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치는 간호사 ㅣ 김혜진
저의 키워드는 행복입니다.결국 모든 것이 이 길 위에 있더라구요.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사람도, 글과 음악, 인생의 목적과 같은 것들이 행복이라는 틀 안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작가프로필ㅣ 김혜진
피아노를 전공하고 이후 간호학을 공부하였음.
피아노 치는 간호사
복지와 힐링에 관심이 많음
피아노의 시인 쇼팽
낭만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새디스트 쇼팽의 사랑과 격정이 담겨있는 소나타이다.
Chopin Sonata Op.58 No.2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연주
고전시대가 마쳐지는 무렵 태어난 쇼팽. 그는 결코 파격의 도구를 손에 들지 않았으나 정서와 감정의 표현만으로 당대 최고의 음악가의 반열에 들었다. 쇼팽과 리스트는 낭만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였는데 두 사람의 스타일은 무척 달랐다. 쇼팽은 풍부한 감성과 정교한 음색으로 작은규모의 살롱에서 하는 연주를 선호하였고, 리스트는 기괴한 테크닉과 파워풀한 연주로 무수한 여성팬들을 휩쓸고 다니며 큰 공연장에서 하는 연주를 즐겼다. 인기는 리스트가 더 있었지만 예술가들 가운데서 음악적으로 인정을 받는 사람은 쇼팽이었다고 하니 그만큼 격조높은 음악을 듣고자 하는 이들에게 쇼팽은 감명을 끼치는 힘이 있었던것 같다. 이처럼 낭만주의 피아노 음악에 큰 획을 그었던 쇼팽. 오늘은 그의 사랑 이야기를 잠시 풀어볼까 한다.
쇼팽의 연인이 조르주 상드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쇼팽의 나이는 26세였는데 조르주 상드는 6살 연상에 이미 1남 1녀의 어머니였다. 이전에 썼던 나폴레옹과 조세핀과 너무 닮은것 같아 내심 놀라기도 하였는데 적극적인 신여성이었던 그녀는 당시의 여인들처럼 유행을 따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남자처럼 행세하며 시가를 손에 들고 있었다고한다. 그렇기에 처음, 쇼팽은 그녀에게 그다지 호감을 갖지 못했다. 그렇지만 상드는 쇼팽에 대한 사랑을 주저없이, 끊임없이 표현하여 결국, 1년 반이 지난 후 쇼팽은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쇼팽은 상드를 만나기 전 두 번의 실연을 겪게 되는데 그들의 사랑은 이 상처가 아물기 시작할 즈음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여성들은 사회 진출이 어려웠는데 고작해야 여자들이 할 수 있었던 직업이란 음악가와 작가 정도였고, 그 두 가지는 일종의 "전문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필력이 좋았던 상드는 첫 작품으로 일약 스타에 올랐고 72세까지 어마어마한 글을 썼다. 열정적인 자신의 삶에 대한 개척자로서, 남성 작가들로부터 무수한 혹평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문학계의 거장으로 성장하였으며 연약한 존재에게는 주저하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바람끼가 있었다고 전해지나 당시 남성 작가들보다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던 그녀가 남편을 떠나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났던 남자들과의 관계가 구설수에 오를 수 밖에 없었던 사회적 위치에 있었다는 것도 배제할 수 없는것 같고, 또한 그녀는 다른 여성들과도, 기존의 틀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도 달랐으므로 그녀의 행동이 부각되어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991년 <쇼팽의 연인>(Impromptu)이라는 영화에서는 두 사람의 사랑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상드의 한 친구가 "왜 하필 쇼팽에게 끌렸는지 말을 해봐"라고 묻자 상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어. 하지만 쇼팽은 영원해."
작가였던 그녀는 그녀의 작품이 후세에도 남겨져 있을것을 생각하면서 쇼팽의 음악 또한 영원히 남겨질 것을 알았던것 같다. 그리고 그녀는 천재적 재능을 소유하고 있는 쇼팽의 곁을 지키며 그를 돕고자 한다. 여러 남자들을 거쳐 마침내 만나게 된 쇼팽. 그녀에게도, 그에게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함께 할 수 있는 정착지가 된다.
두 사람은 함께 살기로 하는데 바로 그 시점에서, 몸이 약한 쇼팽은 폐결핵에 걸리게 되고 상드는 본인 자신이 류머티즘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헌신적으로 병간호를 한다. 그러면서도 두 아이를 기르고, 집안일을 하고, 쇼팽이 잠이 들면 집필을 하여 버는 돈으로 다른 사람을 도왔던 그녀. 연인이라기보다는 소중한 가족을 위한 희생에 가까웠던 그녀의 행동은 모성애적 사랑에 가까웠다. 다시 한번 영화의 대사를 빌려본다.
"꽃을 꺾기 위해 가시에 찔리듯 사랑을 얻기 위해 영혼의 상처를 견딘다. 상처받기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상처받는 것이므로...."
그렇게 한 사람의 사랑을 향한 영혼의 상처가 불살라지며 또 한 사람의 생명이 일어난다. 그녀로 인해 건강을 회복한 쇼팽은 일어나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의 천사가 헌신적으로 간병해 준 덕분에 일어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몸은 야위고 얼굴색은 조금 나빠졌지만 식욕은 왕성합니다. 그녀는 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끊고 지내주었습니다."
쇼팽은 그녀를 '천사'라고까지 불렀는데 그만큼 상드의 사랑의 실천이 얼마나 깊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쇼팽과 상드는 이후 10년 동안 서로의 예술성을 나누며 상호간에 깊은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두 사람이 함께 하면서 세상에 내놓았던 걸작 중 하나가 바로 오늘 듣는 소나타 2번이다. 그가 썼던 두 개의 소나타 중 하나로 소나타 3번보다는 원숙미가 떨어지지만 쇼팽의 창작력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에 작곡된 곡이며, 대중들에게도 보다 인기있는 곡으로 알려져 있다.
이전의 사랑을 극복하지 못했던 쇼팽의 격정적인 마음은 상드와 함께 하는 가운데 이렇게 예술로써 승화되었다. 고뇌에 찬 1악장, 드라마틱한 긴장을 느낄 수 있는 2악장, '장송행진곡'이라고도 부르는 어둡고 무거운, 또한 회상적인 3악장, 수수께끼처럼 궁금증을 유발하는 Finale. 20분이 넘는 긴 곡임에도 불구하고 눈을 감고 듣고 있다보면 파도가 느껴지고, 지진이 느껴지고, 고요한 숲도, 땅 속 깊은 지하도, 구름 같은 기억들도 떠오르는 것 같다.
어찌보면 어머니 같이 크고 넓은 마음으로 품어주는 상드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쇼팽. 이 사랑의 주도권은 상드에게 있었기에 쇼팽의 이야기 보다 상드의 이야기를 위주로 써 보았다. 그러나 사랑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누가 시작하느냐가 아니라, 또 두 사람의 사랑의 모습이 어떠하였느냐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쇼팽이 마음을 열고 왈칵 자신의 심정을 피아노를 통해 쏟아낼 수 있었던 것은 상드의 사랑 때문이었다. 그렇게 쇼팽은 몸도 마음도 치유받았고, 젊었지만 말년이라 할 수 있는 시기에 음악적으로 매우 원숙함에 이르는 곡들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하여 나는 그 둘의 창작물들을 함께 만든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둘의 삶이 서로를 채워간 것처럼 악보의 지면에도 음표가 빼곡하게 채워졌을것이라 믿는다.
10년이 지나고 두 사람은 결별 하게 되는데 2년만에 쇼팽은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의 음악의 원동력이자 생명과도 같았던 여인, 조르주 상드. 사랑이란 그런거다. 단순하면서도 복잡하고, 연약하면서도 힘있고, 넓으면서도 좁고, 사소하면서도 전부가 되는것.
사랑에 마음을 열었던 기억, 사랑때문에 마음을 닫았던 기억이 있다면. 하지만 지금 사랑에 주저함이 있다면, 쇼팽과 상드의 특효약을 처방해주고 싶다. 마음이 열리는 순간, 나만의 세계가 아니라 타인의 세계가 내게로 들어와 새로운 세상이 열릴거라고. 그 새로운 세계는 또한 자신의 것이 될거라는 신비한 사랑의 묘약을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건넨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선고하노니, 걸어보자. 사랑에..
남녀간의 사랑이든, 친구간의 사랑이든, 국가를 위한 사랑이든, 인류를 위한 사랑이든... 어떤 사랑이든, 사랑이 결국 전부니까.
김혜진 님의 다른 글을 읽고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