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WORD ONE PAGE <이사> ㅣ 김혜진
저의 키워드는 행복입니다.결국 모든 것이 이 길 위에 있더라구요.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사람도, 글과 음악, 인생의 목적과 같은 것들이 행복이라는 틀 안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작가프로필ㅣ 김혜진
피아노를 전공하고 이후 간호학을 공부하였음.
피아노 치는 간호사
복지와 힐링에 관심이 많음
어제 저녁 너무 일찍 잠이 든 탓인지 이른 새벽 눈을 떴다.
어두운 방 안으로 창문을 통해 간신히 가로등 불빛이 들어온다.
나른한 몸으로 이리뒤척 저리뒤척 하다보니 세 시 뻐꾸기가 운다.
.........
나는 이삿짐을 가득 실은 트럭 앞에 앉은 일곱살 배기 꼬마 소녀였다. 바로 전 날 1학년 교실에서 눈물 글썽이며 한 마지막 인사는 어디 갔는지 아이는 그저 미지의 세계를 향해 여행을 떠나는 듯 했다. 한 시간을 조금 넘게 달렸을까.. 도시에서 떨어진 외곽의작은 마을로 들어가던 순간, 엄마의 무릎 앞에 앉아 그저 싱글벙글 웃고 있던 아이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환호했다.
"우와~~~!"
그 곳에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떡 하니 버티고 서 있었는데 마치 이 마을을 지키고 있는 듯 웅장하기까지 했다.
"아빠 저 나무 몇 살이나 된거예요?"
"글쎄다 한 200년은 더 되었을것 같은데"
두 그루가 꽤 많이 떨어져 있었는데도 위 쪽의 가지들이 서로 얽혀서 마치 하나가 된 것처럼 보였고 울창한 잎들 사이로는 햇빛조차 끼어들지 못할 정도로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나무가 둥글게 보여서 동네사람들은 모두 그 나무를 둥그나무라고 불렀다.
아이는 나무 위에 올라가 시원한 매미 소리를 들으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동네 아이들과 함께 그 넓은 나무 그늘 아래에서 잡기놀이도 하곤했다. 그리고 햇볕이 뜨거운 여름날이면 머리를 질끈 묶고는 하늘하늘 달려가 양팔을 벌려 나무를 안고 뜨거워진 볼을 나무 줄기에 대어 식히곤 하였다. 쌕쌕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으면 어느샌가 시원한 나무의 찬 기운이 온 몸에 스며들어 왔고, 그제서야 손을 내리고 나무 위에 올라가 약간은 더운 여름바람을 맞는 것이 얼마나 좋았었는지. 구름이 잔뜩 낀 어느 가을 날 저녁 둥그나무 옆에서 저 멀리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바라보면서 저 곳에는 분명히 기도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아이의 순진한 생각도 떠오른다.
가끔은 지칠듯 보낸 하루를 뒤로 한 채 내려앉은 밤그늘 아래 누워 별을 셀듯 천장을 바라보곤 했다. 뜨거워진 열병을 식히듯 한낮의 뜨거움이 가라앉고 밤이 고요해지면 가끔 들려오는 경적소리의 울림 마저 추억을 부르듯 어린 날을 상기시켰다.
시간이 지난 지금 아름드리 둥그나무를 떠올리는 건 영혼의 둥그나무가 그리워서인 것은 아닐까.
시골에서의 유년시절을 접고 서울로 다시 이사를 와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어가면서 둥그나무를 여기저기서 찾아보기도 했고, 나 자신이 둥그나무가 되어보려고도 했다. 또 나처럼 둥그나무를 찾는 사람들도 보았다... 쉴 곳 없는 어른의 시선이 흔들릴 때는 어김없이 둥그나무가 필요했던건 아니었는지.
어른이 되면서 빼곡히 들어찬 의무와 이론들로 머릿속이 꽉 차버린 모습들을 보게된다. 나의 육신과 영혼 가운데도 마지막 빈칸마저 채워져 더 이상 쓸 수 없는 종이 같이 되어버린 모습이 얼마나 많은지.. 이제 다시 실패한 리포트 페이퍼를 찢어버리듯 머릿 속 가득한, 거무티티한 종이를 북 뜯어내고 줄도 쳐지지 않은 하얀 새 종이를 끼워 넣고 싶다. 그리고는 다시 머리를 질끈 묶고는 내가 제일 좋아했던 그 둥그나무 아래로 달려가 숨 찬 가슴 삭이며 두 팔을 벌려 둥그나무를 꼭 끌어안아주고 싶다.
........
네 시 뻐꾸기가 운다.
그 시골집 마당에서 아버지가 뚝딱뚝딱 박아 만드신 평상 위에 우리 네 가족 올망졸망 앉아 듣던 뻐꾸기 소리가 메아리 치는 듯 하다.
김혜진 님의 다른 글을 읽고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