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DAY ONE PAGE ㅣ 한공기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정작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의 본질은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있습니다. 전 그것을 찾아주고 싶어요.
작가 프로필 ㅣ 한공기
글쓰기 공동체 '파운틴' 운영자
보통사람의 사소한 일상이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송중기처럼 청순한 남자이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이름도 비슷하다.
술을 마시고 집에왔다. 어떻게 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단지 어렴풋한 인상은 지하철을 거꾸로 타 생각지도 못하는 역을 지나칠 때 난 내가 꿈을 꾸는줄만 알았다. 스위트홈에 오자마자 씻고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멍하니 천장을 향해 올라가는 담배연기를 보며 난 여전히 <난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질문하고 있다. 술김에 인터넷 카페에 들어왔는데... 한산하다. 마치 텅빈 술집을 지키는 주인이 된 기분이다. 예전의 트라우마가 떠올랐다. 한 때 호프집을 경영한 적이 있었다. 한 3년간...영업 마감이 3시인데 12시부터 손님이 없었다. 12시 이후에는 모든 직원이 퇴근해서 혼자 가게를 보는데 손님이 없으면 난 주로 술을 마셨다. 남아도는 식재료로 안주를 만들고, 남아도는 소주를 한병씩 깠다. 술을 엄청 좋아하는 내가 한때 술집을 했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지만, 그땐 정말 난 술집 주인이어서 매일 원없이 술을 마셨다. 스포츠 방송을 보며 혼자 술을 마셨다. 평소에 관심도 없던 골프를 보며 난 언제 즈음 골프를 치러다닐까? 평소에 관심도 없던 볼링을 보며 난 언제 즈음 볼링을 치러다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통유리로 된 창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술을 마셨다. 술취한 여자친구를 업고 가는 청년, 업소 아가씨를 꼭 끌어안고 2차 가는 정장의 아저씨들, 잔뜩 몸을 움츠리고 퇴근하는 주방 아줌마들...그들은 날 보며 무슨 생각을 했으려나? 왜 저 남자는 저렇게 잔뜩 안주를 시키고 혼술하고 있는거지? 의아해 했겠다. 내가 좋아하는 안주들이 상 위에 가득했다. 번데기 캔을 뜯어 후라이팬에 붓고 고춧가루와 청량고추를 썰어넣은 번데기 탕, 소금을 치고 노릇하게 볶은 은행구이(손님에게는 20알정도 나가지만 난 혼자 30알 정도를 먹었다.)멸치와 다시마 우린 국물에 오뎅꼬치 4개를 넣고 끓인 오뎅탕...그리고 소주 3병.
혼자 술을 마시며 난 늘 질문했다. 난 왜 여기에 있는가? 삼촌이 어머니 돈을 빌려서 가게를 크게 차렸다가 장사가 안 되니 남아있는 돈을 갖고 튀었다. 미수금도 하나 안갚고. 우리 집안은 갑자기 비상사태가 되었고 난 하던 광고일을 접고 뜬금없이 술집을 맡게되었다. 가게 앞의 아주 조그만 원룸에서 이불도 없이 살았다. 이불 사 돈도 아까워 그냥 점퍼를 덮고 잤다. 세번의 크리스마스를 가게에서 보냈다. 크리스마스에는 손님이 워낙 많아 쉴새 없이 바빴고 그것이 좋으면서도 싫었다. 매일같이 새벽 4시에 집에 들어가고 아침 10시에 일어나서 장을 보러다녔다. 보통 잠이 드는 시간은 6시...늘 피곤에 쩔어있었다.
당시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조선족 아주머니, 중고등학교 때 자퇴한 청소년들, 동네건달, 업소 아가씨 그런 사회 밑바닥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나나 그들이나 지독히도 땅바닥에 붙어 있어서 희망같은 단어는 모두 사치였다.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느라 꿈꿀 여력이 없었다. 그래도 주방장은 매 주 복권을 샀고 매 번 허탕을 쳤다. 나도 한 때 복권을 사다가 어느새 포기하고 그만 두게 되었다. 그때 참 취객들과 싸움도 많이 했고, 허전한 맘 달래려고 혼자 술을 마시는 다방 아가씨 푸념도 많이 들어주었지...특히 자유를 찾아 남한에 왔다가 돈때문에 노예생활 하는 탈북여성들과 마주할 때 마다 마음이 에렸다. 아직도 기억나는 이름이 향월. 보름달이 뜨는 날마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얼굴이 떠오른다. 동그란 순한 얼굴에 초승달같은 눈웃음이 참 매력적이었지. 서글서글해서 인기도 많았는데 2차로 우리 가게에 자주 왔었지. 그녀가 일하는 곳이 아마 '봄다방'이었지. 향월에게 언제 봄이 찾아올까? 묻자 그녀는 웃으며 "사장님이나 봄이 오면 절 초대해주세요." 그런 말을 했었지. 쓴 웃음로 대답하면서 내심 언젠가 그녀와 멀리 도망치고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불과 10년도 안된 일이고 그때가 너무도 생생한데 난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낯선 곳에서 낯선 일을 하며 살고있다. 복희 아줌마, 호식이, 상필이 형 그리고 향월이 모두 잘 살고있으려나? 세척하고 말리려 가게 앞에 널어놓은 오븐기 필터(30만원짜리)를 주워가버린 박스랑 고철 수집하는 등 굽은 할머니는 아직 살아있으려나?
가게를 처분하자마자 도망치듯이 너무도 급하게 서울로 올라왔다. 곰다방에 들러 향월이랑 쌍화탕 한잔이라도 마시며 작별인사라도 할 것을...너무도 후회된다. 마냥 빨리 그 동네에서 빠져나오고만 싶었고 내가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도 그립다. 만약 지금이 꿈이고 그때가 현실이라면 이제 꿈에서 깨고싶을 정도로. 다시 향월이를 만난다면...무슨 얘기를 할까나? 그녀의 술친구가 되어줄 때마다 넌 늘 버릇처럼 이런 말을 했잖아. "빨리 돈 벌어서 서울가고 싶다."
그땐 나도...라고 말하며 한숨을 쉬며 소주잔을 들이켰지만, 이제는 웃으며 이렇게 말 하고싶어.
"서울에도 별거 없다. 여기랑 똑같다. 그래도 서울보다 난 여기가 좋다. 왜? 여기에는 향월이가 있으니까..."
그럼 아마 넌 "참 오빠도 많이 취했구나?" 하겠지...
그럼 난 창밖을 보며 "달이 참 밝다~" 하겠지...
그 순간이 보름달처럼 가득 충만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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