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WORD ONE PAGE <편식> ㅣ 신정훈
저는 글을 막 씁니다. 브레인스토밍하듯 손가락 가는대로 놔두는 식입니다.
작가 프로필 ㅣ 신정훈
현상을 쿨하게 응시하고 그것에 담긴 의미를 즉흥적인 글쓰기 과정으로 풀어내려 한다.
나는 많이 읽지만 가려 읽는다. 몇 가지 장르를 배척한다. 약관 무렵엔 소년 감성 자극하는 소설을 좋아했다. 군대에서 독서 취향이 바뀌었다. 합리적이지 못 한 장소가 합리를 갈구하게 만들었다. 경제적이고,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게 좋은 것이다. 소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상대적으로 적다. 비문학의 비이야기성은 많은 장점을 가진다. 비문학은 목차를 보고 선별해서 읽는 게 가능하다. 소설이 완독 전에 작가가 전하려는 메세지를 확실히 파악하기 어려운 반면, 비문학의 경우는 중간을 읽어도 얻는 게 있다. 부담이 덜하고 실용적이다. 비문학 글은 군더더기 없이 논리적이어야 한다. 감정을 다루는 글에 비해 현상을 다루는 글이 다양하고 납득 가능한 분석 툴을 사용한다.
소설과 더불에 기피하는 글은 감성 에세이다. 인터넷을 통해 불특정 다수의 사설을 본다. 내가 속한 글쓰기 동호회 회원들의 글이나,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의 작가들의 글이 포함된다. 몇 문장 읽고 판단 기준을 어디에 둘지 정한다. 형용사와 부사가 쓸데없이 많은 글은 내 취향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반감이 생긴다. 싸이월드 시절의 흑역사를 반성하는 것인지, 합리적으로 살고자하는 의지를 투영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감성글엔 평가가 박하다. 수식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다. 매우, 몹시, 상당히 등의 부사가 현실을 과장한다. 그 사람의 감정이 많고 적음의 척도가 된 것이므로 신빙성이 떨어진다. 감성 글엔 구체적인 수치보다 두루뭉실한 많고 적음의 표현이 많다. 과잉감정이입한 글을 볼 때 상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상정한다. 이런 양치기 소년을 봤나. 너무 오버하는군. 오버는 논리의 적이다. 읽는 내내 질문한다. 진짜 그렇게 느꼈어? 주장에 근거는 뭐야? 있어보이려고 각색한 거 아니야?
잉여를 좋아하지 않는다. 글엔 필요한 요소만 넣고 싶다. 또한 그런 글을 읽고 싶다. 잉여 투성이의 글을 보면 수정하고 싶은 욕구에 휩싸인다. 없어도 의미가 온전히 통하는 표현은 빼는 게 좋다. 핵심을 보는데 장애물이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읽었을 때 닭살 돋는 표현은 글의 진위를 논하게 만든다. 그 자체로 부담스러운 단어도 있다. 심연, 고독, 외로움, 쓸쓸함, 찬란한, 빛남, 지독함, 치열함, 사무침, 적막함 등. 기성 작가들의 수필집에서 남발한 오버의 표상을 볼 때면 눈쌀을 찌푸린다. 이런 단어와 수식을 깔끔하게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과한 글엔 꼭 교훈이 따른다. 교훈 강박처럼 모든 글에 깨달음과 다짐을 넣는다. 코웃음이 나온다.
사람이다보니 비슷한 경험을 한다. 똑같지는 않지만 어느정도 궤는 같다. 민감도에 따라 반응이 다르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하는데, 그 폭이 이해가능한 범위를 넘어가면 글은 매력을 잃는다. 카페 알바가 아이스롱블랙에 얼음을 덜 넣었을 때 카페 엎는 것처럼 이상하다. 다시 만들어주세요 한마디 하면 될 것을, 감정에 휘둘려 깽판치는 꼴이다. 적당히 하세요. 라고 말하며 읽는 자세를 달리한다. 일반 독자에서 악명 높은 비평가가 된다. 잘못한 부분을 다 꼽아서 글의 형편없음을 폭로하는 역할이다. 네가 쓰려는 주제가 이거지? 그렇다면 이는 실패한 글쓰기야. 1번 이유, 2번 이유, 3번 이유, 4번 이유, 더 말해줄까? 내 평가의 주제는 확실해. 너 글 못 썼어.
극단적으로 담백함을 추구한 나머지, 타인도 담백하길 강요한다. 오버하지 않길 바라고, 핵심을 일목요연하게 표현하길 바란다. 소설과 일부 감성글의 경우 행간에 주제가 있는데, 그 특성은 충분히 이해한다. 단지 문장 사이에 주제를 확실히 넣길 바란다. 나의 이런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배치나 표현이 잘못된 글이 많다. 마음 한편으론 그들을 변호한다. 과장된 표현여야만 나올 수 있는 맛이 있어, 모두가 네가 바라는 대로 글을 쓴다면 표현이 한정될 거야. 그래그래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야. 이해해야 하는 당위를 받아들이지만 행동은 그렇지 못 하다. 그래 보고 빡칠 바에야 아예 안 보는 게 낫겠다. 나에게도 좋고 너에게도 좋고. 상부상조의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편식을 이어간다. 다만 싸가지 없게도 가끔 욕이 하고 싶어 형편없는 감성글을 찾아본다. 악취미로 부족한 영양소를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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