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편식의 역사

KEYWORD ONE PAGE <편식> ㅣ 이건우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7-02-13 오후 3.13.00.png 영화인


작가프로필 ㅣ 이건우

저는 영화연출을 전공했고, 영화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영화 매니아는 아닙니다.

오히려 스토리 매니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미지나 캐릭터, 혹은 물음표가 있는 설정 등에서 하나의 아이디어가 착상되면, 마치 꽃에 물을 주며 어떤 나무로 성장할 지 궁금해하는 것 같이 아이디어를 스토리로 키워나가는 것만큼 즐거운 일을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 이미 인이 배길 정도로 들어 새삼스럽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언제였지.., 중학생 즈음이었던가, 누군가에게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꽤나 그럴 듯하게 들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감수성 짙은 어린 시절에 만나는 갈림길들은 모두 처음 접해보는 길들 투성이었고, 다소 반항심리가 있던 나는 익숙한 길보다는 익숙하지 않은 길로 새고 싶은 심리가 더 크게 작용하곤 했던 것 같다. 때로는 익숙한 길로, 때로는 익숙하지 않는 길을 선택하면서 나라는 자아가 형성되었을 터이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잠실로 향하고 있는 길이었다. 걷기 좋은 날씨 때문인지 석촌호숫길에는 이미 많은 인파들이 무리지어 걷고 있었다. 나는 목적지까지 최단거리로 가기 위해 호숫길을 가로지를 요량으로 산책길로 내려왔다가 문득 발을 멈추고 말았다. 그건 마치 일방통행길에 잘못 접어든 차량의 당혹스러움 같은 것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반시계방향으로 걷거나 뛰고 있었고, 내가 그 길을 가로지르기 위해서는 시계방향으로 가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한 순간에 파악했다. 고작 100미터 남짓 되는 길이었지만, 주류에 역 주행한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새삼스럽게 느끼게 해 준 것만 같았다.



사실, 우연찮게 산책길을 가로지르게 되어 느끼게 된 것이지만, 나도 평소에는 반시계방향으로 뛰고 있는 무리들의 한 일원일 뿐이었다. 잠시 그 무리에서 벗어난 사이에 그 기이함을 발견하게 된 것 뿐이었고, (고작) 친구와의 약속시간을 지키기 위해 역주행으로 가로지르게 된 선택을 한 것뿐이었지만, 그 선택을 통해 나는 언젠가부터 ‘선택’을 하고 있지 않았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가장 쉬운 선택의 패턴은 점심메뉴를 고를 때 나타나는 것 같다. 점심시간이 되어 누군가가 ‘오늘 점심은 뭘 먹으러 갈까?’ 하고 메뉴의 화두를 던지면 대부분의 반응은 ‘너는 뭘 먹고 싶은데?’ 하는 선택 유보이거나, ‘어제 중국집 먹었으니깐, 중국집은 패스’ 식의 차선 제기인 경우가 많다. 결국 메뉴를 결정짓는 자는 무리의 우두머리이거나, 식탐의 욕망이 강한 자가 결정하기 마련이다. 더 큰 권력을 지닌 자, 더 큰 욕망을 지닌 자에게 눌린 우리 대부분은 그렇게 점심 메뉴의 선택권을 잃어왔다. 뒤집어 보면, 선택을 한다는 것은 주류에 반하는 행위를 한다는 것으로 설명될 수도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러한 선택장애자가 된 것일까.

나는 그것이 개개인의 편식의 역사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사실 편식은 자기보호 본능이기도 하며, 자기취향 증대이기도 하다. 일례로 나는 어렸을 때 가지를 먹지 않았다. 언제인지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가지를 먹고 심하게 토한 이후, 흐물거리는 류의 음식을 거부하게 되었다. 그것은 사실 나를 보호하기 위함이었고, 그와 비슷한 식감의 호박에도 금세 영향을 끼쳤으며, 심지어 고사리 정도의 흐물거림도 탐탁지 않게 여기게 되었다. 어찌되었든 선택에 실패한 나는 편식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고, 그와 동시에 나의 취향은 그 범위가 좁혔졌다. 그렇게 편식의 역사를 차근차근 세워 온 개인은 어른이 되면서 책임감과 더불어 사회적 검열을 통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영역과 힘을 잃어온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즉, 편식의 역사는 트라우마의 역사임과 동시에 취향의 역사이기도 하며, 선택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즈음에서 삶은 선택의 역사라고 말했던 글 첫머리로 되돌아가보자. 익숙한 것과 익숙하지 않은 것 사이의 갈림길에서, 나름의 편식의 역사를 만들어온 개인은 익숙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합리성이 우리 자신을 선택하지 못하는 인간으로 만드는 데에도 기여하고 있었다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지 않을까. 그런 의미로, 오늘 저녁은 가지볶음에 호박전을 도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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