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까베세오

공통주제 <썸> ㅣ 화이

by 한공기
화이 프로필.jpg 땅고댄서


어느 날 미드를 보다가 문득, 우리나라도 땅고를 매개로 한 드라마가 있으면 많은 이들에게 땅고라는 춤을 전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에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작가 프로필 ㅣ 화이

아르헨티나 땅고 댄서이자 땅고 아카데미 '엘 불린' 대표

도서 '탱고레슨' 저자




* 까베세오(Cabeceo) : 밀롱가(땅고를 추는 장소)에서 춤을 청하는 한 방법. 직접 다가가 춤을 청하는 게 아니라 멀리서 눈을 먼저 마주치고 남자가 춤을 추자는 의사를 고개를 까딱이는 제스처로 전달하고 여자가 고개를 끄덕여 승낙한다. 까베세오는 '고개를 까딱이다' '꾸벅거리다' 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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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남자는 입술을 핥았다. 등받이에 기대 앉아 한 팔을 테이블 위에 얹어놓은 느긋한 모습이었지만, 기대감에 가득 찬 눈동자는 연신 바쁘게 움직였다. 옆자리의 남자가 벌떡 일어나 앞으로 걸어 나가는 것을 힐끔 쳐다보고는 반사적으로 주먹을 쥐었다. 음악이 바뀐 지 10초도 되지 않았는데 이미 서너 커플들이 플로어에 자리를 잡았다.그의 시선이 마침내 앞에 앉은 매력적인 한 여성에게 가서 멈췄다. 그녀는 그가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듯 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알아채 주기를 바라며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누군가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어깨에 힘이 풀렸다. 의자에 깊게 눌러앉으며 그는 화장실 쪽을 힐끔 보았다. 그의 얼굴에 체념의 빛이 언뜻 스쳤다. 그는 테이블 위에 있던 칵테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플로어 쪽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 그를 실망시켰던 그녀가 아직도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빛이 환해졌다. 그는 누구에게 들킬세라 조심스럽게 그녀를 주시했다. 그녀는 여전히 그를 보지 않았다. 그는 앉음새를 고쳤다. 그녀의 나른한 시선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흘렀다. 한순간 그를 본 것도 같았지만, 그녀의 시선은 그를 지나쳐갔다. 그는 돌아와 라고 속으로 외쳤다. 그는 팔짱을 낀 채 한 손으로 턱수염을 초조하게 잡아 뜯었다. 그러자 그의 외침을 듣기라도 한 듯이 그녀의 시선이 돌아와 그에게서 멈췄다. 그녀가 그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잠시 당황했다. 곧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향해 고개를 까닥하면서 이런 자신이 우스워서 그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환한 미소로 응답해 왔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다가듬고 그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녀가 그런 그를 바라보며 말없이 용기를 북돋워 주고 있었다.


여자

음악이 바뀌자 여자는 등을 꼿꼿이 세우고 앉았다.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각도를 만들기 위해 한쪽 다리를 꼬면서 살짝 몸을 틀었다. 그녀는 고개를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도도하고 무심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눈을 깜박이는 순간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여 주변 상황을 예민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문득 강렬한 시선을 느끼고 그녀는 고개를 살짝 틀었다. 누군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로소 얼굴 근육에 변화가 생기며 반가운 표정으로 목례하듯 가볍게 끄덕였지만,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시선은 별 반응이 없었다. 의아한 눈빛으로 잠시 바라보고 있자니 그 남자가 일어나서 앞으로 걸어 나온다. 하지만 그녀가 아니라 그녀 옆의 다른 여자에게 향한다. 그녀는 얼굴이 굳어졌지만 애써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하고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녀는 자세를 고쳐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괴고 한 손으로 귀걸이를 만지작거렸다.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전보다 더 관능적인 표정을 하고 눈꼬리로 앞에 앉아 있는 남자들을 훑었다. 시선이 지나가다 문득 멈추고 오던 길을 거슬러 갔다. 양복을 잘 차려입은 신사가 오른손으로 턱수염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그녀를 향한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고개를 까딱하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끄덕였다. 그가 일어서서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시선은 그녀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도 그가 다가오는 것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그녀 앞에 와서 손을 내민다.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그가 플로어로 그녀를 이끌었다. 그와 마주선 그녀는 말없이 그의 품에 몸을 맡긴다. 그의 오른손이 그녀의 등을 부드럽지만 강하게 감싸 안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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