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키워드-축제 ㅣ 신정훈
저는 글을 막 씁니다. 브레인스토밍하듯 손가락 가는대로 놔두는 식입니다.
작가 프로필 ㅣ 신정훈
현상을 쿨하게 응시하고 그것에 담긴 의미를 즉흥적인 글쓰기 과정으로 풀어내려 한다.
늦어서 죄송하다는 말과 동시에 자리에 앉았다. 식탁을 사이에 놓고 부모님,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전날 토요일 저녁이라는 이유로 늦잠을 잔 탓에 아침 식사에 늦었다. 늦잠이 일상이 돼서 매번 가족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식사의 시작을 함께 나누고픈 마음에서인지 내가 안기 전에 누구 하나 수저를 들지 않았다. 서로의 일상에 관심을 갖고 오늘 어떤 하루를 보낼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많은 말이 오갔지만, 그곳엔 충고나 조언은 없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적절히 맞장구를 치거나 바디 랭귀지로 호응해줄 뿐이었다. 바쁜 부모님을 위해 조식을 준비하는 것은 할머니 몫이다. 5년 전에 할머니와 같이 살게 됐다. 처음 할머니가 식사 담당을 자처했을 때 어머니가 극구 사양했지만, 할머니는 식객이 이 정도는 해야 한다며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부모님과 나는 할머니가 우리를 위해 사용한 이른 아침에 대해 감사를 표하며 식사를 시작했다. 할머니의 음식은 어머니의 것에 비해 덜 자극적이어서 처음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먹을수록 감칠맛이 느껴져 이제는 그녀의 손맛에 익숙해졌다. 담백하고 속이 편한 음식을 주로 하신다. 오늘은 뭇국과 나물 반찬, 그리고 장조림이 올라왔다. 할머니는 어제저녁 늦게까지 주방에서 자리를 떠나지 못 하셨는데, 아마 장조림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할머니가 특히 잘하는 요리가 장조림이다. 몇 개월 만에 식탁에 한 자리 차지한 장조림이 반가워 젓가락으로 대신 두 팔 벌려 환영해줬다. 먹기 좋은 크기의 소고기와 한 입에 들어가는 메추리알이 간장 사이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할머니는 덩어리 고기를 오랜 시간 동안 찢었을 것이다. 고생이 죄송스러워 그 맛에 더욱 크게 반응했다.
우리 식구의 대화 주제가 장조림으로 옮겨졌다. 부드러운 식감과 절묘하게 간이 밴 소고기의 맛은 일품이었다. 엄지를 들어 올려 할머니의 노고에 조금이나마 보상을 했다. 할머니는 까다로운 안목으로 지방이 적은 소고기를 골랐을 것이다. 지방의 입 안에서 미끄러지는 맛 없이 살코기의 담백한 맛이었다. 50년 요리 인생의 내공인지, 할머니의 자극 없고 꼼꼼한 성격이 반영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훌륭한 요리임에는 틀림없다. 할머니는 많은 양을 했기 때문에 오늘 아침엔 기름이 떠 있었다고 했다. 새벽부터 기름을 걷어내고 정갈하게 접시에 옮겨 담으셨다. 씹으면 씹을수록 느껴지는 고소함과 마지막에 혀 끝에서 존재를 살짝 드러내는 생강 맛이 어우러졌다. 마지막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숟가락으로 밥그릇에 남은 밥을 펐다. 메추리 알을 하나 먹고 마지막으로 국그릇을 들어 뭇국의 국물을 마셨다. 오늘 하루를 긍정할 수 있는 기력이 아랫배에 쌓였다.
부모님은 매주 일요일 등산을 가신다. 할머니도 처음 몇 번은 같이 갔으나, 집에 남아 드라마를 본다고 동행 권유를 거절했다. 부모님은 주말이 되면 자연과 함께 하는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할머니는 놓쳤던 드라마를 몰아서 다시보기 한다. 부모님이 오늘 무얼 할 지에 대해 물어봤고, 친구 동영이와 중고 서점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출하면 서점 옆에 있는 떡볶이 집에서 매운 떡볶이를 먹을 계획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3개월 전에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돌아보니 나쁘지 않았다. 상사맨으로서 나름대로 보람 있는 회사 생활이었다. 어려서부터 소설을 쓰는 게 취미였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틈틈이 글을 썼다. 본격적으로 집필에 매진할 생각으로 퇴사를 결심했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다. 퇴사 전, 아침 식사 시간에 가족들과 생각을 나눴다. 부모님은 묵묵히 내 말을 들어주셨다. 그들은 30을 목전에 둔 자식에게 응원한다고 말했다. 혹시 등산이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알려달라는 말도. 등산이란 단어가 복잡한 감정 뒤에 산처럼 존재했다.
사용한 그릇과 수저를 싱크대에 놓고 할머니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화장실에서 샤워를 했다. 욕조 위에 있는 샤워기 탭을 살짝 뜨거운 쪽으로 움직여 물을 틀었다. 3초가량 시간이 지나자, 뜨거운 연기가 났다. 다소 뜨거운 감이 있었으나 오래지 않아 사소한 고통이 피로를 풀어줬다. 뭉친 근육이 서서히 풀려가고 긴장했던 어깨가 이완됐다. 머리에서부터 흘러내리는 온수의 친절함을 눈을 감고 음미했다. 어느 틈엔가 벌어진 입술 사이로 아- 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샴푸를 하는 것도 잊은 채 한동안 가만히 휴일 아침이 주는 따뜻함을 즐겼다.
옷장을 여니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와 단색 옥스퍼드 셔츠가 걸려 있었다. 오늘부터 한강에서 봄꽃 축제가 있을 예정이라는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흰색 무지티를 입고, 하늘색 옥스퍼드 버튼 다운 셔츠를 외투 식으로 걸쳐 입었다. 오래 입어서 편한 보통 핏의 청바지를 그 아래 매치했다. 약간 촌스러운 감이 있지만 셔츠 색상에 맞춰 하늘색 땡땡이 양말을 신었다. 전신 거울로 모습을 비춰보았다. 봄, 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긴 머리가 지저분해 보였다. 퇴사 후에 미용실을 가지 않아 옆머리가 귀 윗부분을 살짝 덮었다.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점심 식사 후에 미용실을 들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교 입학 때 고모가 선물해준 허쉘 배낭을 옷장에서 꺼냈다. 도서관 전용 크로스백 속에 있는 몰스킨 노트와 필통을 챙겨 배낭으로 옮겨 담았다. 책을 사게 되면 종이 가방 대신 배낭에 넣어 두 손 편하게 귀가할 계획이었다. 배낭은 새 학기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봄 하면 역시 배낭이다.
늑장 부린 탓에 예정보다 20분 늦게 출발했다. 등산복을 차려입은 아버지가 근처 역에서 내려준 덕분에 편하게 지하철 역에 도착했다. 개찰구에 교통카드를 찍고 계단을 내려갔다. 스크린도어 위 전광판에서 다음 전철이 4분 후 도착임을 알렸다. 그다음 전철과 배차 간격이 30분이었다. 아버지의 친절에 친구와의 우호 관계를 손상시키지 않을 수 있었다. 늘어선 사람들 뒤로 줄을 이었다. 일 년에 50번도 더 있는 일요일이지만, 올 때마다 사람들을 격려한다. 유난히 따뜻한 그 응원에 사람들의 표정은 부드러워 보였다. 이번 한 주도 고생 많았다는 위안이었다.
스크린 도어가 열리고 비어있는 7호선 열차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열차는 여유로웠다. 옆 자리에 비슷한 나이 또래의 청년이 앉았다. 객실이 조용해서 그의 귀에 꽂혀 있는 이어폰 사이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작은 소리였지만 어떤 노래인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이상우의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전이라는 곡이었다. 대학교에서 처음 사귄 친구가 알려준 곡이었다. 하늘의 구름은 솜사탕이 아닐까라는 가사가 들려 살짝 헛웃음을 터트렸다. 노래의 음계로 풋풋한 시절을 스케치했다.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라 송구스러웠다. 다만 지금 모습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느샌가 지하철은 지상에서 달리고 있었다. 청담대교 위에서 한강이 내려다 보였다. 한강에 반사된 햇볕이 눈부셨다. 강 건너편에 봄꽃이 마중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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