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화양연화'에 대한 단상

KEYWORD ONE PAGE <썸> ㅣ 최미애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1-25 오후 2.18.58.png 직장인 명상가
명상을 하면서 '관찰'이 취미가 되었어요.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촉감을 느끼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파악하는 관찰 작업을 수행하고, 그렇게 관찰하고 있는 자신을 순간 순간 깨달을 수 있도록 뭔가를 좀 써봐야 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작가 프로필 ㅣ 최미애

IT 9년차 직장인.

불교와 명상에 관심이 많아 경전을 읽으며 '집중'과 '관찰' 수행을 하고있다.

자신의 특기를 이용해 세상에 관한 '관찰일기'를 쓰려한다.




117249_S19_105144.jpg


‘썸’ 이라는 단어가 너무 가볍고 얕아, ‘썸’ 이라고 밖에는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한 관계조차도 너무 가볍고 얕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썸’ 이라는 단어 대신에 ‘미완’ 이라고 부르고 싶다. 사랑에 완성이 어떻게 존재 하겠냐 마는, 낭만적 사랑의 사회에 사는 우리들은 대체로 그 완성형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어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함에 있어 어떠한 장애요소가 없는 가운데 서로가 사랑하는 사이임을 선언하고 타인 또는 국가 기관에서 합당한 지지를 얻는 것, 다시 말해 결혼이나 두 사람이 사귄다는 공표 같은 것 말이다. 어째서 지극히 개인적인 관계에 대해 타인의 지지가 필요한 지 모르겠으나,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두 사람이 바람을 피고 있거나 불륜 관계인 경우라면 쉽게 그들의 사랑이 순수한 것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완성형의 사랑은 그다지 세간의 관심을 사지 못한다. 이를테면 결혼한 어떤 커플이 정말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은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 신부 정도일 것이다. 오히려 결혼을 했거나 정식으로 사귀는 사이인 – 타인의 지지를 받는 관계 – 경우 행복한 것이 의무가 되어, 결혼 후에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일부러 드러내는 것은 불필요한 자랑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보통의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갖는 주제는 오히려 미완의 사랑이다. 매일 가는 편의점의 알바생인 그녀가 유독 내게는 웃으며 한 번 정도 더 말을 거는 것 같다 거나, 나에게 관심이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은 회사 선배가 점심에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알아서 주문해 줬다 던지, 그런 이야기에 사람들은 훨씬 더 공감을 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사랑한다고 말하기에는 뭔가 미숙한 감정, 혹은 사랑한다고 말하고 나면 오히려 끝나버릴 관계, 그런 미완의시간들이 실제 사랑하고 있는 기간 보다 훨씬 더 길고 많은 게 아닐까.


영화 <화양연화>는 아마 그런 미완의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묵직한 종류일 것이다. 서로의 배우자가 불륜 관계임을 확인한 이후, 두 사람의 미묘한 감정에 대해 영화는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과 애수를 담아 그려 낸다.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며 어떤 선을 넘지 않으려는 결의는 장만옥의 몸에 딱 달라 붙는 치파오와 – 흡사 숨 쉬는 것조차 구속받는 듯이 보이는 - 양조위가 시종일관 고수하는 양복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한 방에서 밤을 지새우고 호텔 방으로 찾아가도 직접적인 사랑의 언어도 스킨십도 없던 그들의 시간이 어떻게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런 농밀한 미완의 사랑을 겪어본 사람들, 그리고 그 안타까움을 오랜 시간 숙성 시킨 사람들 만이 마음 깊이 공감할 수 있으리라. 그런 아쉬움의 찰나만 겪었던 내게도, 쓸쓸하게 남은 앙코르와트 유적의 구멍에 대고 그 마음을 조용히 묻는 양조위의 뒷모습과, 그 동그란 눈에 그득히 눈물을 담고 창 밖을 그저 바라보던 장만옥의 얼굴은 오래 마음에 남는다.


영화니까 가능한 아름다움일 뿐, 이들의 관계도 그저 불륜에 지나지 않는다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런 미묘한 감정에 놓인 관계들을 모두 긍정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흉흉하니까. 그럼에도 그 미완의 마음이 빚어내는 순간들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반짝인다는 것을 알기에, 조금 고개를 끄덕여 본다. 세상에는 행복한 사랑 이야기보다 애잔한 미완의 이야기가 훨씬 보편적이니까.


최미애님의 다른 글을 읽고싶다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낌없이 남김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