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DAY ONE PAGE ㅣ 한공기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정작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의 본질은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있습니다. 전 그것을 찾아주고 싶어요.
작가 프로필 ㅣ 한공기
글쓰기 공동체 '파운틴' 운영자
보통사람의 사소한 일상이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송중기처럼 청순한 남자이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이름도 비슷하다.
매주 토요일에는 남양주로 여행을 간다. 한동안 남양주 청소년 영화학교 선생으로서 중학생과 고등학생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홍대에서 지하철을 타고 잠실에서 내려 광역버스로 갈아타면 1시간 반이 걸리지만, 홍대에서 ITX청춘열차를 타면 2시간이 걸린다. 여행의 기분을 내고자 가끔 청춘열차를 타고 가는데 정말 청춘시대로 돌아가는 기분이 드는지 나도 모르게 가슴이두근거린다. 춘천 쪽으로 향하는 열차 안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다. 젊은 연인들부터 늙은 연인들. 외국인 관광객. 자전거를 실은 라이더. 셀카봉을 들고 수다를 떠는 단짝 친구. 모두들 창밖에 스쳐가는 풍경을 보고있다. 청춘열차는 일반 지하철과 달리 엄청 시끄럽다. 끊임없이 종알대는 목소리에서 이 안에 있는 모두가 들떠있는 기분이다. 기차 벽에 붙어있는 명화(흘러가는 푸른 하늘과 산과 강)를 멍하니 보며 언젠가 춘천에서 데이트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혹시 그것이 꿈이었던가? 꼭가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던 것인가, 아니면 진짜로 갔다 온 것인가. 어쨌든 지금 그곳으로 가고있다.
높은 건물이 거의 없는 남양주 마석지역 화도마을에 도착했다. 숨이 멎을 정도로 새파란 하늘과 녹색 산이 마을을 덮어버렸다. 마치 동화책 속으로 들어온 것 같다. 오전 11시 수업인데 10시 20분에 도착을 해버렸다. 도서관 2층 사무실에서 열쇠를빌려 4층에 있는 강의실 문을 열었다. 에어콘이 없어서 창문을 모조리 활짝 열고 양벽에 붙어있는 선풍기 두대를 '강'으로 돌렸다. 텅빈 교실에 나풀거리는 커튼은 영화 러브레터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커튼 뒤에 10대였던 내 자신이 숨어있는 듯한기분이 들어 난 선생이 아닌 교실에 일찍 온 학생이 되었다. 텅빈 교실 만큼 유년시절의 우수를 상징하는 것이 있을까? 12년이라는 시간을 거의 교실에서 보냈으니까 고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난 이 곳에서 배우고 떠들고 남 모르게 어느 여학생을 좋아했었다. 의자를 하나 빼어 들고 앉아 눈을 감았다. 창으로 새어 들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에 머릿카락이 살랑거렸다. 30년 전에서 부터 불어온 바람에 몸을 싣고 시간을 초월한 이상한 시공간에서 홀로 방황하고 있을 때, 시끌벅적한 아이들의 목소리가강의실밖 계단을 타고 점점 들려왔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난 놀라 뒤를 돌아 보았고 장난끼 서린 표정을 한 여학생들이 우르르 교실로 돌아왔다.
스크린을 내리고 프로젝트를 켰다.
" 오늘 참고할 영화의 한 장면은 건축학개론이야. 건축학개론 본 사람?" 아이들은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로맨스 영화는안 봐요~" 한 여학생이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래? 그럼 최근에 봤던 영화 중 재밌었던 것은 뭐니?"나의 질문에 그녀는 "노무현 입니다 입니다."라 대답했다. 요즘 아이들은 무척 조숙하구나 생각했다가 얼마 후 벌어진 일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건축학개론의 옥상씬을 보며 두 사람이 대화하는 장면을 어떻게 컷으로 나누었는지 살펴보았는데 영화 속 여인이 남자의 귀에 이어폰을 꽂아줄 때 아이들은 꺄~하고 소름돋게 소리쳤기 때문이다.
세명씩 조를 짜서 두 명이 대화하는 것을 다른 한명이 스마트폰으로 찍는 실습을 했다. 4팀정도 만들어졌고 난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이 제대로 사진을 찍고 있는지 살펴 보았다. 한 여학생이 내 팔을 붙잡고 질문을 했다. 내가 대답을 해주는 동안 가녀린 그녀의 흰 손이 마치 매미처럼, 고목나무같이 울퉁불퉁한 나의 칙칙한 팔에 붙어있었다. 그녀의 눈이 무척 이쁘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눈꼬리가 옆으로 높게 치켜 올라간 것이 중국 여인을 떠올리게 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마치자 그녀는 “선생님 제가 문자보냈는데 왜 확인 안 했어요?” 물었다. 난 놀라 스마트폰을 켜고 확인했더니 그녀가 카톡으로 이미 질문거리를 문자로 보냈다. 난 그녀의 머리에 꽁하고 꿀밤을 주며 “바로 앞에 있는데 와서 물어보지. 왜 밧데리 아깝게 카톡을 보내냐?” 했더니 “선생님이 너무 바빠서 저희 쪽을 안 봐주시니까 그렇죠.”라고 그녀는 대답했다.
한때 여고생 학생의 칭얼거림에 가슴이 떨린 적이 있었다. 10년 전 일인가…방과 후 선생을 하던 때 날 유난히 따르던 여학생이 있었다. 그녀는 아무 때나 내게 문자를 보냈고 문자에 답장을 주지 않으면 전화를 했다. 그녀의 고민에 상담을 해주었고 “아! 선생님 저 학원 늦었어요. 바이바이~” 하며 난데없이 끊어버린 전화에 하루종일 심통이 난 적도 있었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한 적은 없지만 한 6개월 동안 그녀는 종종 내게 연락을 했고 별볼일 없는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칭얼칭얼 칭얼칭얼…난그 소리가 한번도 지겹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병아리의 삐약거림처럼 귀엽고 생명력이 넘쳤다. 그렇다고 우리가 단 둘이 만난 적은 없었다. 지금 즈음 그 아이는 대학도 졸업하고 시집을 갔을 만한데 아마도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다시 텅빈 교실에 남았다. 선풍기를 끄고 창문을 닫았다. 피곤해서 빨리 집에 가 자야겠다 생각이 들었지만 엉기적거리며 좀처럼 강의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영화 용어가 빽빽히 채워져 있던 화이트보드를 말끔히지우고 뒤를 돌다가 중3때 내가 무척이나 좋아했던 여학생 이름이 문득 떠올랐다. 파랑색 보드마카를 집어 들어 그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보았다.
김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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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보고싶었다. 아마 매우 어린 꼬마겠지. 그땐 정말 스스로 놀랄 정도로 그 아이 때문에 열병을 앓았다. 그녀와 그녀의친구들이 수업시간에 몰래 학교 앞에서 떡볶이를 먹고 오다가 학생주임한테 걸린 적이 있었다. 그녀는 벌로 체육시간에 운동장을 10바퀴 달렸는데 창밖으로 그녀의 모습을 내려다 보았다. 갈색 긴 머리를 휘날리며 거침없이 달리는 그녀의 모습에서난 무한한 자유를 느꼈다. 그리고 내가 사는 세상이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내가 중학교 시절을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때로 기억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녀 때문인 것 같다. 본능과 직관으로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도 닮고 싶었다. 그녀를좋아하는 마음의 충만함으로 하루가 빨리 지나갔던 시절이었다.
다시 집으로 향하는 열차를 탔다. 청춘을 뒤로 하고 돌아가는 길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허전하고 공허했다. 내게 현실은 바닥에 널부러진 깨진 유리조각을 밟는 것과 같다. 걸음마다 고통이 뒤쫓아 오고 내가 지나간 자리마다 붉은 발자국이남는다. 아무 걱정없이 하하호호 웃으며 살았던 중학생 시절의 나를 언제 즈음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언젠가 그가 나를 찾아오길 기도하며 덜컹더리는 열차의 떨림 속에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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