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시에 만나요 ㅣ 윤성권
책상 앞에서가 아닌 사람들 속에서 좀 더 현실적이고 모두가 쉽게 접근 가능하고 실현 가능한 재생에너지 정책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 프로필ㅣ 윤성권
평소에 꿈을 디테일하게 꾼다. 그것을 각색해서 쓰면 재밌겠다고 생각함
소주는 맥주보다 알코올 도수가 높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소주 맛이 써서 좋아하지 않는다. 나도 소주를 선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종종 술자리를 갖다 보면 소주를 좋아하지 않아도 소주를 마시게 된다. 식당에 가면 목이 마르지 않아도 습관처럼 물을 마시듯이, 술집에 가면 소주를 좋아하지 않아도 소주를 마신다. 그냥 어떤 날에는 소주 말고 딱히 마실 게 없다. 나 같은 경우에 가장 좋아하는 술이 소주는 아니지만, 단연코 술집에서 가장 많이 마신 술은 소주이다.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소주, 우리가 소주를 마시는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당신은 오랜만에 외국에 갔다. 힘든 여행으로 심신이 지쳤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고 힘을 내기 위해 한국식당에 갔다. 술도 한잔하고 싶다. 메뉴판을 보니 소주와 맥주가 가격이 같다. 그러면 당신은 무엇을 마시겠는가? 아마도 답은 정해져 있을 것이다. 소주는 한국의 대표적인 술이다. 외국에서 마시는 소주는 정말 맛있다. 한국과 거리가 멀수록 소주의 가격은 올라가기에 그 맛도 같이 올라간다. 외국에서 마시면 이 맛있는 것을 한국에서는 왜 그리 천대했을까 후회를 한다.
나는 소주를 한 번에 마시지 않고, 홀짝홀짝 마신다. 이것을 꺾어 마신다고 부르기도 하고, 잔디나 밑잔을 깔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조금씩 마시기 때문에 누구처럼 안주를 많이 먹지도 않는다. 그 녀석은 술은 거의 마시지 않고 안주를 많이 먹었다. 일명 안주 빨 세우는 친구였다. 당시에 술을 마시지 않고 안주빨을 세우는 사람이 싫었다. 어지간해서는 술을 마시지 않는 그 친구가 너무 얄미워서 우리는 특별한 방법을 사용했다. 대부분 주량이 소주 1병씩은 되므로 처음부터 술집에 가자마자 머릿수에 맞게 소주를 주문하였다. 안주는 당연히 돼지김치찌개이다. 각 1병씩을 앞에 놓고, 자기 술병은 자기가 비우기로 했다. 주로 자작을 하며 앞에 있는 술로 옆 사람에게 잔을 채워주기도 했다. 그러면 옆 사람도 그의 술로 내 잔을 채워주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술병을 비우지 못하는 사람이 나타났고, 그 친구에게 어서 자기 잔이 아니라 병을 비우라고 재촉하였다. 결국, 그 친구는 그 자리에서 취해서 쓰러졌다. 나중에도 그 친구는 안주 빨 세우긴 했지만, 자기 술병은 자기가 비우는 책임감 있는 녀석이 되었다.
때론 이벤트 때문에 소주를 마시기도 했다. 요즘은 유명한 처음처럼 소주도 당시에는 참이슬 소주의 아성을 넘기 위해 술집에서 공짜로 나누어주며 엄청난 이벤트를 하였다. 어떤 가게는 처음처럼 첫 병은 원래 가격을 받고 짝수 병은 100원만 받았다. 당시에 1병이 3000원이었으니, 4병을 마시면 12,000원이 아니라 6,200원이었다. 이것은 100원을 투자하여 3000원을 버는 일이라, 우리는 짝수 병을 채우기 위해서 잘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를 부단히 마셨다. 최근에는 횟집으로 유명한 맛집에 갔다. 몸집뿐만 아니라 통도 큰 사장님은 우리에게 불편한 자리를 내주는 대신에 소주 5병을 공짜로 주셨다. 또한, 사장님은 테이블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서 우리에게 조금 일찍 자리를 비워주면 나중에 올 때 소주 30병을 공짜로 준다며 즉석에서 쿠폰을 만들어 주었다. 실제로 사장님의 즉석 쿠폰을 받고 소주 30병을 마시기 위해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있단다. 그래서 나는 현재 소주 30병을 마실 수 있는 영웅 들을 모으고 있다.
소주는 주로 병으로 마시지만, 간혹 2L짜리 큰 플라스틱병(일병 데꼬리)으로 마시기도 한다. 보통 엠티를 가거나 체육대회, 혹은 잔디밭에서 술을 마시면 소주 데꼬리가 흔히 등장한다. 데꼬리는 생김새가 너무 무섭기 때문에 왠지 더 쓰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중에는 데꼬리에 복분자나 레몬, 석류 진액을 타서 마시기도 했다. 내가 아는 지인은 정말 소주를 좋아해서 집에서 소주를 즐겨 마신다. 술에 취하면 잘 정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소주병이 굴러다니기 일쑤인데, 취해서 화장실 가다가 그 병을 밟고 크게 다칠 뻔 했단다. 그 이후로 모두가 술을 끊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술을 끊지는 않고, 밟아도 문제가 없는 소주 데꼬리를 사다가 마시고 있단다.
요즘에 사람들은 부담 없이 집에서 혼술을 많이 한다. 나도 종종 집에서 혼술을 즐기는 데, 어쩌다 맥주가 없어서 소주를 마셔보면 너무 써서 몇 잔을 마시지 못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혼술을 해온 사람들은 대부분 소주를 마신다. 그 이유는 맥주보다 좀 더 빠르게 취하고 싶어서인 것 같다. 우리는 소주가 쓰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았지만, 결국 돌고 돌아서 다시 소주를 마신다.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소주, 어쩌면 그것이 우리의 삶과 가장 많이 닮아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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