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다 ㅣ 한공기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정작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의 본질은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있습니다. 전 그것을 찾아주고 싶어요.
작가 프로필 ㅣ 한공기
글쓰기 공동체 '파운틴' 운영자
보통사람의 사소한 일상이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송중기처럼 청순한 남자이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이름도 비슷하다.
숙취가 밀려와 길을 걷다가 그만 주저 앉았다. 군데군데 까맣게 때가 낀 어느 건물 벽에 등을 기대고 담배를 꺼내 피웠다. 오늘 집에 가면 한여름의 소나기처럼 쏟아질, 어머니의 잔소리가 걱정이 되었다. 어제도 지인들과 술을 마시느라 외박을 했다. 술집 근처에 있는 24시 사우나에서 잠을 잤다. 벌거 벗은 체 주황색 수건으로 성기를 가린 건장한 두 남자 사이에서 잠을 잤다. 다행히도 나를 더듬은 이는 없었다.
눈을 떴을 때 수면실에 나 외에 아무도 없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1시. 다행히 가야 할 직장이 없는 관계로 서두르지 않고 밍기적 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탕 속에 들어가 눈을 감고 생각을 했다. 매일 잠에서 깼을 때 하는 생각이 있다.
나는 왜 인간인가? 나는 왜 남자인가? 나는 왜 지금 살아있는가?
아마도 나는 죽는 순간까지 그 질문을 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왜 지금 죽는가?란 질문도 추가되겠지. 억울한 생각이들었다. 그것들은 모두 내가 택한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내던져져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수동적인 상태에불만이 끓어올랐다. 온탕 한가운데의 뽀글뽀글 올라오는 물거품처럼 말이다.. 화를 내면 뭐하나? 누구나 그저 그렇게 살아갈뿐, 아무도 그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이제 그 헛된 질문을 멈출 때가 온 것 같다. 대안을 찾기로 했다.
사람이란 무엇인가? 신과 동물 사이의 존재이다. 남자란 무엇인가? 내가 만날 어느 여성과 나의 자녀 사이에 필요한, 번식시스템의 한 영역이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탄생과 죽음 사이에 있는 것일 뿐이다. 어쩌면 나는 ‘사이의 존재’이다. 지금이란 명확하게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저 과거와 미래 사이의 팽팽한 영역. 나란 명확하게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 타인과타인 사이의 팽팽한 영역. 나의 속성이라고 믿고 있는 모든 것들이 환영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욕탕에서 나와 선풍기로 머리를 말리며 거울을 보았다. 낯선 사람이 서 있었다. 시커멓고 둔탁한 덩어리. 그건 내가 아니었다. 솔직히 한번도 나의 형체를 나의 것이라 인정한 적이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우연히 발생한 탄생과 형성의 해프닝에 대해받아들인 적이 없다. 오히려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상같은 알랑드롱을…사슴같은 눈을 가진 청초한 올리비아 핫세를 떠올리곤했다. 때론 머스크향이 가득 풍기는 깊은 눈의 미남이 되고 싶었고 때론 은은한 꽃향기를 풍기며 찰랑거리는 긴머리를 날리는청순한 미녀가 되고 싶었다. 둘 사이에는 깊은 눈의 청순한, 중성적 매력을 지닌 사람이 있다. 칠흙처럼 깊은 어둠과 여린 조갯살 같은 순백의 완벽한 순수에 집착하고 있다.
담배를 끄고 근처에 있는 카페로 갔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자 점원은 몇차례나 “아이스 말고 뜨거운 거 맞으세요?” 물었다. 그녀가 커피를 뽑으며 다른 손님이 주문한 음료를 만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투명한 플라스틱 컵에 얼음을 담는데 얼음 하나가 컵 위로 솟아 올라왔다. 나는 속으로 그건 버려야지…중얼거렸지만 그녀는 컵을 흔들어 속으로 채워 넣었다. 그리고 정수기 꼭지 밑에 컵을 내려놓고 냉수 버튼을 눌렀다. 물이 차오르는 동안 그녀는 내가 주문한 커피를 완성시켰다. 샷을 컵에붓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나는 속으로 물을 반만 담아야지…생각했지만 그녀는 넘치기 바로 직전까지 기다렸다. 그녀의 일련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나는 순간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걸까? 놀랐다. 감히 타인의 몸 속으로 들어가 정신을 조종하려는거 아닌가?
나는 깨달았다. 투명인간이 되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아니 방황이라는 말은 부정적이다. 그저 유려하게 흐르면서 일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나를 다시 한번 시험하기 위해서 건너편 자리에 앉은 어느 여성이 화장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눈에 마스카라를 칠하고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는데 마치 내가 화장하고 있는 기분이 들어 정성을 다하는 기분이 들었다. 행여 그 여성이 나를 의식하지는 않을까 걱정마저도 없었다. 나는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찼다. 또 카페에 흐르는 테크노풍 음악에 몸을 흔들며 문자를 보내는 외국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몇번이고 손가락을 멈추면서 머뭇거렸다. 몸은 자연스럽게 음악을 타지만 마음은 멈춰 서서 신중하게 방향을 고민을 한다.
나는 에고가 깨져버린 진 것일까? 머리가 하애졌다. 나비가 벗어놓고 간 텅빈 번데기 껍질이 된 기분이다. 오늘 밤에 뵐 어머니의 잔소리도 두렵지 않았다. 그저 안아주고 다독거려주며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 생각이들었다. 이제 어디에도 없다. ‘나’라는 주어도 점점 사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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