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내가 살던 집

공통주제 <이사> ㅣ 이나사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3-28 오후 1.54.13.png 무역업 회사원
필기도구들은 저마다 다른 울음소리가 있다. 슬픔의 울음이 아닌 쓰다듬 받는 고양이의 갸르릉거리는 소리다. 꿀꿀, 짹짹, 멍멍처럼 연필은 - 사각사각 - 소리를 낸다고 한다. 종이 위를 걷은 연필의 발자국 소리가 나에게는 소복소복하고 들린다. 눈이 오지 않아도 함께 걸을 이 없어도 연필 한 자루와 함께 오늘도 나만의 겨울왕국으로 산책을 떠난다.


작가 프로필 ㅣ 이나사

Keyword: 계란 & 치즈 매니아

계란을 싫어하는 사람은 여태 내 곁에 없었다. 그리고 나에겐 늘 계란이 곁에 있었다. 계란의 어머니에게는 미안하지만 하루에 두 알 이상씩은 꼭 먹는다. 냉장고를 열었는데 온갖 음식으로 가득 차 있어도 계란 칸이 비어있다면 금란현상이 일어나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사진관에서 증명사진을 찍을 때, 여행 가서 단체 사진을 찍을 때 항상 듣던 소리가 바로 치즈다. 참고로 우리 부모님은 김치 세대다. 치즈 세대라 김치가 없어도 밥을 먹을 줄 아는 나에게 계란이 밥이라면 치즈는 반찬이다. 필살기: 수염 난 턱으로 손등 긁기





꿈 속에서 나오는 나의 집은 모두 그 집뿐이었다.

꼭 꿈 속 만이 아니라 요새도 안정을 찾고 싶을 때면 틈틈이 기억을 되새기기에 이미 수천 번도 넘게 재생되었으리라. 이제는 머릿 속에만 존재하지만 그 이미지는 그 집의 이층 창문을 처음으로 활짝 열었을 때 내 눈으로 촬영됐다. 자동차 두 대만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음 직한 너비의 도로를 빼고는 일정하게 자란 코스모스 꽃밭이 Eye Maximum으로 펼쳐져 있었다. 내 눈 가득 꽃스모스!! 이 코스모스들은 또 하나의 이웃이 반가웠는지 수줍었는지 송이송이마다 좌우로 몸을 배배 꼬며 인사를 해왔다. "난 화이트라고 해. 난 핑크야 얘는 핫핑크고." 이쯤 되면 미쳤다는 소리 들을 만도 하다. 이제와 추측컨대 단독주택용지로 지정되기 이전에 구청 직원들이 단체로 나와 코스모스 씨앗을 뿌려 두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넓은 지역에 일정한 높이로 훌쩍 자라 1미터 가까이 되는 코스모스 군락만으로 조성되어 있긴 어려울 테니까. 우리집은 그 용지에 두 번째로 지어졌으니 입주가 엄청나게 빠른 편이었다. 그러니 그 좋은 꽃구경이 가능했던 거였겠지. 역시 인생은 타이밍!! 구청 직원 땡큐!!

다른 방 창문을 열었을 땐 새로 지어진 놀이터가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뻘 되는 두 분이 꾸려가시는 이웃집 하나를 제외하곤 이웃이 없었기에 그 놀이터 소유권은 80%는 내가 나머지 20%는 내 남동생이 갖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이 소유권 분쟁은 아름답도록 공평하게 마무리되었던 것 같다. 약수가 흘러 나온다는 소식을 들은 옆 동네 사람들이 물을 받으러 와 북적이기 전까지는 말이다. 놀이터 한 켠으로 졸졸졸 흐르던 시냇물이 있었는데 어느 샌가 약수라는 표지판이 세워졌다. 이 때부터 점점 유명세를 탄 놀이터 약수는 아직까지도 이 동네 명소로 최상급 관리를 받고 있다. 1층은 식당으로 2층은 우리의 보금자리로 사용했었는데 약수터가 만들어지면서 결국 식당 이름도 바꾸게 된다. 약수터X집으로.(약수터똥집은 아님)

이웃집 할아버지께서는 늘 농구공을 튀기고 있던 나에게 불평불만을 하시는 대신 농구대를 손수 제작해주셨다. 파란색 나무판자로 백보드를 만들고 링을 볼트로 조여 집 앞 전봇대에 걸어 철사로 고정시켜 주신 것이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농구 인생이 시작되었다. 이 전봇대 앞에서 난 농구황제였다. 그 마이클이 와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나무판자 백보드는 일반적인 농구대의 그 것과는 달리 탄성이 부위별로 달라서 같은 힘으로 농구공을 던져도 튀는 방향과 각이 천차만별이었으니까. 여기서 연마한 나의 훅슛은 카림 압둘자바도 울릴 수 있었으나 일반 농구대에선 아주 젬병이었다. 학교 친구들을 내 홈코트로 불러 연전 연승을 거듭하며 고등학교 시절을 공부가 아닌 농구로 대부분의 시간을 불태웠다. 만화 '슬램덩크', TV드라마 '마지막 승부' 그리고 농구대잔치까지 이어지던 이 쓰리 콤보는 나를 정신 못차리게 만들었다. 시간이 좀 흘러 진로 문제로 아버지와 다소 무겁고 진중한 분위기에서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다 아버지께 흠씬 두드려 맞게 된다. 프로농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씀드렸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4년간 살았으니 내 인생에서 거주기간이 가장 긴 집이었으며 가장 아름다운 풍경과 가장 소중한 추억들을 가진 집이었다. IMF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이사할 수밖에 없었으니 가장 아픈 집이기도 하다. 현재는 주인이 바뀌었지만 그 외형은 전혀 변하지 않고 존재하는 그 집은 지나칠 때 마다 심장을 먹먹하게 한다. 보통 이사라고 하면 살던 집에서 앞으로 살 집으로 물리적이고 공간적인 이동을 하는 것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게 이사다. 가족 모두가 그 집을 떠났지만 난 아직 완전히 이사를 하지 못했다. 첫눈에 이성에게 반하듯 나는 첫눈에 그 집에게 반했고 그 집은 내가 살던 집이 아니라 미래의 언젠가는 내가 살고 있는 집이 될 것이다. 코스모스 씨 흩날려 다시 제 자리 찾아가듯이 돌아가겠다. 그래 나는 아직 이사를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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