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디아스포라

공통주제 <이사> ㅣ 곽정빈

by 한공기
KakaoTalk_20160508_223016445.jpg 연구원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또 좋아하는 책이 헤르만헤쎄의 데미안입니다. 그래서인지 평소 인간 본연의 양면성을 사랑하고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말을 곧 잘하곤 합니다.


작가프로필 ㅣ 곽정빈

저는 3년간 하던 일을 그만두고 지난 1년간 세계여행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두 눈을 황홀하게 채우는 수많은 풍경들보다도 여태껏 가져보지 못했던 무지막지한 혼자만의 시간을 대면해야 했던 것이 가장 큰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시간들을 글을 쓰면서 채워 왔습니다. 글을 쓸 때 비로소나 나 스스로가 나 다워지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희미해져만 갔던 나의 자아가 글을 쓰면서 뚜렷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시작된 제 인생의 2막에서 지속적이고 전문적으로 글을 써나가고자 합니다.




내 기억 속 우리 가족 최초의 집은 5층짜리 M 아파트였다. 20평짜리 작은 집이라 내 방이 없었던 나는 안방에서 레고 블록놀이를 하거나 아빠 서재에서 시간을 보냈다. 벽 한쪽 면을 가득 채운 오래된 책들이 빽빽한 책장, 하얀 먼지가 내려앉은 전축 LP 플레이어 케이스, 앉으면 삐거덕 소리를 내는 낡은 책상의자... 서재에서 베란다로 이어지는 유리창을 통해서 한낮의 따사로운 햇살은 바닥으로 살며시 내려앉았고, 열 살배기의 나는 그 햇살을 받으며 누운 채로 책장에서 꺼낸 가요집을 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서재와 이어진 거실에서는 엄마가 설거지하는 소리가, 낮은 2층의 베란다 밖으로부터는 동네 꼬마들의 재잘거림이 들려왔다.


내가 6학년이 되던 때 부모님은 이사를 단행했다. 바로 옆 동네에 있는 15층짜리 30평의 H 아파트였다. 이사는 이제 곧 중학교로 진학하는 나를 위한 공부방을 마련해주기 위함이었다. 부모님에게는 수많은 고심 끝의 결단이었겠지만, 어린 마음에 나는 난생처음 이사를 한다는 것과 15층짜리 아파트로 이사한다는 것이 마냥 좋았다. 친구들에게 하늘 높이 솟아 학교 운동장에서도 멀찌감치 보이는 저기 저 아파트가 우리 집이라고 말할 때마다 왠지 모르게 우쭐해졌다. 특히 등, 하교 때마다 15층인 우리 집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 내리는 것이 마냥 좋았는데, 나중에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 익숙해져 버려서 점점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는 덤덤함까지도 좋았다.


사실 덤덤해진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집에 돌아오면 덤덤하게 내 방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상할 것은 없었다. 나는 수험생이었고 내 이름이 붙은 내 방으로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거실에 있는 컴퓨터를 할 때나 가족끼리 식사를 할 때를 제외하곤 늘 내 방에 있었다. 늦은 밤 아버지가 한껏 붉어진 얼굴로 퇴근하고 돌아오셔도 방에서 나와서 꾸벅 인사를 드리곤 다시 내 방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결국 내가 내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것이 무슨 큰 의미일까 싶겠지만, 그것은 나와 관련한 모든 것이 가족, 특히 엄마를 통하여 이루어졌던 지난 삶으로부터 분리되는 시작점이었던 것이었다. 이전까지는 나의 생활 권역과 내 주변의 인간관계와 방과 후 활동 등의 모든 것은 엄마를 통해서만 이루어질수 있었지만 내게 나만의 공간이라는 개념이 생기면서부터 그것들은 하나둘씩 엄마의 영향 아래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흔히 그 나이 또래가 그러하듯 부모님께 말 못할 것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짝사랑하던 여자아이에게 연애편지를 쓴 것도, 몰래 빌려온 만화책을 공부하는 척하며 살짝 들춰가며 훔쳐본 것도, 책과 친해지게 된 것도, 책상 앞에서 혼자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것도 모두 그때 내 방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기어코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내 방에 엄마가 불쑥 들어오는 것조차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청소를 한답시고, 깨끗이 세탁된 양말과 속옷을 넣어준답시고, 과일 등의 간식거리를 넣어주신답시고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엄마가 못마땅했다. 난 더이상 모이를 입에 넣어달라고 지저귀는 아기새가 아니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이야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었다. 나는 저 스스로 먹이를 찾아 온세상을 누비는 새가 되기 위해 날개짓을 시작할 시기였던 것이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내게 주어지는 역할하에서 나만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된 대학입학 후의 하숙방은 동기 사랑 나라 사랑을 외치는 학교 동기들에게 점령되기 일쑤였고, 의무적으로 2년간 단체합숙을 해야 했던 군대에서는 단 한 순간도 혼자일 수가 없었다. 경제적으로도 완전한 독립을 이루었던 첫 취업 이후 지방 생활에서조차, 밤마다 술병을 들고 말을 건네오는 룸메이트 동기 형과 한 방을 공유해야만 했다.


그렇게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1년의 시간동안 정처없이 이곳 저곳을 헤메이다 다시 지금의 회사로 오는 등의 오랜 방황을 거친 후 정착한 지금의 10평짜리 나만의 방, 아늑한 조명 아래에서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채로 글을 쓰고 있다. 이 공간을 마련하기까지 참 지난한 시간이 지났다는 생각을 해본다. 매번 바뀌는 생활 공간과 또 그곳에서 새롭게 맺어지는 관계와 그에 수반되는 에너지소모. 그것을 다시 채우기 위한 나를 위한 나만의 안식처.


하지만 가끔씩 5층짜리 M 아파트 아빠 서재에서 쬐었던 따뜻한 햇볕의 온기를 생각한다. 그 햇빛에 반사되어 어지러이 흩날리는 먼지들, 불투명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빨래를 널고 있는 엄마의 실루엣, 홈이 파인 책상다리와 기분 좋은 나무 냄새, 책장 유리에 찍힌 내 다섯 발가락의 지문, 오랜 아빠의 기타 현을 퉁겨보는 일들... 망설임도 없다. 조급함도 없다. 막연한 불안감은 있되 현재에 충분히 만족한다고 생각하고 또 확신한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마음 한편에서는 끊임없이 그날의 온기와 냄새와 빛깔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왜일까?


아무리 고민해도 결국엔 알 수 없을 일이다. 지금의 나는 이미 그날의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이유를 들어보자면 그날의 나에겐 주변의 모든 것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지금 이순간의 욕심과 미련과 모든 후회를 담기에는 이 10평짜리 방은 너무 좁거나 혹은 넓다.


또 잠시 지나갈 뿐인 이곳 다음의 정착지에서는 과연 그 날의 것과 같은 편안함을 마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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