일본영화인데 여주인공 캐릭터가 뚱뚱하고 못생긴 루저이다. 직업도 없는 그녀는 언제나 더러운 츄리링 바람으로 집안에 틀어박혀 게임이나 하며 ‘이번 생은 망했어…평생 남자도 못만나겠지…’하며 신세한탄만 한다. 그런 그녀가 우여곡절 끝에 100엔샵(일본판 다이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우연히 한 남자를 사귀게 되는데 사귄지 얼마 안되어 차이고 만다. (그가 그녀와 사귄 이유와 그녀를 찬 이유는 단순하다. 쉬워보여서…) 그녀는 심지어 동료 아저씨 직원에게 강간도 당한다. (이 장면은 정말 보기 힘들 정도로 괴로움) 그녀가 그런 취급을 당하는 것은 남들에게 매우 가벼워 보여서였다. 뭔가 함부로 해도 괜찮다고 느껴질 정도로…존재감도 없고 열등하고 다루기 쉬워 보여서였다. 그녀가 드디어 분노하기 시작하고 집 근처에 있는 복싱도장에서 복싱을 하게 된다.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도장 벽에는 Hungry Angry라는 문구가 붙어있는데 마치 이 영화 전체를 말하는 듯 하다. 배고파 봐라. 분노하라.
그녀는 진짜 열심히 복싱을 하고 심지어 아마추어 대회에 나가기까지 하는데 정말 놀랍게도 영화 후반에는 여주인공의 몸이절반이 된다. (이 영화를 찍기 위해 배우가 살을 엄청 찌웠다가 실제로 복싱을 배우며 살을 엄청 뺐다고 함) 그녀의 눈동자는완전히 변했고 그녀의 몸은 매우 날렵해졌다. 얼굴은 여전히 이쁘지는 않지만 자신과 싸우며 투지를 불태우는 모습에 너무도아름답고 신성해 보이기까지 한다. 심지어 너무도 사랑스럽게도 보여… 앗! 이 여자랑 사귀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녀는 어느 새 거인이 되었고 너무 커서 감히 넘볼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대회에 출전하고 링위에서 인생을 걸고 사투를 벌인다. 얼굴이 만신창이 되도록 두들겨 맞으면서도 쓰러질 때마다 오뚜기처럼 일어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는 주먹을 깨물며 엉엉 울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보고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주인공을 맡은 여배우 <안도사쿠라>는 그해 일본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탔으니 정말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자기 자신과 싸우며 반성하고 성찰하고 수련하는 사람이다. 눈은 비록 밖으로 달렸지만, 마음과 온 신경을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다보면 자신의 부족함을 알아차리게 되고… 정말 어렵지만, 스스로를 비우고닦아나가는 과정을 해낼 수가 있다. 난 그것을 <도를 닦는다>라고 표현한다.
내게는 새벽에 일어나고 절약하며 검소한 생활을 하고 운동을 하고 요리를 하고 일에 최선을 다하고 글을 쓰는 행위가 도를닦는 것이다. 그렇게 10년을 살아보니 어느새 난 난 타인의 판단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한때는 남의 판단에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할 정도로 자존감이 무척 낮았었는데 이제는 누가 뭐라고 하든…난 그들의 상상 이상으로 한참 부족하고 한참 못난 사람이고 그것을 너무도 잘 안다. 반면 그들의 상상 이상으로 사랑스럽고 존경스러운 사람이라는 것도 너무나 잘 안다.
내가 예전에 자존감이 낮았던 이유는 간단하다. 그때는 속이 비어있는 과일처럼, 껍데기 뿐인 삶이었다. 그래서 쉽게 휘말리고 쉽게 좌절하고 쉽게 의존적이고 쉽게 방황했다. 이제는 안이 점점 단단해져 버렸다. 껍데기에는 신경을 잘 안쓰게 되어 버렸다.
이제 내 얼굴도 기억이 잘 안난다. 내가 어떻게 생겼드라? 궁금하지만 굳이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거울을 보지는 않는다. 아주 가끔 셀카를 찍어 보기도 하지만 그 모습이 타인처럼 느껴지고 낯설다. 그저 눈을 감고 마음이 깨어 있으려고 노력한다. 난 너무도 잘 안다. 자신의 발목을 붙잡는 것은 삶을 소유하려는 마음이다.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면 분노하고 한탄하고 속상해하는 그 상태가 모든 악순환의 근원이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고 조금씩 진화하려는 노력…반성과 성찰과 수련…그리고 모든 삶을 받아들이는 마음. 그런 사람만이 타인을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고 있는그대로 사랑해줄 수 있는것이다. 그것은 인간만이 가진 고유의 능력이므로 본능으로만 사는 동물은 결코 할 수가 없다. 그것이 내가 인간임을 증명하는 방법이자 내가 인간답게 사는 방법이다. 난 그저 얼굴 없는 사람이다. 난 그저 특별한 사람도 아닌 Nobody이다. 난 그저누구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는 Everybody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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