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촉새 이야기1

FREE STYLE ㅣ 신정훈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12-16 오후 3.49.57.png 호주 멜번의 청소부
저는 글을 막 씁니다. 브레인스토밍하듯 손가락 가는대로 놔두는 식입니다.


작가 프로필 ㅣ 신정훈

현상을 쿨하게 응시하고 그것에 담긴 의미를 즉흥적인 글쓰기 과정으로 풀어내려 한다.




이야기 고등학교 2학년 6반


"야 이제부터 조용히들 해라. 나 잔다."


6반 짱인 김일진은 박촉새와 함께 매점에서 라면 한 그릇을 먹고 교실로 돌아온 참이었다. 일진은 싸움을 잘했기 때문에 아무도 쉽게 건드리지 못 하는 존재였다. 그의 말 한마디면 반의 모두가 영향을 받았다. 괜히 성질 건드렸다간 못 볼 꼴 봐야했다. 일진이는 전날 어울리는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학교에 왔다. 숙취로 기분이 별로였기 때문에, 오늘은 더더욱 반 아이들이 조심했다.


일진이의 이야기를 하자면, 일진이는 원래 착한 아이었다. 상냥하고 자신을 믿어주는 부모님 밑에서 귀하게 자랐다. 부모님은 두 분 다 선생님으로 자식 교육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 그러나 중학교 3학년 때, 불량 학생들과 친해진 것을 계기로 학교의 폭군이 되었다. 중학교 시절까지는 활발하고 머리가 좋은 아이었다. 중학교 3학년 무렵 훌쩍 덩치가 커졌다. 또래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 큰 키로 중학교 졸업할 무렵엔 183센치가 됐다. 선생님들도 일진이에게 함부로 다루지 못 했다. 결국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일진이는 불량서클의 리더가 됐다. 학교 성적은 다소 떨어졌지만, 여전히 상위권이었고, 가끔 외박을 하긴 하지만 집에서는 착하고 예절 바른 아들이다.

김일진의 옆에 앉은 삐딱한 자세의 친구의 이름은 박촉새다. 촉새는 전형적으로 입만 산 양아치였다. 일진이의 수발을 들으며 그의 힘을 등에 업고 학급 친구들을 괴롭히는 유형이었다. 사실 반 친구들은 일진이 보다 촉새에게 더 시달렸다. 일진이는 촉새를 좋아했고, 되도록 편을 들어주는 편이었다. 촉새가 작정하고 누군가의 험담을 시작하면 일진이는 그 친구에게 경고를 했다. 촉새는 교복 상의 단추를 모두 풀고 그 안에 티셔츠를 입었다. 스투시 로고가 한 가운데 박힌 티셔츠로 멋을 부렸다. 일진이의 잠을 깨우지 않도록 노력하는 한편, 괴롭힐 아이를 찾았다.


아이들은 소중한 점심시간에 찬물을 끼얹은 일진이가 맘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도리 없이 모두 자신의 일을 했다. 교탁 앞에 앉은 최이등은 4교시 수업을 예습했다. 이등은 전교 일등이자 반 일등인 조용한에 가려진 만년 이등이었다. 용한이는 무척이나 조용했고, 학교에서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는 친구였다. 수업 시간엔 수업에 집중하고, 점심 시간엔 소설을 읽거나 낮잠을 잤다. 용한을 넘기 위해 이등은 쉬는 시간, 점심시간 가리지 않고 열심히 공부를 했다. 이등의 목표는 학교 졸업 전까지 용한이를 이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의의 라이벌로 자신에게 긴장감을 불어넣어 주는 용한이의 존재를 고마워했다. 이대로 가면 용한이도 자신도 서울대 입학이 가능할 것이다.


맨 뒷편에서 일진이가 잠을 자는 동안 점심시간은 흘러갔다. 떠들고 싶은 아이들은 복도로 나가 이야기를 나눴고, 몇 명은 교실에 남아 낮잠을 잤다. 교실에서 멀쩡히 앉아 있는 학생은 세 명 뿐이었다. 촉새와 이등, 용한이었다. 용한이는 점심을 먹고 교실로 돌아와 소설을 읽고 있었다. 아베 고보의 모래의 여자란 책이었는데, 벌써 반 페이지가 넘어갔다. 용한이는 어릴 적에 속독 학원을 다녀 책 읽는 속도가 빨랐다. 한 시간이면 일반 소설책 한권을 읽었고, 이해가 필요한 비문학 서적의 경우 두시간 안팍으로 읽었다. 남은 점심시간은 20분이었고, 용한이는 집중해서 책을 끝내고 싶었다. 수업이 시작되면 흐름이 끊기기 때문이다. 주변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는 편은 아니지만, 조용한 점심시간은 환영할만 했다.


촉새는 스마트폰을 보는 게 지겨워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었다. 그리고 반 아이들과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주변을 살폈다. 학급 친구들은 잠을 자거나 교실 밖으로 나갔다. 교실에서 깨어있는 사람은 자신을 빼곤 두 명 뿐이었는데, 그마저도 이등이가 화장실을 간다고 한 명이 나갔다. 결국 용한과 촉새만이 눈을 뜨고 있는 학생이었다. 촉새는 평소에 용한이를 괴롭히지 않았다. 평범한 체구에 성격도 특별하지 않은 아이었는데, 뭔가 다가가기 어려운 게 있었다. 괴롭히지 않을 뿐더러 말을 나눈 적이 별로 없었다. 촉새는 일진이가 깨지 않게 조용히 일어나 용한의 곁으로 갔다. 이 사소한 행동이 자신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그 누구도 몰랐다.


"너 뭐 읽냐?"

촉새는 용한의 책을 뺏어들고 휙 훑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일본 소설이었다. 용한이는 갑자기 흐름이 끊겨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용한의 아버지는 용한에게 언제나 위험한 일에선 한 걸음 떨어져 있길 요구했다. 자신같은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용한도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존중했다. 가르침에 맞게 착실히 살았다. 이번에도 문제를 일으키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불편한 감정을 숨기고 대답했다.


"모래의 여자란 책인데, 60년대에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이야. 혹시 읽어보고 싶으면 내가 읽은 다음에 빌려줄게."


촉새는 자신의 도발에 아무렇지 않게 반응하는 용한에게 놀랐다. 어떤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고, 자신에게 빌려준다고까지 말했다. 공부에 관심도 없고, 책과 거리가 먼 자신이어서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용한에게 묘한 경외심을 갖고 있었다. 평소에 대화를 잘 나누지 않고 어색하기 때문에 오버해서 말을 걸었다. 그런 용한이 기분 나쁜 내색없이 자신에게 책을 권해줘서 기분이 좋았다.


"그래 그럼 다 보고 나 빌려줘. 책 여깄다."


용한은 평소의 촉새답지 않은 반응이 흥미로웠다. 선뜻 자신의 제안에 수긍하고 책을 돌려줬다. 다만 수업시간에 책을 계속 읽을 수 없기 때문에 다시 독서에 집중했다. 촉새는 어색하게 자리로 돌아와 다시 핸드폰을 꺼냈다. 이등과 다른 학생들이 교실로 돌아오고 점심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다행히 용한이는 종 치기 직전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다.


4교시 문학이 시작됐다. 성격 까칠하기로 유명한 미친개 선생님이 들어왔다. 이번 시간 만큼은 일진이도 마음대로 행동하지 못 했다. 일진이는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편이긴 했지만, 피곤하면 눈치보지 않고 잠을 자는 편이었다. 미친개 선생은 목차 3-1 문학과 삶, 자아성찰과 타자 이해의 첫장을 펴게 시켰다. 오늘 날짜인 27번 학생을 세우고 본문을 읽게 했다. 본문이 끝나고 심화 질문을 던졌다.


"그래 좋은 내용이다. 우리는 모두 자아성찰하는 과정에 있지. 너희도 그렇고 나도 마찬가지다. 그럼 우린 자아성찰을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할까?. 대답할 사람?"


평소 나서길 좋아하지 않지만 용한은 문학 시간 만큼은 자기 주장을 펼쳤다. 유일하게 손을 들고 선생님의 지목을 받았다. 미친개는 용한이 어려웠다. 용한은 자기 생각을 다 드러내는 편이 아닌데, 또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해 가끔씩 자신을 당황시켰다. 아끼는 제자인 한편, 불편한 제자였다. 용한 앞에서는 일방적 수업이 아닌 동료와의 토론이 되어갔다.


"저는 스스로를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여기면서도, 자신에 대해 알기를 꺼려합니다. 자의식 과잉같아 불편하고 낯간지러운 이유도 있지만, 생각하는 것 자체로 나의 한계를 만들어두는 게 아닌가 무섭기도 하고요. 그런데 소설을 읽으면서 우회적으로 생각할 기회를 얻는 것 같습니다. 작가의 메세지는 직접적이지 않아 맥락을 파악해야 하는 반면, 제약이 없어 자연스럽게 나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그래서 저는 문학 작품을 읽는 게 좋은 자아 성찰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좋은 방법이다. 다른 사람?"


미친개 선생은 용한이 부담스러운 질문을 하지 않을까 걱정돼 바로 다음 발표자를 찾았다. 일전엔 까다로운 질문을 던져, 학생들 앞에서 유창히 대답하지 못 한 경험이 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반면, 촉새는 용한의 대답을 듣고 감탄했다. 독서라는 단순한 대답을 길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대단했다. 일진이도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용한에겐 이르지 못 했다. 용한과 친해지고 싶었다. 이등이는 역시라고 말하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용한은 장자철학을 인용해 질문하고 싶었으나 선생님이 빠르게 말을 돌리는 바람에 궁금한 점을 입 밖으로 내지 못 했다. 얼마 전 읽은 장자는 그 내용뿐 아니라 형식면에서도 자아성찰을 자극시켰다. 장자는 결코 주장을 논리적으로 전개하지 않았다. 비유와 우화로써 표현했다. 장자의 철학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장자의 의도가 바로 그것이 아닐까 궁금했다. 단순히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이게 하지 않고 사유하도록 만드는 것이 조금 전의 대답과 맥을 같이 하는 것 같았다. 가끔 이런 질문 탓에 재수없는 학생으로 보였을 거라 믿었다. 남에게 말은 안 했지만,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자신의 본질, 인간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좋았다. 그 생각을 우회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소설이란 장르에 매력을 느꼈다.


문학 시간이 끝나고 용한은 촉새에게 다가왔다. 촉새의 옆 자리인 일진은 평소에 말 한번 섞지 않은 용한이 자기 쪽으로 걸어와 뜬금없었다. 학급 친구들을 자기 맘대로 통제하는 경향은 있지만, 때리거나 돈을 뺏거나 하는 등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는 방해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용한이나 이등에겐 더욱 말을 아꼈다. 자리 앞으로 온 용한은 촉새에게 책을 건넸다. 자기가 아닌 촉새에게 볼 일이 있었던 것이다.


"여기있어. 아직 대여 기간 많이 남았으니까 천천히 봐도 돼."

"어 그럴거야 존나 천천히 읽고 줘야지"


촉새는 일진 옆이고, 친구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부담스러운 눈빛에 비웃음을 짓고 쎈척을 하며 책을 받았다. 일진은 의외라는 듯 촉새를 쳐다봤다. 전교에서 맨 뒤에 놀 정도로 공부와 담을 쌓은 촉새가 책을 빌리다니 별 일이었다. 촉새는 조금 미안했지만, 기쁜 마음으로 책을 받아 들었다. 어색함에 헛기침을 몇 번 하고, 두 발을 책상 위로 올렸다. 장난스럽게 책 페이지를 넘겼다. 그러다 어느새 집중하기 시작했다. 일진은 기분이 안 좋았다. 자신의 꼬봉같이 구는 촉새와의 관계에 익숙해졌다고 해도 그는 가장 친한 친구였다. 책에 취미를 들이려고 몇 번이나 노력했는데, 다 수포였다. 그런데 용한이의 책은 받는다?


촉새는 제대로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고전이라 불리는 이 소설은 자신의 흥미를 잡아끌었다. 온 정신이 소설책에 쏠렸다. 마치 자신도 소설 속 장면에 들어간 듯한 착각이 들었다. 사막에서 주인공과 함께 벌레를 찾아 헤매는 길이다. 가장 먼 사이라고 느꼈던 책이 이리도 흥미로울 줄 몰랐다. 수업 중간중간, 야간 자율학습 시간 전부를 써서 책 한권을 다 읽었다. 반 친구들과 일진은 촉새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그러나 아무도 촉새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일진은 기분이 별로긴 했지만, 모처럼 촉새가 집중하는데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야간 자율학습이 거의 끝나가는 무렵, 교실은 어수선했다. 일진은 옆에서 떠드는 촉새가 조용해 심심했다. 선생님 몰래 스마트폰으로 예능을 보고, 친구들과 술 약속을 잡았다. 공부도 죄책감 벗어날 정도는 했다. 그와중에도 촉새는 요지부동이었다. 용한이는 평소에 관심도 없던 촉새가 신경 쓰였다. 학급에서 자신이 보는 책에 관심을 갖는 친구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등이는 성적을 올리는데 혈안이 돼서 교과서나 문제집 이외의 책은 쳐다도 안 봤다. 별로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자위했지만, 공통의 흥미를 갖고 토론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길 바랐다. 혹시나 하지만, 촉새가 그런 친구가 되어줄까 기대했다.


촉새는 전율을 느꼈다. 자신이 제대로 책의 메세지를 이해한지는 모른다. 자신의 어휘가 짧고 지식이 짧아 정의할 수 없었지만, 분명히 갖고 있던 어떤 문제를 책은 짚어줬다. 전혀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이었다. 자신의 감정과 이해한 내용을 누군가와 대조해보고 싶은 욕구에 휩싸였다. 시간이 9시가 되고 종이 울렸다. 오늘의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 끝났다. 애들이 분주히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일진이는 촉새에게 말했다.


"다 읽었나보네. 애들 김양아네 자취방에서 기다리고 있다는데 갈거야?"

"일진아 어제 존나 놀았으니까 오늘 집에서 피탐하자."

"웬 일로 노는 걸 거절해. 책 읽는다고 깝치고 왜 그래"

촉새와 몇 마디를 섞었지만, 일진이는 촉새가 대화에 집중하지 않음을 느꼈다. 촉새는 가방 싸는 것도 미룬채 책을 들고 용한의 곁으로 갔다. 촉새가 책을 건넸다. 촉새가 이어서 하는 말은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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