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이사

KEYWORD ONE PAGE <이사> ㅣ 해원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4-01 오후 2.14.40.png 지구여행자


작가 프로필 ㅣ 해원

현재 요가원에서 일하면서 요가를 배우고 있고, 주말에는 종종 커피숍에서 일하고 있어요.

요가로 신체를 단련하고, 글쓰기를 통해 정신을 단련해서 초인이 되고자 합니다. (...)

필살기는 음... '머뭇거림...'입니다. -_-




최근 이사를 했다. 새 집이라 쾌적할 줄 알았더니 공사가 이어져 먼지, 소음, 하자 처리 등 번거로운 것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각 시공별 작업자가 모두 달라서 공사팀에 이야기를 해도 처리되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때로는 여러 사람과 옥신각신해야 했다.

그런 일들도 이제 정리가 되어간다. 다음 주면 예정에 있던 공사들은 마무리가 될 것이다. 문득 집에 돌아와 한 눈에 들어오는 방을 둘러본다. 우여곡절 끝에 여기가 이제 내 살림이 되었구나, 하는 실감이 든다. 커다란 박스와 보따리 짐을 가득 들이고, 몸 뉘일 곳을 찾아 겨우 눈을 붙였던 이사 첫날 밤이 있었다. 그 고단하고 어수선한 심정이 이 방 한 켠 어딘가에 아직 남아 있다.

이사는 살림을 정리하고 장소를 옮겨서 새 살림을 꾸리는 것이다. 짐을 싸고 옮기고 정리하고, 쓸고, 닦고, 버리고, 고치고 하는 자질구레한 일들의 연속이다. 혼자서 종종 걸음을 재며 가구를 들이고, 내다 팔고, 사람을 불러 수리를 하고, 그렇게 신경썼던 일들이 쌓여 어느덧 나름의 모양새를 만들어간다.

사는 것이 늘 그렇듯 완벽한 것도 없고, 처음에 기대한대로 내 마음에 쏙 들게 된 것도 없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역량 내에서 지금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살아보고, 또 부족한 것은 고치며 사는 것이다.

하기 전에는 막막하게 느껴지는 수고로운 일이지만 막상 상황이 되면 누구나 어찌어찌 하게 되는 그런 일들이다. 그래서 겨우 평범한 집이 된다. 근사하진 못해도 나의 냄새와, 나의 이야기가 배는 공간이 된다.

누군가의 일생을 시기적으로 구분을 짓는다면 거주지의 변화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사람이 사는 공간은 일상의 기반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삶에 바로 영향을 준다. 이번에 이사한 집도 나를 또 다른 생활로 인도할 것이고, 내 서른 몇의 나날을 함께 했던 배경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면 이 곳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가. 조용히 생각해본다.
자그마한 방 한 칸이고 평생 살 집도 아니겠지만 머무르는 동안 알뜰살뜰 충실하게 살며 추억을 쌓고 싶다. 언젠가 좋은 집에 살게 되면 이렇게 해야지 마음먹기보다는, 지금 집에서 분수에 맞게 좋아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실천하며 살고 싶다.

되도록 짐을 많이 늘리지 않고 정돈된 상태로 살고 싶다. 매일 하는 일에 필요한 것만 간소하게 꾸리고 싶다.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그때그때 사서 쓰고 남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집에서 쉴 때면 ‘작가 안경’을 쓰고, 좋아하는 원피스를 입고 노트북 앞에 앉아 일기나 수필을 써도 좋겠다. 뜨거운 정열과 자기연민이 넘실대는 글보다는 오늘 하루 일과나 느낌을 담은 단순한 글을 자주 남겼으면 한다.

가끔 가볍게 사람들을 초대해 좋아하는 것을 함께 나누고 사는 것도 좋겠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손수 만든 음식을 둘러 앉아 나누어 먹고, 책을 같이 읽거나 영화를 보고, 정다운 대화를 나누고 싶다.

생활이 나다우면서도 질서가 있었으면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책상에서 차를 한 잔 마신다든가, 일과를 마친 밤에는 침대에서 명상하고 책을 읽는다든가, 하는. 꼭 하지 않아도 되지만 주체적으로 반복하는 루틴을 만들었으면 한다. 화분을 기르거나, 집에서도 좋아하는 공간을 만들고 애정을 두는 것도 좋을 것이다.

열두시가 너무 넘지 않게 하루를 마감하고 잠이 들도록 하고, 요가 수련을 정기적으로 할 것이다. 신실한 수행자도 화려한 요가인도 못되지만 꾸준히 나의 방식으로 기도하고 명상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이렇듯 나만의 신전으로, 소박한 생활 공간으로, 포근한 아지트로, 꿈꾸는 작업실로, 용도에 맞게 변주해가며 이 공간에서 잘 지냈으면 한다. 내게 쉴 곳이 돼주어 감사하다는 마음을 기억해야지. 잘 부탁한다고 인사하며 악수를 청한다. 안녕, 만나서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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