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시린 기억속의 그대

ONE DAY ONE PAGE ㅣ 한공기

by 한공기
427155_315705241826240_873170111_n 복사본.jpg 마음탐정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정작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의 본질은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있습니다. 전 그것을 찾아주고 싶어요.



작가 프로필 ㅣ 한공기

글쓰기 공동체 '파운틴' 운영자

보통사람의 사소한 일상이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송중기처럼 청순한 남자이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이름도 비슷하다.




똑.똑.똑.똑...

누군가 내 방을 노크하는 소리가 아니라 다용도실 수도꼭지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이다. 겨울이라 수도가 얼어 벨브가 끝까지 잠궈지지 않아서 그렇다. 사람들은 이제 겨울이 끝나간다, Spring is coming 말하지만 저 소리가 멈추기 전까지 난 봄을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조만간 봄이 온다는 사실에 내 몸은 무척이나 기뻐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온몸으로 겨울을 혐오하게 되었다. 날선 칼날같은 냉기에 뼈가 시리면 자꾸 움츠려들고 집안에 틀어박히게 된다. 마치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동굴에서 좀처럼 나가지 않게 된 꼴이다. 행여 일이 있어 외출했다가 빙판길에 미끄러질때면 엉덩방아를 찧거나 손목을 다친다. 그럼 또 겨울을 시리도록 증오하게 된다. 엉덩이도 시리고 손목도 시리다. 어느새 내가 나이가 들었구나 깨달으며 서글퍼지기도 한다.


하지만 '시린 마음'은 좋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어찌나 좋던지... 콧잔등이 시큰해지고 눈물이 글썽이는데... 그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어릴 때는 시린 마음이 미치도록 싫었다. 그래서 애인 있는 여자에게는 아예 말도 안 걸었다. 대신 솔로인 여인이 조금이라도 나를 좋아해주기라도 하면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물이 뜨거워지면 수증기가 되듯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사귀어 버렸다. 그래, '버렸다'라는 표현이 아주 적절하다.

사버렸다, 먹어버렸다, 때려버렸다, 읽어버렸다, 봐버렸다, 열어버렸다...이런 표현들은 앞에 암묵적으로 '나도 모르게'가 숨어있다. 즉 책임을 회피하는 수동태. 그래서였을까? 그렇게 의지없이 사귄 사이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고 헤어진 후 얼굴도 시절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반면 가슴 아픈 시린 사랑은 영원히 각인되어 버린다.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시기에는 삶의 모든 순간에 그 사람의 존재가 깊은 상처처럼 남는다.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혼자 밥을 먹을 때도, 길을 걸을 때도, 누군가와 만나서 이야기를 할 때도, 티브이를 보고있을 때도, 일을 할 때도, 그리고 저녁에 잠이 들 때도 내 옆에 그 사람이 있어줬으면 하고 생각한다. 한번은 길을 가다가 그 사람이 너무나 보고싶어 멈춰서서 멍하니 하늘을 보았다. 내가 어느새 그 사람의 우주안에서 살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닿을 수 없이 끝없이 펼쳐진 그 하늘이 그렇게도 매정하게만 느껴졌다. 그제서야 '사무치게 그립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 시간을 오래 보내다보면 짝사랑이 하나의 '예술활동'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나- 그녀- 그녀의 연인.

이 세점을 잇는 삼각형은 하나의 작품이 되고 그 작품에서는 엄청난 에너지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친다.

이미 오래 지난 일이라... 세 사람이 흩어져 각자 다른 삶을 살아도 그 빛바래고 낡은 삼각형은 천년이 지나도 대형 박물관에 계속 남아있을 것만 같다. 유리관 속에 고이 보관한 유물 밖의 작품 명에는 나의 이름, 그녀의 이름, 그녀의 연인의 이름이 적혀있을 것이다.


나의 이런 <시린사랑중독>에 대해 정신과 치료를 받으라는 친구도 있지만, 아주 잘 이해해주는 친구도 있다.

"원래 남의 떡이 더 탐이 나는 것이지...만약 그녀가 남친이 없었으면 넌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수도 있다능..."


일리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나 소설을 보면 늘 삼각관계를 다루고 있다.

위대한 개츠비, 상실의 시대, 아비정전, 드라이브(라이언 고슬링 주연), 러브레터...

이 작품들에는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 사이에 늘 제3의 인물이 버티고 있다. 심지어 몇작품은 3의 인물이 이미 죽어 세상에 없다. 그런데도 그의 존재감이 너무 크다. 그래서 살아있는 두 사람이 쉽게 만나지 못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기본적으로 '시리고 먹먹하고 에리다'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 없는 상황에 관한 이야기여서 그런걸까?

어쩌면 그 먹먹하고 아프고 시린 감정을 느끼며 스스로 내가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어서일 것이다.


이제 봄이 오면 많은 남녀가 짝을 이루고 연인이 되어 손잡고 청명한 하늘 밑에서 활개를 치고 다니겠지...

쌍으로 붙어다니는 나비처럼 얼마나 아름다운가!

간지러운 바람, 향기, 따스함 만으로도 봄은 완벽하게 아름답다!

그때 난 또 푸른 하늘을 멍하니 볼 것이다.

더 잔인하게 시릴 아픔에 가슴을 부여잡고 눈물을 똑.똑.똑.똑 흘리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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