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아낌없이 남김없이

FREE STYLE ㅣ 한공기

by 한공기
427155_315705241826240_873170111_n 복사본.jpg 마음탐정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정작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의 본질은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있습니다. 전 그것을 찾아주고 싶어요.



작가 프로필 ㅣ 한공기

글쓰기 공동체 '파운틴' 운영자

보통사람의 사소한 일상이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송중기처럼 청순한 남자이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이름도 비슷하다.




내가 소속된 에세이 소모임 <파운틴>의 이달 주제는 '썸'이다.

썸탄지 너무 오래되어 정말 쓸 것 하나 없는 내게 무척 고역이다. 글을 올리지 않으면 강퇴를 당해서 피할 수도 없다. 눈을 감고 지나간 연애의 명장면들을 추억의 영사기로 돌려본다. 이미 끝나버린 나의 멜로영화는 다시 보기 싫어진다. 행여 당시의 행복한 순간이 펼쳐지면 숨이 막히고 가슴이 막 에려온다. 재빨리 영사기를 끄고 눈을 뜬다. 멍하니 방 천장을 보며 혼잣말로 속삭인다.


" 지나간 연애를 반추하는 것은 참 어리석은 일이다."


솔직히 사랑을 믿지 않는다. 인간은 한없이 연약한 존재고 우리의 썸들은 모두 욕망이라는 토양위에 자라났던 잡풀과도 같은 것이다. 누군 그걸 숭고한 꽃이라고 믿고 애써 아름답게 가꾸려 노력했지만, 꽃을 꽃일 뿐, 적당한 해와 적당한 물과 적당한 산소가 없으면 이내 죽어버리고. 결국 우린 깨닫는다. 꽃은 피어나기보다 살아남기가 더 어려운 것이구나. 꽃을 가꾸는 그 지극한 마음이 사랑이고 꽃이 나오는 과정은 그냥 썸이다. 썸...SOME. 별일. 우연으로 발생한 순간.


자기 자신에 대해 좀 더 냉철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내가 믿었던 사랑이 진짜였는지 가짜였는지 대번에 안다. 나의 욕망을 상대에게 투영하고 그것을 쫓지않았는지... 그 사람을 사랑한게 아니라 그 사람을 사랑하는 기분을 사랑한건 아닌지... 우린 너무도 쉽게 '사랑' 을 말한다. 사랑은 그렇게 간단한 것도 흔한 것도 하찮은 것도 아니다. 너무나 위대하고 숭고해서 감히 인간은 할 수 조차 없는 걸지도 모른다. 예전 어떤 모임에서 대학생들과 사랑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사랑이 뭘까요?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청년들은 '많이 좋아하는 것.'이라는 정의를 내렸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것. 아이스크림을 아주 많이 좋아하는 것. 그 차이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필요하다고 한다. 난 아이스크림을 사랑해...하면 아이스크림에 홀릭된...상태를 말한다.


사랑에 대해 논하려면 적어도 지독하게 고독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홀로, 외롭게, Alone, Lonely...신기하게도 혼자 처절하게 고독을 느끼는 감정상태에 '로'라는 음이 공통적으로 붙는다. 누군가 내게 '요즘 어떻게 지내?' 카톡을 보내면 짧게 '로'라고 답장하면 알아들을려나? 외로움-불안함-적적함- 무료함-두려움 을 지나 죽음으로의 도피를 꿈꾸며 감정이 한없이 심연으로 가라앉으며 캄캄한 세상에서 숨만쉬고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의 실존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내가 지금까지 너무 환경에 의존하고 살았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이제야 스스로 서는 법을 배우게 된다. 사람은 그렇게 강해지는 것이다.


이번 주 김도인 명상수업, 리프레쉬 마인드의 주제는 '사랑'이었다. 김도인님은 사랑이 주역으로 '불'로 표현되며 '암소를 기르는 마음으로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했다. 그리고 30분간 '사랑'에 관해 명상타임(인사이드 무비)을 가졌다. 내 추억속에서 부모님의 사랑, 친구와의 사랑, 연인과의 사랑 모두 검색해 보았지만 그저 파편화된 기억과 대상이 스쳐지나갔다. 동시에 진정 사랑이었을까? 의심이 들었고 그저 우리가 어떤 인연으로 스쳐지나가면서 자신의 감정을 대입했고 상황에 맞는 결과값들이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부모님의 사랑은 다른 사랑보다 수준이 높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부모님께 상처받은 순간들이 떠올라 그들이 나를 소유하려 했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건 진짜 사랑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눈을 떴을 때 이제 겨우 10분이 지났고 눈을 감고 각자 명상하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난 또 소외감을 갖게 되었다.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간절하게 '사랑' 그 자체에 몰입했다. 깊은 명상에 들어가면 빛을 볼 수도 있다는 도인님의 말이 떠오르며 오늘 혹시 볼수도 있지않을까 기대감에 설레기도 했다.


문득 떠오른 것는 '두부'였다.

언젠가부터 두부를 볼 때마다 내가 사랑받고 있는 기분이 든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두부에 관한 두가지 추억이 있다.

첫번째는 군대시절 취사병이었는데 혹한기 훈련 때 취사사고가 났다. 예전부터 문제가 있던 취사기기가 강추위에 완전 고장나 버린 것이다. 점심시간은 다가오고 장병들을 먹일 조리된 음식이 없고, 그 난감한 상황에서 떠오른 것은 두부였다. 우리 취사장에 두부를 조달하는 두부공장이 훈련지역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재빨리 두부공장 사장님께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했다. 항상 흰 수건을 머리에 감싸고 얼굴의 반이 턱수염으로 뒤덮인, 산적같은 사장님은 남자답게 "그려? 그럼 빨리 기계 돌려야겠네. 어여 와~"했고 나와 수송병은 두부공장으로 날라갔다.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하얀 두부들이 내겐 금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결국 훈련병들은 점심에 두부 한모씩을 먹으며 고단함과 허기를 채웠다. 그때 무의식적으로 두부는 '사랑'이라고 느꼈다.


제대 후 직장에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두부를 잘 안먹게 되었다. 두부는 왠지 너무 심심한 음식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잊고있었던 두부를 다시 만나게 된 계기는 한창 다니던 회사가 망해 실업자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동안 모아놓은 돈도 다 쓰고 카드빚도 많아 정말 쌀이 다 떨어진 상황이었다. 예전에 사 놓았던... 라면도 빵도 바나나도 씨리얼도 냉동만두도 비스킷도 모두 떨어졌을 때 난 무슨 재난영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었다. 하루종일 굶다가 안되겠다 싶어 책상서랍 모두 뒤져봤더니 구석에 처박힌 100원짜리 500원짜리 동전이 보였다. 그렇게 모은 돈이 고작 1100원.(50원 짜리 10원짜리도 포함)


난 그돈을 가지고 집 근처의 시장에 갔다. 1100원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뒤지다가 군대시절 보았던 그 사랑. 흰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새하얀 두부를 발견하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물었다.

"아줌마 한모에 얼마예요?"

"1000원."


검정 봉다리에 담긴 뜨끈뜨끈한 두부가 너무 따듯해서 난 집까지 두 손으로 감싸안고 왔다. 그것을 꺼내 흰색 접시위에 놓았다.마침 김치도 떨어지고 간장도 떨어져서 조그만 1인용 나무 밥상위에는 오직 두부만이 있었다. 난 두부를 한없이 바라보았다.

정육면체 모양의 새하얗고 순결한 물질. 값싸고 영양가 만점. 심지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또 동물의 사체를 먹을 때 생기는 일말의 죄책감도 들지 않는다. 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혹시 두부는 신이 아닐까? 두부를 믿어볼까?'


이 두부를 어떻게 먹을까 고민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두부를 손가락으로 꾹 눌러보았다. 쑤욱하고 손가락이 들어갔는데 그 안이 무척이나 보드랍고 따듯했다. 모서리를 조금 떼서 입안에 넣었다. 맹맛에 은은한 고소함이 느껴졌다. 그 식감에 왠지 힐링되는 기분이 들었다. 두부에 파묻혀 죽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유언장에 "내 무덤은 두부로 만들어주세요."라고 꼭 적어야겠다.

결국 난 두부 한 모를 3등분해서 세끼를 채웠다.


깊은 명상에 들어갔을 때 난 두부공장 아들이 되어있었다.

장작으로 불을 때우고 커다란 솥에다가 콩을 삶았다.

아주 오랜시간동안 정성스럽게 저어주면서 불 앞을 지켰다.

하얀색 천으로 물을 거르고 또 몇번이고 불순물을 걸러주며

아주 순결한 두부를 만들어

두부판에 집어넣고 식혔다.

완성된 두부판을 정확한 규격으로 정성스럽게 잘랐다.

난 그 중 한모를 꺼내어 흰 천이 바닥에 깔린 대나무 도시락통에 담았다.

그리고 난 그통을 자전거 앞 바구니에 싣고 어딘가로 향했다.

그 마을에는 내가 좋아하는 한 여인이 있다.

그녀에게 방금 막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두부를 전하고 싶었다.

드디어 그녀의 집 앞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세우고 도시락통을 들고 현관문 앞에 섰다.

마침 현관문이 열려있었다.

그 문을 열고 문턱을 넘어서는데...


난 뭔가 밝은 빛을 보았다.

그 빛이 내 몸을 감쌌는데

무척 뜨거웠다.

그 뜨거움은 금새 따듯함으로 변하고

마치 두부속에 있는 것처럼 포근했다.

그 순간은 무척 잠깐이었다.

빛이 점점 사라지면서

눈앞에 또렷한 형상이 보이는데


그 집안은 상가집이었다.

검정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울고있었다.

난 놀라 누가 죽은 것일까? 그녀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라도 한건가? 생각했고

재빨리 그녀를 찾았다.


마당을 지나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소파에 앉아 울고있는 한 여인이 보였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을 때 난 깜짝 놀랐다.

그녀는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할머니였다.

그녀의 왼편과 오른 편의 아저씨 아주머니는 무척 그녀와 닮아 있었다.

난 그녀에게 두부를 건냈다.

그리고 문열린 방안에 영정사진을 보았다.

사진 속의 할아버지는 다름 아닌 바로 나였다.

내가 들고있던 도시락통을 다시 봤을 때

그것은 나의 유골함이었다.


땡~~~(명상을 끝내는 신호)

눈을 떴을 때 내가 김도인님 명상센터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도 생생한 꿈이라 시간감각, 공간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순간 나는 깨달았다.

사랑은 태우는 것이구나.

그렇게 태웠을때야 내가 타인에게 빛이 될 수 있는 것이구나.

콩이 자기의 온몸을 다 내던져서 두부가 되듯이

육체가 자기의 온몸을 다 태워서 뼈가루가 되듯이

나를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태웠을 때야 비로소 사랑이 되는구나.


명상이 끝난 후 자기체험 발표 때 난 내가 보았던 것을 말했다.

그리고 이런 말도 했다.


" 제가 원래 독신주의자인데... 이번 경험을 통해서 아무래도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자 도인님이 매우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아 우리 독신그룹에서 한명이 이탈하셨습니다. 그냥 두부 믿으시고 다시 독신그룹으로 들어오시길..."


그말에 모두가 빵터졌고 기분이 좋아졌다.

무엇보다 '명상'이 그저 호흡과 릴랙스된 신체로 마음이 차분해지는 별거 아닌 과정이라고 생각했는데

깊은 무의식 속에서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뭔가를 보고 깨달음을 얻는다니...무척 신기했다.


1시가 좀 넘어 수업을 마치고 지인과의 약속장소로 가다가 왠지 두부가 먹고 싶어졌다. 정말 신기하게도 우리가 만나기로 한 스타벅스 바로 맞은편에 두부집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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