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홍상수, 김민희 사태에 대한 나의 관점

FREE STYLE ㅣ 한공기

by 한공기
427155_315705241826240_873170111_n 복사본.jpg 마음탐정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정작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의 본질은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있습니다. 전 그것을 찾아주고 싶어요.



작가 프로필 ㅣ 한공기

글쓰기 공동체 '파운틴' 운영자

보통사람의 사소한 일상이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송중기처럼 청순한 남자이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이름도 비슷하다.




불편하다. 두 사람의 관계가 불편한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을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대중의 집단적 단일시선이 불편하다.

간통법이 없어져 두 사람의 관계가 법에 저촉은 안될지라도, 윤리적인 비난은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단순히 도덕과 윤리로만 판단되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라는 말에는 현상과 심상에 대한 분리의식이 존재한다. 홍상수와 김민희의 관계는 '현상'적으로 불륜이다. 허나 내가 홍상수라면, 김민희라면 단순히 불륜이라고만 스스로 단정짓지 못할 것이다. 심상적으로 나만의 사정과 속내가 있으니까 말이다.

대한민국 사회 구성원들은 현상과 심상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대부분 자신이 본 현상을 자신이 믿고싶은 심상으로만 판단한다. 즉 자신의 '심상'을 '현상'이라 착각하는 것이다. 예로 어떤 여자를 보고 첫눈에 보고 반했는데 그 이유가 무척 청순해보이는 나의 이상형 스타일이어서 라고 치자. 그런데 그녀가 과연 진짜 청순한 여자인가? 그것은 그녀와 깊은 교제를 지속해서 잘 알기전까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세상에 60억의 인구가 있으면 60억의 관점이 존재한다. 그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판단이 나올 수 있다. 진리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런데 불륜- 죄- 권선징악적으로 나쁘다... 로 사고가 1차원적 판단으로 끝나면 스스로 인간에 대해 깊은 이해와 통찰이 없는 유아적인 발상이 아닐까 의심해봐야 한다.

인간은 매우 복잡한 존재이고 그것을 이해하는 과정이 바로 인문학이다. 예전 어느 청년교회를 다닐 때, 2,30대 교인들이 여러 현상들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든 적이 있다. 내가 "넌 왜 그렇게 판단하는거지?" 물었을 때 그들 대부분의 대답은 이러했다. "목사님이 그랬어."
그들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조차 없이 목사님의 판단에 의존하는, 매우 미성숙한 존재였던 것인가? 당시 광우병 때문에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악마에게 유혹당했다고 판단했던 그 때 그 청년들은 지금 광장의 촛불을 보며 여전히 비슷한 생각을 할 지 무척 궁금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은 종교라는 동굴 속에서 사회에 무관심한 채,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기도했다. 결국 자기 자신의 존재에도 무관심한 채 수동적인 삶을 살았던 것이다.

내가 나의 주인이 되려면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가져야 하고, 그런 능력은 인문학적 교육없이는 불가능하다. 자기계발서나 이유식처럼 남이 씹어서 정리해준 내용을 습득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난 '문학'을 적극 권장한다. 소설과 시를 읽다보면 인간 내면에 깊숙히 존재하는 사랑, 악, 탐욕, 모순 등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것에 반응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으며 주인공이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에서 책을 덮어버릴 것인가? <돈지오바니>의 오페라를 보며 주인공이 수많은 여자를 유혹하는 장면에서 불쾌함 때문에 중간에 극장을 나올 것인가?
우린 내면의 그 불편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동시에 더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봐야 한다. 결국 호수 밑바닥까지 가보지 않으면 거기에 뭐가 있는지 절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지금의 홍상수-김민희에 대한 단순한 시선은 호수 위에 얼어붙은 빙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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