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WORD ONE PAGE <생일> ㅣ 김연정
즐거운 감정은 빨래가 마르듯 금방 날아가 버리고, 우울한 감성, 생각들은 언제나 침전하여 남아있음을 느낍니다. 우울함, 불안함, 슬픔, 좌절감에 예민하고 행복에 예민하지 못한 제 자신이 조금 부정적인 사람이라고 느껴지지만, 아직까지는 수면 위 햇살보다는 우울한 바다 쪽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어두운 것들이 가라앉아 있는 심해心海 속을 당분간 탐구하면서 글을 써 볼 예정입니다. 언젠가는, 나를 힘없게 만드는 것들에 대한 예민함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에게로 자리를 옮겨가길 기대합니다.
해마다 내가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보게 하는 특정 날들이 있다.
한 해가 끝나는 날, 한 해가 시작하는 날, 그리고 생일이다.
생각해보면 다른 날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평범한 날들일 지언데, 의도치않게 내가 서 있는 시점을 자각하게 되는 날이다. 그것에 몰두하는 것까진 아니어도 말이다.
몇억분의 일 확률로 정자와 난자가 만나 내가 탄생했다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지금 생각해봐도 신비스럽다. 내가 소중하고 귀한 존재라고 느낄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천문학적 확률이다. 그러나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거리의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보고 숨이 막힐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면, 나는 천문학적 확률중의 고작 '1'일 뿐이라는 생각만 든다. 널리고 널린 흔한 사람들 중 하나말이다.
그러고보면 나의 탄생에 있어서 애초에 내 의사는 없을지언데,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이 험난한 세상에 내던져진 생명체로서 그 존재만으로도 축하를 받는 날이 있다는 것은 조금 이상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생일은 내가 축하를 받는 날 이라기 보다는, 나의 탄생을 마침내 이룩한 엄마와 아빠를 위한 기념일이라고 여기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세상에 둘도 없는, 가장 독특하고 예술적인 피조물인 나는, 널리고 널린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스스로는 여길지언정, 그들에게는 정말로 단 하나뿐인 존재일 테니까 말이다.
이따금씩 엄마와 아빠는 나의 어린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추억에 잠긴 눈을 할 때가 있다. 그 눈빛 속에는 마치 그들의 사랑스러운 어린 자식이 더 이상 없다는데서 오는 그리움과 어른이 되어버린 자식을 보는 환희가 동시에 존재하는 듯 하다.
애초에 사람 혼자서는 생명을 잉태할 수 없기 때문일까.
나는 기억하는 한 아주 어린시절부터 끊임없이 누군가의 영향을 받아왔다. 내 주변을 둘러싼 이들이 '나'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매기고, 누군가의 질타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또한 혼자임을 견디지 못하며 괴로워한다. 어차피 각자의 인생은 혼자만이 감당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하면서도, 정말로 지독하게 혼자이고 싶진 않다.
한 사람의 삶이라는게 두 사람의 만남이 아니었다면 시작조차 불가능했을테다. 외로움과 고독은 인간의 숙명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그로부터 위안을 받는다. 그래서 오랜 시간동안 곁에 있어주는 친구들을 생각하면 항상 고마울 수밖에 없다.
각자가 가진 결핍에 대해서 터놓고 이야기하며 함께 웃을 수 있는 이들. 내가 가진 특정 결핍을 채워줄 수는 없지만 옆에 나란히 서서 온기를 나눠주며 응원하는 이들. 한 때 내 안의 어떤 것을 채워주었다가도 다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이들처럼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언제나 내가 더 많은 결핍을 느낄수록 그들의 온기는 더욱 따뜻하기만 했다.
얼마 전은 내 생일이었다. 친구들이 준비해준 생일 케이크에는 큰 초 세개와 작은 초 한 개가 꽂혀있었다. 작년과 비슷한 케이크에 변함없는 생일축하 노래를 들었고, 비슷한 식사를 했다. 그리고 가늘게 흔들리는 촛불들 주변으로 익숙한 온기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매년 하나씩 늘어가는 촛불처럼 내년에도, 그 이후에도 내 주변에서 이 온기들이 떠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너희들의 테이블에도 내 온기가 계속 남아있을 수 있기를 바래.
생일 축하해줘서 고마워. 지금처럼 계속 좋은 시간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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