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폐기 식자재에 대한 변명

소소하다 ㅣ 곽정빈

by 한공기
KakaoTalk_20160508_223016445.jpg 연구원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또 좋아하는 책이 헤르만헤쎄의 데미안입니다. 그래서인지 평소 인간 본연의 양면성을 사랑하고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말을 곧 잘하곤 합니다.


작가프로필 ㅣ 곽정빈

저는 3년간 하던 일을 그만두고 지난 1년간 세계여행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두 눈을 황홀하게 채우는 수많은 풍경들보다도 여태껏 가져보지 못했던 무지막지한 혼자만의 시간을 대면해야 했던 것이 가장 큰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시간들을 글을 쓰면서 채워 왔습니다. 글을 쓸 때 비로소나 나 스스로가 나 다워지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희미해져만 갔던 나의 자아가 글을 쓰면서 뚜렷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시작된 제 인생의 2막에서 지속적이고 전문적으로 글을 써나가고자 합니다.



기어코 호박과 가지는 썩어버렸다. 처음부터 물기가 아예 닿지 않게끔 필요한 양만 잘라내서 사용하고, 남은 부분은 마치 이집트의 미라마냥 랩으로 꽁꽁 감싸서 냉장고 신선실에 보관했다. 그리고 일 주, 이 주가 지나가면서는 에이 그래도 괜찮겠지 라고 애써 자위했지만, 그렇게 결국 삼 주, 사 주가 되어버렸을 때는 마치 재앙을 품은 판도라의 상자라도 되는 양 난 애써 신선실 열어보기를 주저했다. 그리고 역시나 시간 앞에 모든 만물은 덧없는 것이었다. 영생을 누리고자 한 파라오는 속절없이 사각의 관을 채우고 드러누운 흉측한 껍데기일 뿐이다.


그렇게 호박과 가지의 최후를 보고나니 이제는 냉장실에 숨죽인 채 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다음 후보들이 걱정된다. 그중에서 제일 작은 거라고 골랐지만 그래도 내 장딴지만 한 크기의 무 한 통이 절반 이상이나 남아있고, 작은 냉장고에 통째로 들어가지 않아 어슷썰기로 조각냈음에도 반찬 통 3개씩이나 차지해버린 대파 한 단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난생 해본 적 없는 깍두기를 담그지 않고서야, 입주하고 여태껏 단 한 차례도 마주치지 못했던 이웃들에게 모두 나눠주고도 남을 만큼의 파전을 양껏 부쳐내지 않는 이상, 저들 역시 호박과 가지나물의 운명을 따라갈 것이다.


처음부터 1인 가구에게 무 한통과 대파 한 단은 감당하기 어려운 양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수박 반 통은 들어봤어도 무 반 통은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을. 아무리 솔로몬 왕이 재림한다 한들 1,500원짜리 대파 한 단을 쪼개서 낱개로 살 수는 없는 것이다.


회사 대리 하나는 와이프가 따로 벌이를 하지 않음에도 반조리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다고 했다. 둘 다 가뜩이나 아침은 먹지 않는 데다가 간혹 외식을 하는 경우까지 생각하면, 이틀에 한 번 꼴로 조리 음식을 시켜 먹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더 이득이라는 설명이었다. 심지어 화학첨가제도 사용하지 않고 요즘에는 맛까지 좋다고 하니, 굳이 막 애까지 달린 불편한 몸으로 매일같이 장을 봐가며 요리까지 하는 수고를 사서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그 맛에 익숙해지면 업체를 바꿔버리면 될 일이다.


수요일은 저녁에 정기모임이 있고 금요일부터 주말까지는 웬만하면 약속으로 외식이 잦다. 또 갑자기 생기는 약속이나 회사 회식까지 생각해보면, 제대로 차려 먹는 식사는 일주일에 끽해야 너덧 번이나 될까? 아무리 철저한 계획하에 식재료를 관리하고 또 주기적으로 소진하다고 한들 결국엔 전업주부가 아닌 이상 한계가 있는 법이다. 경영학에서도 소진되지 못하고 남아 폐기되는 장기재고는 결국엔 낭비다. 그리고 낭비는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하루에 얼마 없는 시간까지 쪼개고, 애를 써서 또 요리를 하고, 심지어 돈까지 들여가며 요리를 해 먹는 것에 허탈감이 느껴진다. 비로소 어느샌가 직접 요리를 해 먹는 것이 사치이자 취미가 되어버린 시대에 나는 살고 있음을 느낀다.


어찌 그래도 이렇게 볼품없이 말라 비틀어져 버린 가지와 호박 나물의 의미는 찾아주어야겠으니, 그럼에도 굳이 이토록 사치스럽고 심지어 낭비까지 유발하는 요리라는 것을 굳이 해보겠다는 것은 말이다. 실은 소소한 내 다짐에서부터였던 것이다.


내가 배낭여행을 다니던 때에는 다인실 호스텔을 전전했었다. 그중에서도 호스텔의 공용주방은 각양각색의 여행자들로 항상 북적대는 곳이었는데, 그래서 자연스레 주방은 문화교류가 일어나는 장소가 되었다. 몇 없는 화구와 접시, 좁은 싱크대를 번갈아 사용하며 서로 부대끼게 되고 점차로 눈빛을 교환하게 되며 이윽고 본격적으로 대화를 주고받게 되는 것이다. 주방의 공용 테이블에 둘러앉아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리한 음식을 서로에게 나누고 각자가 경험한 여행지의 정보를 교환한다. 그런 식으로 새로운 에피소드와 인연이 피어나는 배낭여행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곳이 바로 주방이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제대로 된 요리를 해본 적도 없었거니와 빵이나 샌드위치류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는 것이 다반사였다. 말인즉슨 부엌에서 시시각각으로 일어나는 세계정상회담에 참여할 패스가 내겐 없었다는 뜻이었다. 고작 길거리에서 주섬주섬 싸들고온 샌드위치를 들고 주방으로 출입할 명목은 없으니까 말이다. 어떻게 주방으로 들어선다고 한들 그들 무리에 어울리는 것도 결코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여행의 말미 즈음에 속으로 다짐했던 것이다. 귀국하면 언제라도 누군가에게 적어도 한 끼 정도는 대접할 수 있을 만큼의 요리는 해낼 수 있게 되어야겠다고 말이다.


효익이 있으면 낭비는 비로소 투자가 된다. 내게 있어 요리는 단순히 매일같이 반복되는 음식 섭취만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나와 내 이웃을 그리고 이 사회를 윤택하게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그것이 내 요리이고 그 시작점이 바로 이곳. 한 평짜리 내 주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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