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편의점은 침대다

KEYWORD ONE PAGE <편의점> ㅣ 한공기

by 한공기
427155_315705241826240_873170111_n 복사본.jpg 마음탐정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정작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의 본질은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있습니다. 전 그것을 찾아주고 싶어요.



작가 프로필 ㅣ 한공기

글쓰기 공동체 '파운틴' 운영자

보통사람의 사소한 일상이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송중기처럼 청순한 남자이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이름도 비슷하다.




현대인에게 편의점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볼 때 문득 '침대'가 떠올랐다.
뭣이? 침대라구? 편의점에서 잠이라도 잔단말인가! 따질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편의점이 매우 편한 공간이라는 뜻이다. 예전에 촬영 때문에 지방의 도심 외곽 모텔에서 잠을 잔 적이 있는데 저녁에 맥주를 사려 한참을 편의점을 찾아 헤맨적이 있었다. 한적한 도로변에는 주차장이 넓은 불 꺼진 음식점만 있을 뿐, 슈퍼나 편의점은 보이지 않았다. 듬성듬성 있는 가로등 사이를 걸으며 묘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마치 시간이 멈춰 버린 죽은 도시에 혼자 달랑 남겨진 기분이 들어 '지구가 멸망하기라도 한걸까?' 하는 착각에 빠졌다. 저 멀리 우뚝 서있는 편의점을 발견했을 때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편의점 불빛이 등대 같았다.

다시 도시로 돌아왔을 때는 그 귀한 공간이 피로한 공간으로 인식된다.
도시인의 시간이 물질 중심으로 흘러가서 그런지...집밖을 나오면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상점뿐이다. 음식점, 미장원, 커피숍, 옷집, 술집, 빵집, 교회(내눈에는 교회도 상점으로 인식된다.), 문구점, 스마트폰 대리점 등등등... 모처럼 산책이라도 하려고 지갑을 두고 밖을 나오면 금새 불안해지기 쉽다. 돈이 없으면 어느 공간에도 머물 수 없어 길 위에서 방황하게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잠시라도 걸음을 멈추고 숨이라도 고를 곳은 편의점뿐이다. 햇빛에 하얗게 바랜 편의점 플라스틱 간이 의자에 앉는다. 하지만 별로 쉬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이 빈 캔, 도시락 용기, 라면사리, 담배곽 등이 널부러진 지저분한 간이 테이블을 보며 스트레스를 받는다.또 아무것도 사지않고 계속 앉아있다보면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점원이 눈치를 주기도 한다. 집안이 싫어서 산책을 나왔는데...이런!


집안에 너무도 많은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특히 편의점에서 사온 물건들이 반 이상을 차지한다. 라면, 생수통, 햇반, 과자, 화장지, 레토르트 식품등이 한켠에 쌓여있고 반대편 쓰레기통에는 그것들이 배출한 쓰레기들이 쌓여있다. 정확히 난 그 사이 좁은 공간에서 먹고 싸고 자는 것이다. 집은 휴식공간이 되어주지 못한다. 여유도 없고 정돈도 안된 공간. 이 집의 제 1계급은 컴퓨터와 냉장고, 제 2계급은 편의점에서 사온 음식과 조리기구, 제 3계급은 수천권의 책들, 제4계급은 고양이 미선이, 제5계급은 바로 나. 나는 노예다. 나는 환경이고 나는 매우 친환경적이지 못한 집에 살고있다. 집밖을 나와도 마찮가지이다.


물질에서 도망치고 싶다. 비가오면 빨가벗고 집밖을 나갈 수 있는 곳에서 전원 생활을 하고싶다. 한적한 바닷가 근처, 대나무로 만든 녹색집을 그리워했다. 요가 매트, 탁자, 의자외에 어떤 것도 없는 심플한 집, 바닥에 서걱거리는 모래를 맨발로 밟다가 그대로 신도 신지 않은 채 나갈 수 있는 집. 배가 고프면 바다에 가 조개를 채집해 내가 좋아하는 모래찜 조개구이를 무한리필로 먹고싶더. 바다가 냉장고이고 모래바닥이 조리실이다. 나의 침대는 야자 나무 사이에 있다. 매일 밤 해먹에서 별을 보며 잔다. 난 그제서야 나의 주인이 될 것 같다.


나는 언제부터 물질의 노예가 된 것일까? 자본주의 시스템속에서 태어나 자라왔기에 이미 노예신분이 결정된 것일까? 자본주의는 언제나 인간의 탐욕과 맞물리고, 재화의 양은 언제나 계급을 만들고, 계급은 언제나 차별을 만든다. 인간은 너무나 연약해 계급이 만들어지는 순간, 위로 갈수록 시스템을 공고히 지키려 애쓰게 된다. 그래서 '영원한 수평'은 마치 천국과 같은 유토피아인 것이다. 나는 얼핏 그 유토피아를 본 경험이 있다. 몽골 선교를 갔을 때 평원에서 게르에 사는 사람들과 함께 생활을 했다. 함께 식사를 하고 함께 말을 탔다. 또 함께 시냇물에서 목욕을 했다. 편의점은 눈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다. 편의점이 없어도 그들의 표정은 아이들처럼 마냥 행복해보였다. 만약 내가 그 평원에 편의점 하나를 차리는 순간부터 분명 그들은 도시인처럼 달라질 것이고 변할 것이다.
어쩌면 인류는 편의점 때문에 멸망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편의점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래서 도시에서도 몽골 평원처럼 '영원한 수평'의 발란스를 유지하는 것이 인류의 대안일 것이다. 편의점이 진짜 침대가 되었으면 한다. 정신적으로도 안락함을 주는... 물질문명의 프레임에 가히는 것이 아닌 숨쉴 틈이 있는...돈이 없어도 들러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내가 그런 곳을 만든다면 '평(평평할 평)이(쉬울 이) 점'라도 부르고싶다. '평이점'에 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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