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시간의 즙

FREE STYLE ㅣ 한공기

by 한공기
427155_315705241826240_873170111_n 복사본.jpg 마음탐정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정작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의 본질은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있습니다. 전 그것을 찾아주고 싶어요.



작가 프로필 ㅣ 한공기

글쓰기 공동체 '파운틴' 운영자

보통사람의 사소한 일상이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송중기처럼 청순한 남자이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이름도 비슷하다.




에세이를 기반으로 한 소모임, 인문학 소셜 플랫폼 <파운틴>의 정기모임을 다녀왔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과연 이 모임이 어떤 연유로 만들어졌나? 내가 처음 만들기로 결심한 때가 언제였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일상'의 소중함을 간절히 추구했던 나만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문득 멈춰있는 회중시계의 추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아, 바로 그때였구나...그 순간 모든 것이 멈춰버렸지.


몇년전 매우 친했던 동생이 자살을 했다. 자신이 홀로 사는 집 옥탑방에서 자신이 즐겨하던 줄넘기로 목을 메었다. 연극배우였던 녀석은 체중감량을 위해 매일 줄넘기를 1000개씩 한다고 했다. 녀석이 죽었을 때 나는 치킨을 주 메뉴로 하는 호프집을 경영하고 있었고 주 7일 하루도 빠짐없이 가게를 여는 관계로 심신이 매우 지쳐있었다. 아침 7시인가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고 머리맡에 있는 핸드폰을 더듬거리며 집어서 통화를 했다. "형, OO가 죽었어요." 녀석의 가장 친했던 베스트프렌드로부터 온 전화였다. 난 잠결에 "응, 장례식장이 어디야?" 물었다. 짧은 통화 후 정신이 차렸을 때 난 꿈을 꾼 줄 알았다. 통화기록을 봤을 때 모골이 송연해졌다. 좀 있으면 장을 보러가야하고, 점심에 예약된 치킨 스무 박스도 배달해야 하고, 저녁손님을 맞이할 준비도 해야하는데... 번거로운 일이 생겼다.

녀석의 죽음이 믿어지지않았기 때문에 난 습관적으로 오늘의 일정을 체크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몰아붙이는 고속열차의 기찻길에 작은 돌멩이가 놓여져있었다. 그만 그것에 걸려 열차가 흔들렸지만 바퀴는 금새 우지끈 돌멩이를 부숴버리고 열차는 여전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오후 4시 즈음인가, 바쁜 점심 일정을 끝낸 후에야 장례식장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를 부모님께 부탁하고 평소에 입지 않았던 검정색 정장을 옷장에서 꺼냈다. 검정 넥타이가 없어서 그냥 셔츠의 윗단추를 두개 풀었다. 10분만 걸어도 등에 땀이 차는 무더운 여름이었다. 저녁 시간 즈음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 아는 얼굴들이 보였다. 대학시절 함께 공연도 하고 단편영화도 찍었던 연기과 친구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를 피고있었다. 나도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조심스럽게 왜 녀석이 죽어야만 했는지 물었다. 굉장히 밝고 당찬 친구였는데 그의 자살은 내게 미스테리였다.


오디션도 자꾸 떨어지면서 많이 의기소침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보니 장남으로서 책임감도 무척 컸던 것 같아요. 한동안 우울증으로 병원도 다녔다고 하네요.


녀석이 우울증이라...믿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우울증이라면 내가 전문 아니던가. 그때마다 내게 "형 인생 뭐 별거있어?" 하며 호탕한 목소리로 응원해줬던 친구 아닌가.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섰을 때 무척 놀랐다. 교수님, 동기들, 선후배 등 많은 조문객들이 있었고 그들 모두 목놓아 울고있었다. 영정사진은 언제나 익숙했던 그의 밝게 웃는 모습이었다. 갑자기 허기가 졌다. 너무나 배가 고파서 육개장이나 먹고 가야겠다 생각했지만 정말 아무도 밥을 먹지 않았고 누구도 수발을 들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신발을 신고 그곳을 나오는데 한켠에 멍하니 앉아있는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았다. 주름이 가득하고 쪼그라진 모습이 마치 속이 텅빈 마른 호두껍질 같아 보였다. 나도 모르게 울컥하며 위장으로부터 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입안에 신맛이 맴돌았다.


밤 지하철을 타고 다시 가게로 돌아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생각해보니 일하느라 점심도 먹지 못했다. 그리고 여전히 녀석의 죽음이 그의 장례식장이 믿어지지 않았다. 지금 나는 아직도 꿈을 꾸고있는 것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마침 앞자리에 있던 아가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열차에서 내리고 난 그 빈자리에 앉았다. 앉자마자 엉덩이를 누르는 둔탁한 뭔가가 느껴졌고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 주황색 오렌지가 하나 놓여있었다. 아마도 방금 내린 아가씨가 흘리고 간 것인듯하다. 난 그것을 집다가 의외의 무거움 때문인지 손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인지 그만 놓치고 말았다. 바닥에 떼굴떼굴 굴러가는 오렌지를 잡으려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탄 지하철 칸의 끝까지 쫓아갔다. 주먹만한 둥그런 오렌지. 딱딱하지만 싱그러운 냄새가 났다. 언젠가 지하철을 탔을 때 교복입은 남학생 여학생이 같이 귤을 까먹고 있던 인상이 떠올랐다. 열차 안에 가득했던 귤향기가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다. 난 그들을 매우 동경했던 것 같다. 엄한 부모님 때문에 중고등학교 때 연애에 꿈도 못꿨던 나의 학창시절, 그들의 모습은 잊고싶은, 나의 캄캄하고 깊은 유년의 동굴에 직선으로 새어들어오는 햇살 같았다. 그래서 내가 들고있는 오렌지가 왠지 신성해 보였고 그것을 빨리 먹어서 어두운 과거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고싶었다. 하지만 껍질이 워낙 단단해 손톱이 파고 들지도 못했다. 딴딴하고 둥글둥글한 그 구체는 마치 지구와도 같았다. 먹지도 못하는 오렌지를 두손으로 감싸쥐고 난 멍하니 차창밖을 보았다. 건대역 지상을 통과하고 있는 지하철 밖으로 도시의 불빛들이 아른거리고 그 빛에 수많은 사람들이 비춰보였다. 그들은 마치 작은 개미들 같았고 각자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모습들에서 자연의 섭리를 느꼈다. 그를 마지막으로 봤었던 때가 바로 저편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우린 건대 앞 술집에서 조개구이를 먹었다. 1인 3만원에 무한리필 해주는 조개구이를 내가 사줬었다. 매번 적자이지만 나름 사업을 하는 형으로서 그 정도는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피로에 찌든 얼굴로 하는 말 족족 부정적인 언행을 하는 나에게 그는 짜증을 냈다. "형, 너무 심각해하지마. 난 형보다 더 밑바닥을 치고 살았어. 그래도 언젠가의 성공을 꿈꾸며 희망을 잃지않고있다고!"

그는 의기소침 해질 때마다 스타가 되어있는 자신을 상상한다고 했다. 영화 올드보이에 나오는 유지태의 집(펜트하우스)에서 금색 실크 나이트 가운을 입고 와인을 마시며 도시를 내려다보는 상상...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며 수상소감을 말하는 상상...고급 외제 스포츠카를 몰고 옆자리에는 매우 아름다운 유명 여배우가 타고있는 상상...난 그의 말을 들으며 나만의 성공상상을 떠올렸다. 나 역시도 사업으로 성공하기보다 영화감독이 되서 헐리웃에서 영화를 찍고싶었다. 비버리힐즈에 있는 저택에서 수영을 하다가 발코니에서금발의 모델과 함께 브런치를 먹는 상상을 했다. 틱틱 소리를 내며 타고있는 조개 속에서 진주라도 찾고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이게 뭐지? 녀석은 그 꿈을 이루기도 전에 사라져버렸고 나의 꿈도 그와 함께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날 지하철에서 주웠던 오렌지를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 둔탁한 둥그스러움이 아직도 손 안에서 묵직하게 느껴진다.


그 이후로 시간이 많이 지났다. 난 여전히 그의 죽음이 믿겨지지 않는다. 난 여전히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시간은 오렌지처럼 떼굴떼굴 굴러가고 있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물리적인 시간을 '크로노스'라고 했다. 크로노스라는 시간의 수레바퀴는 누구도 멈출 수가 없다. 가끔은 그 무거운 바퀴에 짓눌려져 압사당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오렌지의 무게에 깔려 내 육신의 즙이 빠져나가는 상상을 했다. 너무도 그 오렌지를 가르고 싶지만 오렌지는 너무도 단단하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때', 적절한 타이밍의 시간 개념을 '카이로스'라고 했다. 어쩌면 낸 그 때를 계속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기다리다...라는 생각 자체가 모순인 듯 하다. 언젠가 먼 미래의 성공을 기다리는 마음. 그것은 망상일지 모른다. 시간은 언제나 현재에 머물고 있으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먼 미래의 공상이 아니다. 지금 당장 이 오렌지를 쪼개는 행위, 즉 카이로스적인 시간 개념을 가지는 것이다.


오렌지를 쪼개려면 칼이 필요하다. 둔탁하지않은 아주 날선 칼. 그래서 매일 칼을 갈아야 한다. 내게 칼을 가는 행위는 무엇일까? 글쓰는 일이 주업인 나는 글을 쓰는 것 뿐이다. 나의 날선 글이 오렌지를 쪼개고 그 안의 싱그러운 열매가 세상에 보여질 것이다. 그 향기를 모두가 맡을 수 있으며 모두가 열매의 맛을 느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칼이 바빡 서야하다. 모든 것은 결국 서야 쓸모가 있다. 연필심도 서야하고, 활촉도 서야하고, 바늘도 서야하고, 심지어 남자의 성기마저도...


나는 우뚝 서야한다. 그래야 그것에 맞는 적절한 쓸모의 때가 찾아온다. 그것이 카이로스 아니겠는가?


만약 언젠가 꿈에서 녀석을 만나면 그런 얘기를 하고싶다.

" 사실 너가 죽었을 때를 상상해 보았어. 너의 모습은 마치 멈춰버린 회중시계의 추처럼 수직으로 축 늘어져 있었지. 그때부터 무척 빠르게만 돌진해왔던 나의 시간이 멈춘 것 같구나. 너가 죽은 얼마 후 난 엄청난 손해를 보며 가게를 팔았어. 그 삶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 그래, 네 덕에 열차는 멈춰버렸지. 이제 난 열차에서 내려서 피크닉을 하고있는 기분이야. 우리가 함께 꿈꾸었던 그 보물섬도 믿지 않기로 했지. 그래 보물섬은 애초에 없었어. 그래... 난 이제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장이 아닐까 생각해. 누구도 성공을 보장할 수 없잖아. 평생 자신의 성공을 못보고 죽은 사람들도 많아. 고흐도 그랬고, 슈베르트도 그랬지. 하지만 그들은 매일 성장했고 그들의 나무에서 열린 열매를 지금 우리가 먹고 있지. 당장 성공을 못해도 어제보다 더 나아진 성장을 하면, 나름 행복한거야. 그게 인간의 삶이야. 그래서 성공의 망상을 버리고 매일 성장하면서 그냥 사는거야. 그게 실존이야."


글을 쓰는 것은 나의 실존을 증명하는 일이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아도... 이글이 아무런 경제적 가치를 이뤄내지 못한다 해도...내게는 나름 의미있는 일이다. 나는 글을 통해 알수있다. 내가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그것으로 완벽하다. 정말 그것으로 완벽한 것이다. 그리고 아주 우연히 누군가 내 글을 읽었을 때, 조금이나마 상큼한 향과 시간의 열매 즙을 맛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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