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내가 살고싶은 집

KEYWORD ONEPAGE_이사 ㅣ 이정민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2-03 오후 2.30.52.png 대구아가씨
전 건망증이 심해서 병적으로 기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오전 10시반에서 11시까지 무엇을 했는지, 점심은 무엇을 먹었는지, 물은 몇 잔을 마셨는지...흘러간 시간 속에서 사라질지 모르는 감정들까지도 세세하게 기록하고 싶어요


작가 프로필 ㅣ 이정민
직장인. 성격이 무척이나 쾌활한데 힘든 내면을 보호하기 위한 과장일지도 모름.




학생 때 영어회화 스터디에서 ‘내가 살고 싶은 집’을 몇 번 주제로 썼다. 그림도 그려서 설명을 하면 재미있게 오랫동안 이야기할 수 있었다. 대부분 주택을 이야기했는데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지하에 맥주창고를 넣어서 오크통에서 맥주를 바로 마실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3층 건물 1층 중앙에 목욕탕을 놓고 그 위로 구멍을 뚫어서 하늘을 보며 목욕을 즐길 거라고 했다.


나 역시 주택을 이야기했다. 2층 집에 2층은 남편서재, 내서재로 나누고 테라스를 꾸미고, 침실 욕실 부엌 등은 1층으로 몬다. 이 집은 마당이 넓은 것이 특징이기 때문에 1층 구조에 대해서는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마당으로 나오면 마당에는 쌈채소 시리즈와 여러 허브들로 텃밭을 꾸미고 집 뒤쪽으로는 담처럼 자두나무를 쭉 심는다. 농대교수님이 농약을 제일 덜치는 과일이 자두라고 했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조용히 사는 걸 가정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집으로 친구들이 놀러올 것으로 생각하고 손님이 지낼 수 있는 방을 2층으로 텃밭 맞은편에 짓는다. 대문에서 집으로 걸어가는 길 왼쪽은 텃밭 오른쪽은 손님건물이 있다. 손님건물에 2층은 친구들이 오면 내어주고 1층은 유리로 2-3면을 마감하고 아이들 책으로 채워놓는다. 동네 아이들이 다 모여서 여기서 책을 읽는다. 같이 스터디하던 선배가 유리로 마감해 놓은 건 아이가 공부하나 안하나 감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냐고 이야기했지만 정말 아니다. 시골이니까 동네 아이들이 도서관처럼 썼으면 좋겠다.


손님 건물 앞쪽으로는 평상을 놓고 그 위로는 포도나무를 키운다. 겨울엔 볕이 있는 게 좋고 여름으로 가면서 잎이 크면 그늘이 좋고 가을엔 포도가 맛있을 것이다. 집 뒤쪽으로는 나무를 심지만 집 앞쪽으로는 무릎정도 담을 돋여서 꽃을 키운다. 꽃담장도 좋겠지만 아이들이 많이 뛰어다니면서 열심히 밟고 다닐 테니 좀 더 돋여서 나비들이 좋아하는 꽃을 키운다. 동네 나비는 다 불러 모아야지. 화창한 초여름, 방금 딴 자두를 입에 물고 평상에 앉아 나비 날아다니는 걸 본다. 완벽하다.


대학교를 타지로 와서 지금까지 기숙사에 살 때는 방에서 방으로, 기숙사를 나와서는 건물에서 건물로, 졸업하고는 동네에서 동네로 이사를 다니고 있다. 작년에는 직장 때문에 이사를 했는데 전에 살던 집은 3층 건물에 1층에는 주인할머니할아버지가 계시고 주택을 원룸처럼 2층은 2가구, 3층 3가구로 개조한 곳이었다. 같은 월세였는데도 3층보다 2층이 더 넓었다. 오래된 집이라 계단도 가파르고 화장실도 허름했지만 월세가 획기적으로 저렴하고 방이 투룸 정도로 넓어서 같이 방구하러 갔던 룸메가 더 볼 것 없이 여기로 하자고 했던 곳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친절하셔서 김장하시면 김치를 갖다 주기도 하시고 벌레가 나왔다고 하면 바로바로 조치도 취해주시고 재활용품 내놓으면 한 번 더 정리해서 버리셨다. 하루는 방충망에 구멍이 났다고 말씀드렸더니, 할머니 할아버지 함께 올라오셨다. 할아버지께서 고쳐주신다고 ‘어어 여긴가?’ 하셔서 ‘네 거기에 구멍이 났어요’ 라고 했는데도 한참을 헤매셨다. 속으로 무슨 생각 하시는 거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에그 눈이 안보여서 그렇다 눈이’라고 하셔서. 엄청 짠하기도 하고, 평생 부부로 사는 게 이런 거구나 싶기도 하고.


그 방은 창문이 컸는데 웃풍도 심해서 겨울에 추웠다. 보일러 돌릴 생각은 거의 못하고 전기장판으로 잤는데 항상 코가 시렸다. 뽁뽁이를 붙이기도 하고 방풍커튼도 달았는데 별 효과는 보지 못했다. 그래서 다음엔 창문이 좀 작아도 웃풍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사는 곳은 그렇게 생각해서 고른 건 아니지만 창문이 정말 작다. 3층에 옥상을 써보겠다는 요량과 집 안을 내 맘대로 꾸며보고 싶다는 생각에 옛날 집을 그런 허락을 다 맡고 선택했는데 생각보다 집을 별다르게 꾸미지도 않고 옥상도 작년에 좀 올라가다 요즘은 뜸하다.


겨울에는 집 안이나 밖이나 똑같이 추웠는데 요즘은 낮 동안 옥상이 달궈져서 저녁이 되면 집 밖보다 안이 더 덥다. 이제 슬슬 또 짐을 꾸려야 하나 싶고 부동산 앱에서 매물들에 하트를 날린다. 여러 번 이사해봤지만 매번 불편한 점이 있었는데 제일 처음에 묘사했던 집도 실제로 그렇게 짓고 산다면 벌레가 많이 나오느니, 사생활 보장이 안 되느니 하면서 불평을 많이 하겠지. 심지어 집을 짓고 불평하기 전에 남자친구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견적 내준 금액이 어마어마했다. 남자친구는 열심히 돈을 벌라고 했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내 드림하우스에서 진정 필요한 준비물은 넓은 마당이 있는 2층집이 아니라 철마다 놀러오는 친구, 가족, 평상에 앉을 동네사람들, 집 여기저기에 앉아 책을 읽을 동네아이들인 것 같다. (드림 하우스에서 이것저것 빼다보니 내가 나의 미래에서 원하는 건 특정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는 자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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