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상자 세개

KEYWORD ONEPAGE <이사> ㅣ 최미애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1-25 오후 2.18.58.png 직장인 명상가
명상을 하면서 '관찰'이 취미가 되었어요.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촉감을 느끼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파악하는 관찰 작업을 수행하고, 그렇게 관찰하고 있는 자신을 순간 순간 깨달을 수 있도록 뭔가를 좀 써봐야 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작가 프로필 ㅣ 최미애

IT 9년차 직장인.

불교와 명상에 관심이 많아 경전을 읽으며 '집중'과 '관찰' 수행을 하고있다.

자신의 특기를 이용해 세상에 관한 '관찰일기'를 쓰려한다.




처음 독립을 한 것은 2005년 1월이었다. 2004년 가을 학기를 휴학하고 몇 달 돈을 모아 벌인 일이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그렇게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할 테니, 선택지는 기껏해야 고시원이었다. 학교 서문 근처에 있는 고시원은 한 달에 16만원이었고 시간만 잘 맞춘다면 밥통에 있는 밥은 얼마든지 퍼먹을 수 있었다. 방 안에는 작은 침대와 캐비닛 하나, 책상과 의자가 있었다. 창문은 없었다. 창문이 있는 방은 더 비쌌다. 고시원에 들어가던 날 엄마가 보자기에 싸준 겨울 이불 한 채, 수저, 밥그릇, 국 대접, 겨울옷 몇 벌을 들고, 일렉 기타는 등에 멘 채 지하철을 타고 이사했다. 고시원에서의 첫날 밤은 너무 추워서 바로 다음 날 몸살 난 채로 다시집에 가서 전기장판을 가져 왔다.


인천에서 엄마와 살던 집은 단칸방이었다. 보통은 엄마와 둘만 있어서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수원에서 자취 중인 오빠가 오거나, 일 년에 몇 번 오지 않는 아빠가 온 날은 옆으로 누워 무릎을 웅크리기도 어렵게 방이 좁았다. 집안 형편은 꽤 어려웠지만, 학교 다닐 팔자는 되었는지 이공계열로 진학했다는 이유로 나라에서장학금을 줬다. 그래도 과외 한두 개 벌이로는 교통비와 휴대폰 요금, 밥값과 친구들과 마시는 커피 한 잔, 합주실 비용을 내는 것이 크게 느껴졌다. 그것이 괴롭다고 느낄수록 날마다 한 방에서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엄마를 향해 점점 아픈 감정이 돋았다. 그저 혼자 숨 쉴 공간이 필요했다. 내가 조용히만 산다면 고시원도 그다지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고시원에 들어가 한동안은 잠을 잘 자지 못했다. 벽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합판 너머로 옆 방 여자의 소리가 너무 생생하게 들려왔다. 이불 부스럭거리는 소리, 아침 준비를 하며 머리를 말리는 소리, 최소한의 볼륨으로 틀어도 너무 크게 느껴지는 TV 소리, 그 모든 소음이 잠든 나를 쉽사리 흔들어 깨웠다. 옆 방에서도 나의소리는 너무 크게 들릴 터였다. 재채기하는 것조차 미안했다. 침대에 몸을 둥글게 말고 누우면 등이 벽에 닿았는데, 어쩌면 옆 방 여자도 이렇게 벽에 등을 대고 있다면 우린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법 고시원 생활이 익숙해진 이후에도, 혼자 숨 쉴 곳이 필요해 나왔으나 내 숨소리는 항상 너무큰 것처럼 느껴졌다.


그곳에서 총 8개월을 살았다. 집에 돌아간 이유는 다름 아닌 돈 때문이었다. 뒤꿈치 부근에 못이 튀어나온 만 원짜리 플랫 슈즈를 계속 신고 다니면서 과외며 매점알바를 해도 그 이상 버티는 것은 도저히 무리였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죽은 듯이 잠들어 있는 사이에 과외하는 집 아버님이 문자로 해고 통지를 했다. 과외비는 선불이기 때문에 더 들어올 돈이 없었다. 남은 돈을 쥐어짜서 고시원비를 내고 나자 먹고살 돈이 부족했다. 한동안은 밤낮이 바뀐 채로 학교 도서관에서 일곱 권씩 책을 빌려다 쌓아 놓고 읽었지만, 책 읽는 것만으로 배가 부를 리는 없었다. 할 수 없이 근처에서 자취하는 친구들에게 점심을 얻어먹었다. 자조 섞어 먹고 사는 일의힘겨움에 대해 토로를 하면, 점심뿐만 아니라 커피 한 잔과 더불어 저녁에 술까지 사주는 맘 좋은 친구들도 있었다. 여기 저기 과외 자리를 알아봐 달라고 말은 해놓았지만, 이미 고시원비는 이미 한 달 연체된 상태였다. 두 달 이상은 밀릴 수 없었다. 그 데드라인까지 2주가 남았을 때, 통장에는 육천 얼마의 돈이 남아 있었다. 마트에 가서 한 개에 450원인 쇠고기 카레 몇 개와 육개장 컵라면 몇 개를 샀다. 최후의 식량이었다. 고시원 전기밥솥에서 취사 완료 알림이 울리면 잽싸게 밥을퍼와서 하루에 한 끼만 카레나 컵라면을 먹었다. 어른이 된 이후 처음으로 몸무게 앞자리가 4가 되었다. 집에 연락해볼 수도 있겠지만, 아무 일자리가 없는 상태에서 고시원 비를 갚아 달라며 돌아갈 수는 없었다.


다행히 일주일이 남았을 때 고등학교 동창이 중학생 과외를 주선해 주었다. 인천 집 근처였다. 집에 갈 돈 없어서 학교 근처를 지나는 친구에게 왕복 차비와 담배한 갑을 빌렸다. 친구는 신촌역에서 내게 삼천 원 가량의 돈과 담배를 건네고 급한 일이 있다며 바로 돌아갔다. 나는 신촌역 3번 출구 근처에서 아주 맛있게 담배를피웠다. 8월이라 날씨가 찌는 듯이 더워, 오랜만에 피는 담배가 한층 어찔했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인천으로 향했다. 학생의 부모는 한 주에 두 번, 수학과 영어를 두 시간 동안 가르치고 30만 원을 선급으로 주는 것에 동의했다. 과외 시작은 그 주 주말로 정해졌다. 엄마에게 받게 될 과외비를 그대로 드릴 테니, 얼마간 돈을 좀 빌려 달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말도 함께.


주중에 이삿짐을 쌌다. 학교 매점 옆에서 큰 상자 몇 개를 주워와 짐을 채웠더니, 급하게 쓸 것을 제외하자 상자 세 개가 나왔다. 여기서 그저 생존만 하다가 가는것 같은데, 8개월 사이에 짐이 세 배로 늘다니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삿짐은 누가 실어다 줄 만한 것도 아니어서 착불 택배로 부치기로 했다. 딱 봐도 육체노동을 할 것 같은 건장한 아저씨가 별거 아니라는 듯 상자를 가져갔다. 고시원 총무에게 두 달 치 고시원비를 정산했다. 큰 가방에 매일 써야 하는 화장품 같은 것들을 주워 담고, 기타 가방을 등에 멨다. 내 흔적이 지워진 고시원 방은 커다란 상자 같았다. 밖으로 나오자 습한 공기에 숨이 턱 막히고, 가방이 닿은 등에 땀이 뱄다. 어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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