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 STYLE ㅣ 이상은
갑자기 얻는 깨달음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 깨달음을 유지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작가 프로필 ㅣ 이상은
Keyword: 연극, 여행, 춤, 다이어리, 팟캐스트
2016년 마지막 날, 연극 '빨간시’를 보고 왔다. 일제 강점기의 종군위안부문제와 연애계 성상납 사건을 잘 결합한 작품이다. 자신이 겪은 일을 담담히 이야기하는 배우를 보며 내 화를 참지못했던 한 해를 돌아봤다. 이 작품으로 낭독공연에 참여했기 때문에 더 감회가 새로웠다.
작년 2016년은 자기연민에 빠져 많이 힘들었던 때이다. 높은 성과를 내는 과정이 힘들고 다른 사람들이 망가뜨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화를 내거나 잠수를 타도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당신들은 더 골탕을 먹어야 정신을 차려’라며 내둬려두었는데 점점 내 성격이 냉소적이 되어갔다. 인간관계에서도 문제가 생겼는데 힘든 내색도 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싫어하는 사람의 의지처와 손발이 되는 것은 정말 끔찍하다.
시민연극프로그램-낭독공연에 참가하는데, 연출님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A4 반페이지로 써오라고 하셨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면서 아픔을 털어버리고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자는 것이다. 새로 쓰기 귀찮아 3년 전에 썼던 글 일부를 가져갔다. 첫 발표자가 되어서 읽기 시작하는데 목소리가 떨리더니 울음을 떠뜨렸다. 3년전 글에는 사건이 4개 있었고 합평을 할 때 눈물을 좀 글썽였을 뿐이다. 남들 앞에서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으로 골라갔는데도 이번에 더 감정조절을 못해 스스로 한심해하면서 겨우 마쳤다. 30명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아픔은 정말 보잘 것 없고, 남편,시댁,자녀 등 겪어보지 않은 인간관계 때문에 생기는 갈등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나이가 먹은 참가자들일수록 담담히 읽고 옅은 미소를 띄었다. 한 60대 아줌마는 내가 울고 있을 때 손수건을 가져다주었는데 "내가 이런거 다른 데서 해본 경험으로 필요할 것 같아, 5개 챙겨왔어"라고 말하셨다. 발표가 끝나고 각자 짧은 소감을 한 마디씩 말할 때, 어떤 분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몇 명을 꼭 안아주었다. 그날 얼음이 사르르 녹기 시작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고통이 컸던 인생선배들이 저녁식사,간식 등 솔선수범해서 다른 사람들을 챙기는 모습도 감동적이였다. 실제 공연에서도 느낀 것도 크다. A팀의 위안부 할머니역을 맡은 배우는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할 때 화를 삮이지 못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보일수 있는 반응이지만 확실히 감동은 적었다. 똑같은 역할을 한 B팀 배우는 감정절제를 잘 해 담담히 연기를 해서, 참관을 온 프로배우가 대성통곡을 할 정도로 정말 감동적이였다. 아픔을 극복하면 나도 그렇게 큰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처음 갖게되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연민’이란 감정에 대해 인생 처음으로 고민했다. 난 자기애가 유난히 강한 사람이라 내가 힘든 것을 더 못 견뎌한다는 것을, 그 고통을 극복하는 힘도 나 자신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타인에 대해 연민을 갖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팟캐스트 ‘김어준의 파파이스’ 에 세월호 유가족이 나와 이야기를 할 때마다 똑같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 지겨워 건너띄곤 했다. 그날따라 끝까지 들었는데 그분의 아픔이 더 크게 와닿았다.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차분히 말하시니까 마음의 평화와 큰 호소력을 가진 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책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에서 아들이 한 일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작가를 보면서 독자에게 큰 울림을 주었고, 작가가 이 책을 쓰는 과정을 통해 더 큰 사람이 되었겠구나‘하는 생각하며, 나에게도 다른 세상의 문이 조금 열린듯하다.
감정의 수렁에 오랜만에 빠졌다가 내 그릇의 크기를 깨닫고, 내면이 더 단단해졌다. 하지만 아직 멀은 것 같다. 당장 지금까지 썼던 이전 단락까지 읽어보면 화가 아직도 많이 묻어나온다. 여전히 사람들에게 냉소를 보내고 같이 하자는 손길을 뿌리치는데 마음이 편치않다. 내가 가만히 앉아있는데 천장이 무너져 나를 덮치는 망상이 가끔 들어 차라리 힘을 보탤까 싶기도 한다. 하지 못하는/하기 싫은 이유를 써보니 8개나 되었다. 새해 2017년에 나에게 건네는 서약서로 이 글을 쓴다. 겨우 자기연민의 터널에서 나왔는데 다시 들어간 것은 멍청한 짓이라고 날마다 굳게 다짐한다.
이상은님의 다른 글이 읽고 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