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주제 <이사> ㅣ 윤성권
책상 앞에서가 아닌 사람들 속에서 좀 더 현실적이고 모두가 쉽게 접근 가능하고 실현 가능한 재생에너지 정책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 프로필ㅣ 윤성권
평소에 꿈을 디테일하게 꾼다. 그것을 각색해서 쓰면 재밌겠다고 생각함
이사는 사는 데를 옮기는 것이다. 꼭 포장이사나, 이삿짐센터를 통하는 거창한 행동을 취하지 않아도 내가 기거하는 곳이 옮겨지면 그것이 곧 이사이다. 불현듯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계속 이동을 해야만 살 수 있는 유목민들이 우리의 이사와 닮아있지는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한 곳에 붙어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사람에게 역마살이 끼었다고 부르는 데 엄밀히 얘기해서 그들에게는 유목민 기질이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내 기억상으로 우리 집은 이사를 한 적이 없다. 한 집에서 오랫동안 살아서인지 우리 집은 정리가 잘 되고, 깨끗한 집과는 조금 거리가 멀었다. 친구들이 놀러 와서 너희 집은 청소를 하지 않니? 라고 물어볼 정도였으니 어떤 모습일지는 충분히 상상될 것이다. 사실 청소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살면서 묵히고 쌓여온 잡동사니, 옷, 짐들이 워낙 많아서 정리가 잘 안 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 우리 집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면 정리가 잘 되고, 깨끗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보곤 했다.
많은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며 이사를 하지만 나는 집에서 가까운 대학에 진학하면서 이사를 할 기회를 놓쳐버렸다. 하지만 바로 다음 해에 군대에 가면서 의무적으로 그 기회를 맞이하였다. 다행히 군대는 이런저런 짐을 필요로 하지 않고, 내 몸뚱이만 옮겨가면 된다. 강원도 철원에서 맞이한 내 생에 첫 이사는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리 즐겁지는 않았다. 그래도 집을 떠나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곳에서 산다는 것이 지금 돌이켜보면 꽤 좋은 경험이었다.
첫 번째 이사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행해진 거라면 몽골에서 겪은 두 번째 이사는 정반대였다. 봉사활동이라 내 의지가 100% 투영되었지만, 그에 따라 엄청난 고통과 시련이 수반되었다. 군대가 편하다고 느낄 정도로 부족한 인프라 시설과 겨울철 영하 30도 안팎의 강추위, 외국인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 등은 이곳에 정착하는 게 쉽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생활한다는 것,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문화를 접한다는 것은 앞서 느낀 시련을 상쇄할 만큼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나도 유목민처럼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여러 곳을 다니면서 새로운 것을 경험하면 어떨 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세 번째 이사는 달랑 트렁크 한 개로 시작한 서울 생활이다. 트렁크 한 개는 이동이 어렵지 않기 때문에 언제든지 이사를 할 수 있다. 즉 나는 유목민과 같이 여러 곳을 다니고, 이동할 준비가 되어있으니 서울 생활이 지겹거나, 잘 맞지 않으면 언제든 여기를 벗어날 수 있다는 의지를 담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지 누가 알았을까. 군대와 몽골 생활이 거북이처럼 느렸다면, 서울생활은 고속철도처럼 무척 빨리 흘러갔다. 아마도 본격적인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치열한 밥벌이 활동을 하는 사이에 나에게 남아 있었던 유목민 기질도 소멸해 버렸고, 짐 또한 처음과 다르게 트렁크 10개가 있어도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요즘과 같이 바쁘고 각박한 사회에서 잦은 이사는 생활의 안정감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안정감만을 찾으려다가 (어렸을 적 우리 집과 현재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모르게 늘어만 가는 옷, 짐, 잡동사니와 거기에 고민, 스트레스, 잡념까지 묵히고 쌓여서 우리의 삶이 더 힘들어 진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럴 때 일수록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계속 이동하는 유목민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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