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쿨한 글쓰기

FREE STYLE ㅣ 신정훈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12-16 오후 3.49.57.png 호주 멜번의 청소부
저는 글을 막 씁니다. 브레인스토밍하듯 손가락 가는대로 놔두는 식입니다.


작가 프로필 ㅣ 신정훈

현상을 쿨하게 응시하고 그것에 담긴 의미를 즉흥적인 글쓰기 과정으로 풀어내려 한다.



오랜만에 문화 비평을 쓰려 했다. 비평할 글을 찾았다. 소화를 시키고, 아다리가 안 맞는 부분에 의문을 제기할 예정이었다. 자료 조사가 귀찮지만, 반박할 내용만 찾으면 되서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었다. 첫 단추가 잘 끼어지지 않았다. 이게 무슨 소리야. 글이 목에 걸려 켁켁댈 뿐이었다. 결국 잠시 손을 놓았다.


생소한 어휘와 이념, 사상가의 이름이 눈앞을 휘저으니, 이걸 언제 다 찾냐.. 한숨이 나온다. 지식인이 되기 위해 노력 중임을 스스로 각인시키기 위해 어렵고 멋진 무언가를 쓴다. 무식한 사람이 똑똑한 척 하기 위해선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필요한 노동력을 계산하다 지쳐 멋짐 뽐내기를 유예한다.


비평하기를 포기했으나, 글 말미의 문장에 시선을 뺏겼다. '자기 비판 없는 비판은 냉소적 풍자에 불과하다. 홀로 고고한 입장에서 대상에 칼질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주장에 종목을 자기 검열 및 셀프 디스로 바꿨다. 내가 전에 쓴 비평을 다시 읽었다. 대단한 위치에 있는듯 비평가를 내려보며 글을 난도질했다. 글의 정수를 이해했는지 확신할 수 없다. 자신의 이해 부족을 비난의 도구로 사용한 것은 아닌가 되돌아봤다.


과연 나의 자의식은 온전히 제도와 도덕에 대립하고 있을까? 아니다. 잘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자의식의 첨단에 위치한다. 어떻게 하면 똑똑해 보일지, 더 진보적이고 쿨해 보일지 관심을 쏟는다. 쿨함의 표현으로 타인의 귀한 글에 상처를 낸다. 너의 사유가 그 정도야? 네가 보지 못 한 것(나도 방금 인터넷을 통해 알게된, 곧 잊어버릴)을 알려주지. 그 사실을 놓쳤으니 벌을 받아야 해. 나는 투자한 시간과 노력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거든.


고생 끝에는 낙이 온다는 말을 체화했다. 돌아오는 것이 없다면, 스스로 낙을 만들었다. 열심히 일했으니 맥주 한 잔. 돈 많이 벌었으니, 옷 한 벌. 어려운 글쓰기도 보상이 필요하다. 힘들게 쓴 글은 우월함을 준다. 비평가가 쌓은 지위에 편승을 넘어, 머리를 밟고 올라가고자 한다. 학벌 콤플렉스의 표현일지 모른다. 나는 전문대 출신이지만, 서울대 교수의 글마저 논파할 수 있어. 다들 무시하지 말라고. 허공에 식칼을 휘두르며 드루와 드루와 시발넘아~ 외친다.


반성합니다. 저의 모자람을 통감합니다. 유치한 행동이었어요. 죄송합니다. 라고 쓰면 매끄러운 진행이다. 모든 글을 교훈으로 마무리할 필요가 없다. 뭔가 깨달은 듯이 말하는 것은 안정적인 구조를 위한 거짓이다. 마침표를 찍고 모니터에 남긴 다짐을 금세 잊는다. 열등감과 고상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나온 어려운 글쓰기는 유용하다. 습작이 치기와 한심함의 표현인 한편, 이성의 날을 세우는 작업이다. 또한 결핍을 깨닫는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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