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DAY ONE PAGE ㅣ 곽정진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또 좋아하는 책이 헤르만헤쎄의 데미안입니다. 그래서인지 평소 인간 본연의 양면성을 사랑하고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말을 곧 잘하곤 합니다.
작가프로필 ㅣ 곽정빈
저는 3년간 하던 일을 그만두고 지난 1년간 세계여행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두 눈을 황홀하게 채우는 수많은 풍경들보다도 여태껏 가져보지 못했던 무지막지한 혼자만의 시간을 대면해야 했던 것이 가장 큰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시간들을 글을 쓰면서 채워 왔습니다. 글을 쓸 때 비로소나 나 스스로가 나 다워지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희미해져만 갔던 나의 자아가 글을 쓰면서 뚜렷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시작된 제 인생의 2막에서 지속적이고 전문적으로 글을 써나가고자 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그림을 그리는 일은 늘 숙제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숙제는 매번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 자유 주제의 그림을 그릴 때면 늘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을 의무적으로 그려 넣었다. 뾰족한 삼각의 빨간 지붕을 얹고 노란색 벽면을 세웠으며 가로살 세로살에 의해 4등분으로 나뉘어진 창문을 그려 넣었다. 내 기억 속에 어릴 적 우리집은 단 한번도 네모난 아파트를 벗어난 적이 없었지만, 나는 매번 빨간 지붕과 노란 벽면과 4등분으로 나뉜 창을 가진 집을 그려 넣었다.
내 그림 속 녹색의 풀밭 위에서 폴짝 뛰고 있는 사람들의 눈은 항상 갈매기 모양으로 웃고 있었는데 혹여라도 우는 모습을 그려 넣으면 어른들은 이 친구는 왜 울고 있느냐고 물어왔기 때문에 나는 항상 웃는 사람을 그렸다. 때때로 저자신은 이유없이 울기도 하면서도 어른들은 이유없이 우는 그림속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시절 그림 그리는 시간은 유독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길게는 두 시간, 행사라도 있을손 치면 네 시간 동안 이어지는 그림 그리기는 결코 재미있지도 잘 그려지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저 그려져야 할 그림을 그린 것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내 어릴적 최초의 직업적인 꿈은 '화가'였다.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를 따라 무작정 그렸었는데, 넌 그림을 참 잘 그리는구나라는 친구들의 칭찬에 우쭐해졌고 어느 순간 나는 수업시간에 만화를 그리고 있었다. 스프링 노트의 종이에 6개의 가로선, 3개의 세로선을 그려 칸을 나누고 한 칸 한 칸씩 그림을 채워가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방식이었다. 당시 '마법소녀 리나'라는 인기만화의 형식을 차용해서 용사가 악마를 무찌르는 류의 판타지 만화를 그렸는데 친한 친구들 몇몇을 만화속 주인공으로 대체했다.
매 수업시간이 끝나면 친구들은 내 자리로 몰려와서 조금씩 채워져가는 만화를 보며 좋아했고 그런 친구들을 보며 나도 좋아했다. 친구들은 수업시간에 내 그림을 볼 생각에 들떴었고, 나는 친구들이 내 그림을 보며 좋아할 모습을 기대하면서 수업시간에 그림을 그렸다. 그 시절 나는 내가 언젠가 대단한 만화가가 될 줄로만 알았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점점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되었다. 별 다른 이유는 없었다. 내 만화의 팬들이었던 친구들은 다른 반으로 배정되었고, 같이 그림을 그리던 친구들은 전학을 갔기 때문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지루해졌고,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다른 흥미가 생겼을 것이다. 심지어 중고등학교에 올라가게 되면서 미술시간은 점점 줄어 들었으며 진학에 별다른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는 일과 나는 자연히 멀어졌다. 그렇다고 별 아쉬움도 느끼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아주 평범한 어른이 되고 나서 가끔씩 어릴적 그림을 신나게 그렸던 그 시절을 떠올려 봤었다. 무엇인가 내가 중요한 어떤 것을 그 시절에 두고 온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 이렇게 하찮고 보잘 것 없는 모습은 내가 그 시절 원하지 않았던 것을 택한 대가였던 것은 아닐까? 어른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안전한 길을 택한 업보가 아닐까? 그래서 이렇게 지극히 평범한 어른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코흘리개 초등학생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는 일은 결국 시덥잖은 변명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시절 나는 그저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아서 그리지 않았던 것뿐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림은 이미 그려진 대상을 지칭하는 것이고, 그린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의 행위를 의미하는 것일진대, 그리고 싶은 것이 없는데 그림을 그리는 것은 먹을 것이 없는데 씹고 있는 것 만큼이나 그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필력을 갈고 닦기 위한 매일의 필사적인 글쓰기는 과연 무슨 의미인가. 쓰고 싶은 '글'이 없는 '쓰기'는 그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인가. 보이지 않는 막연한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글쓰기는 눈을 감은채 허우적 대는 꼴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그래서 글을 언제든지 쓸수 있듯이 언제라도 쓰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서 가끔씩 펜을 놓을 필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