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꽃다발과 악보

소소하다 ㅣ 김혜진

by 한공기
20170305_154339.jpg 간호사
저의 키워드는 행복입니다.결국 모든 것이 이 길 위에 있더라구요.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사람도, 글과 음악, 인생의 목적과 같은 것들이 행복이라는 틀 안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작가프로필ㅣ 김혜진


피아노를 전공하고 이후 간호학을 공부하였음.

피아노 치는 간호사

복지와 힐링에 관심이 많음




Bach French Suite No.5 in G-major BWV816


사랑스러운 바흐의 피아노 곡으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바흐의 프랑스 모음곡 5번이다.

(Bach French Suite No.5 in G-major BWV816)

Allemande의 첫소절을 듣는 순간 사랑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안드라스 쉬프(Andras Schiff)의 연주이다.





중학교 3학년. 나의 첫사랑은 짝사랑이었다. 내가 다닌 학교는 미션스쿨이었는데 1년동안 매주 예배순서를 진행할 임원을 뽑았다. 피아노를 쳤던 나는 노래를 잘 하는 그 아이와 함께 음악부 임원이 되었다. 예배시간이 되면 전교생들이 대강당으로 들어와 예배를 드렸는데 그 아이가 앞에 나와 찬양지도를 하고 나는 반주를 했다. 풋풋한 사춘기의 첫사랑은 나도 모르게 마음에 자리를 잡았는지, 반주를 하면서 그 아이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해하였고 순서진행이 궁금하다며 서로 대기실 문틈에 위 아래로 얼굴을 대고 무대를 바라보면서 그 아이가 조금 더 가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품곤 했었다.


꽤 오랜시간 속앓이를 했었던것 같다. 시골의 봉사대도 우연찮게 같이 다녀오게 되고 같은 반이라 합창대회도 지휘-반주를 함께 맡아 하면서 그 아이를 좋아하는 마음은 커져갔나보다. 좋아한다는 말을 하기엔 내가 너무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고, 학생때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친구 이상의 액션을 취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공중전화로 그 아이 집에 전화를 해 목소리만 듣고는 대답은 못한채 끊고 혼자 눈물지을만큼 좋아하는 마음은 아픔이 되어갔다. 졸업을 앞둔 어느 날, 그 아이가 교회에서 뮤지컬을 한다는 말을 들었다. 고등학교도 다른데로 간다는데 아쉬운 마음에 무언가 선물을 하고 싶었다. 한 한달을 꽃을 접었던것 같다. 한송이 한송이 접어서 큰 꽃다발을 만들었다. 그리고 뮤지컬을 끝낸 그 아이에게 그 꽃다발을 선물했다. 전혀 좋아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알았을것 같다. 표현이란 마음을 담아내는 것이니까.


클래식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도화선이 필요한것 같아 수줍게 지나간 첫사랑의 이야기를 꺼내어보았다. 어릴적 첫사랑이라 그런지 오래 전 그 아이에 대한 첫 마음은 사라졌지만 회상만으로도 그저 작은 기쁨을 주는 것 같다. '사랑'이라는 키워드는 음악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다. 서점에서 클래식이 소개된 책들을 보다보면 음악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이렇듯 '사랑'이라는 소재는 흔하지만 그 감정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갖게되는 가장 고귀한 마음의 작용이기에, 나는 이 '사랑'으로부터 시작되는 보편적이고도 특별한 음악으로부터 여정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이쯤 읽었으면 쉬프가 쿠랑트를 연주하고 있을지도.. 아니면 알르망드의 끝부분이거나.


프랑스 모음곡은 바흐가 두번째 아내인 안나막달레나와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작곡 되었다. 바흐는 첫번째 부인이 세상을 떠나고 17개월 후에 소프라노 가수였던 안나막달레나와 결혼하였는데 건반악기에 익숙하지 않은 그녀를 위해 애정의 마음을 담아 이 프랑스 모음곡을 작곡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생각해보면 참 로맨틱한 장면이다. 재혼 당시 바흐는 아이가 7명이나 있는 30대 중반이었고 안나막달레나는 이제 막 20살을 넘긴 애띤 여성이었다. 인생도, 사랑도, 가정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알고 있는 원숙한 남편이 아직은 모든것이 미숙하고 어린부인에게 사랑고백으로 세상에 길이 남을 명곡 6개를 선물한 것이다.


1925년 당시 익명으로 씌여진 Esther Meynell의 소설 <안나 막달레나의 이야기>(영문명 "The Chronicle of Anna Magdalena Bach")에는 안나 막달레나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의역한 것이니 이해해 주시기를)

"결혼하고 얼마되지 않아 그가 자신이 쓴 곡을 내게 주었지요. 내가 그 곡들을 치는 동안 그는 조용히 웃으며 내 옆에서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죠. 나는 이 곡들이 나를 위해 쓰여졌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이 아름다운 곡들은 나를 기쁘게 하고 용기를 북돋워주고, 더 높은 수준에 이르게 해 주었습니다. 그에게서 배우는 누구도 그가 인내심이 없다거나 무관심하고 부주의하다고 말할 수 없을거예요"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 모음곡 6곡은 하나같이 사랑스럽다. 바흐의 특징적인 작곡 스타일인 까다로운 대위법이 나타나지 않았고 곡이 길이가 긴것도 아니라서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스타일로 구성되어 있어 지루하지 않게 배울 수 있다. 그러면서도 아름다운 오른손의 멜로디와 바로크의 섬세한 꾸밈음들이 피아노와 만나는 순간, 그 우아함에 반하게 된다.


마음을 담아 한 음 한 음을 채워 넣었을 30대의 젊은 바흐를 생각하다보니 교복을 입고 있는 중학생의 내가 꽃다발을 만들던 장면이 생각난다. 꽃 한 송이 한 송이에 정성을 담았고 소중했었는데 바흐도 같은 마음으로 프랑스 모음곡의 정교한 음들을 채웠을거라고 생각하니 어떤 동생이 자주 쓰는 말처럼 바흐가 "너 곧 나"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꽃다발을 선물하듯 안나에게 바흐는 악보를 건네었겠지.


사랑과 애정의 증거물이었던 이 곡은 마치 맞춤옷을 입는것처럼 그녀에게 꼭 맞는 연습곡이자 명곡으로서 그녀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더 나은 음악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것을 발휘하며 살아가는 남편을 안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사랑에서 비롯된 삶의 바탕으로 바흐는 음악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필적할만한 업적을 남겼고 안나막달레나는 위대한 남편의 아내로, 조력자로 큰 역할을 해낸다.


나의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내게도 이런 사랑을 동경하는 마음이 항상 있었던 것 같다. 바흐와 안나막달레나의 모습처럼 관심과 배려, 상호간의 성장, 행복한 가정. 이 모든 것을 지켜가는 사랑의 모습말이다.


인간은 사랑으로 산다. 살아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꿈, 가치, 관계, 능력, 재력과 같은 것들은 사랑이 - 물론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남녀간의 사랑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 그 바탕을 이룰 때 아름다워질 수 있는것 같다. 마찬가지로 음악에 있어서도 위대한 작품보다 더 위대한 것은 그 작품을 만든 사람의 영혼에 깃든 참된 사랑의 정신이라고 생각된다. 아울러 바흐의 음악이 위대해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의 삶에서 품어오고 지켜왔던 사랑의 바탕이 두꺼운 지지층을 형성하였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그 바탕에 깊은 뿌리를 내릴 수 있었을 것이므로.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있던 나의 첫사랑의 이야기를 도화선으로 태우면서 마음으로 말했다. 역사적인 순간이다. 라고.. 내가 공개했지만 괜히 들킨것 같다는 생각에 약간의 부끄러운 마음이 들긴 하지만 비로소 나의 역사도 새롭게 씌여지려는지. 이미 도화선은 타고 없어진 일이다. 하하하. 아직 끝나지 않은 프랑스 모음곡의 빛나는 음들이 사랑임을 속삭일 때, 나의 첫사랑에게 전달된 꽃 한 송이를 기억해 주시기를.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랑으로 애타는 청춘들의 감성에서도 깊은 삶의 모습이 배어나오는 멋진 작품들이 탄생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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