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다 ㅣ 화이 _ 단편소설
어느 날 미드를 보다가 문득, 우리나라도 땅고를 매개로 한 드라마가 있으면 많은 이들에게 땅고라는 춤을 전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에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작가 프로필 ㅣ 화이
아르헨티나 땅고 댄서이자 땅고 아카데미 '엘 불린' 대표
도서 '탱고레슨' 저자
◎ 은미란 : 십대의 마지막에 기획사에 발탁되어 걸그룹을 하다가 23살에 톱스타 민현우와 전격 결혼한 스타. 결혼 후 한동안 방송활동을 쉬고 있다가 최근 드라마 재기를 준비중에 있다.
◎ 민현우: 은미란의 남편. 20대 초반에 길거리에서 발탁되어 스타로 성장한 남자배우. 훤칠한 키와 잘생긴 외모로 뭇 여성들의 가슴을 흔들었다.
◎ 최시내: 미란의 친구이자 걸그룹 디브이에이의 멤버였다. 현재는 사업가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사는 주부.
◎ 장난아: 미란, 시내와 함께 걸그룹 D.V.A. 의 멤버였다. 목을 매서 자살했다.
◎ 황제펭귄: 남극에서 사는 연미복의 신사. 극강의 환경에서 최악의 고난을 최고의 귀여움으로 승화하는 동물.
◎ 그 외 엑스트라들
영하 50도의 빙하 위는 바람이 세게 불었다. 펭귄은 발등에 알을 올려놓고 가만히 서 있었다. 자칫 발등 위에서 알을 떨어뜨리면 즉시 얼어붙었기 때문에 펭귄은 꼼짝 않고 온 몸으로 바람을 맞았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다른 펭귄들과 몸을 맞대고 가깝게 섰다. 더 꼼짝 할 수가 없는 형태가 되었다. 가끔 아주 조금씩 움찔거리며 옆으로 이동했다. 수컷 펭귄 무리는 한 덩어리인 것처럼 몇 달을 그렇게 서 있었다.
난아가 화장실에서 목을 맸다.
미란이 전화를 받은 것은 인터뷰를 막 마치고 나서였다. 걸그룹 디브이에이의 또 다른 멤버였던 시내였다.
“미란아, 난아가.... 난아가 글쎄.... 아, 미친년...”
시내는 차라리 욕을 뱉었다. 미란은 잠시 동안 멍한 채로 수화기를 들고 서 있었다.
“벌써 기사 났네. 디브이에이 멤버 장난아 자살. 포털 사이트들도 다 그 뉴스야.”
현우가 핸드폰을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지금 바로 준비하고 가는 게 낫겠지? 빨리 옷 갈아입어.”
현우는 옷장에서 검정 셔츠를 꺼냈다. 전화벨이 울렸다.
“네, 감독님, 소식 들으셨어요? 네, 저도 장례식장으로 바로 가려구요. 얘, 거기서 뵙죠.”
난아의 빈소에는 이미 기자들과 조문객들로 북적였다. 미란과 현우가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플래시 세례가 터졌다. 현우는 최대한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 미란은 현우 옆에 바짝 붙어서 걸었다.
미리 빈소에 와 있던 시내가 미란을 발견하고 뛰어 와서 안겼다. 기자들의 눈빛은 먹이를 발견한 승냥이처럼 번들거렸다. 어지럽게 번쩍거리는 입구 너머에는 난아가 국화꽃보다 더 하얗게 웃고 있었다.
선천적으로 흰 피부에 밝은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난아는 학교 다닐 때 오해를 많이 받았다.
“아무것도 안 해도 날라리로 보잖아. 그래서 차라리 공부 때려 치고 가수가 되기로 했지.”
난아가 당돌하게 푸른 연예 기획사를 찾아왔었던 것이 벌써 10년 전이었다.
미란은 향을 꺼내 든 채로 난아의 사진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디브이에이 해체 후 난아가 발표한 싱글 앨범은 완전히 실패했다.
“나보고 가창력이 부족하대. 춤이 노래보다 낫다나.”
난아는 남의 이야기를 하듯 그렇게 말 하며 웃었다.
“다음 앨범은 잘 될 거야. 너 곡도 쓰고 있다며.”
“야, 됐다. 이제 시작한 작곡이 어느 세월에 좋은 곡 나오겠니. 그냥 좋아서 공부하는거지. 노래는 네가 계속했어야 하는데. 리드보컬이었던 건 너였잖아.”
“연기도 재미있어. 배우는 것도 많고. 노래하는 건 네가 누구보다 더 좋아하잖니.”
미란은 화제를 다시 난아에게로 돌렸다.
“그건 그래. 어쨌든 앨범이라도 낸 덕에 그나마 광고도 들어오고, 예능 프로도 들어오니 죽으란 법은 없다.”
난아는 눈을 찡긋해 보이며 웃었지만, 미란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우리 팀 그렇게 해체하는 게 아니었는데... 한참 잘 나갔었잖아.”
“그게 다 우리 잘나신 김형중 사장님 덕분 아니겠니. 막말로 사장님이 너 팔아먹은 거잖아. M 엔터테인먼트 장민태 사장 밑으로 들어가려고 말이야.”
“난 드라마에 캐스팅 되어 마냥 좋았을 뿐이었는데....”
“김형중한테는 이게 기회였겠지. 안 그래도 기획사가 흔들흔들 하던 때였잖아. 다른 걸 그룹 애들도 막 쏟아져 나오는데 밀어붙일 돈은 없고, 그러던 중에 장 사장이 손 내민걸 덥석 잡은 거 아냐. 사실...”
난아는 말꼬리를 흐렸다.
“사실 뭐?”
“이건 소문인데, 기분 나쁘게 듣지 마. 그냥 떠도는 소문일 뿐이니까. 현우오빠가 너한테 사귀자고 한 것도 장 사장이 시킨 거라는 말이 있어. 나야 그 소문 믿지는 않지만, 현우오빠가 너한테 좀 끔찍하니? 그래도 장 사장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라 이거지.”
갑자기 플래시가 터지는 바람에 미란은 정신이 들었다. 난아의 삼촌이 기자를 밖으로 밀쳤다.
“나가! 어딜 감히 여기까지 들어와?”
삼촌은 아예 복도까지 나가서 소리를 질렀다.
“기자 새끼들은 당장 다 꺼져! 씨팔! 왜 여기까지 와서 행패야 행패가? 누가 당신들한테 기사 실어달라고 그랬어? 난아 살아 있을 때 그딴 기사들만 써대더니, 끝까지 뭐 뽑아먹을 거 있다고 여기까지 쫓아와? 이 개새끼들아!”
현우가 눈치를 주었다. 미란은 비로소 손에 쥐고 있던 향에 불을 붙여 향로에 꽂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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